
“지금의 구조 환경에선 응급실 의사가 살인범으로 몰릴 수밖에 없어요.”
박수현 대한소아응급의학회 공보이사는 2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이 자리에서 전국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전문의가 약 100명에 불과하고, 배후 진료를 담당하는 소아중환자실도 전국 30명 내외의 전문의가 지키고 있다는 현실을 설명했다.
최근 환아 사망사고로 경찰이 아주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압수수색한 것과 관련한 질의에서 나온 답이었다. 이날 국감에선 아주대병원 소아응급센터 교수들이 사직 의사를 밝힌 사실도 밝혀졌다.
하루 뒤인 28일 박 이사는 코메디닷컴에 “발언 시간과 기회가 제한적이라 압수수색과 관련한 현장의 어려움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며 ‘의사가 살인범으로 내몰리는’ 상황을 다시 한번 강변했다.
그러면서 보건복지부 등 관계 당국을 향해 응급실의 특수성을 반영한 수사 가이드라인 마련을 주문했다. 박 이사와 함께 의료계는 환자 사망에 따른 수사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응급환자 진료를 방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행정 전문가 역시 법 집행의 원칙을 지키되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응급실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의료계는 소아응급실에서 환자가 사망했을 때 적용되는 기존 검시 절차를 수사기관이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진료기록 확보를 위해 응급실에 직접 진입하기보다 전산실 등을 활용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환아 사망 직후 의료진이 현장을 정리하고 보호자에게 마지막 인사를 준비할 시간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소아 응급실 사망, 별도 신고하지 않아도 검시·부검 진행돼
먼저 박 이사는 소아 응급실에서 발생한 사망 사건이 강력 범죄 현장으로 취급되는 현실이 안타깝고 답답하다면서 법적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환아들이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까지 치료 행위를 하는 것도, 사망 후 현장을 정리하고 보호자에게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는 것도 모두 응급실 의사들”이라며 “(경찰의) 수사가 필요한 건 이해하지만, 적어도 의사들이 현장 정리도 못한 채 현장에서 격리돼 취조를 당하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현재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던 환자가 질병, 상해 등 명확한 원인없이 사망했을 때는 의료진이 사망 진단서에 ‘원인 미상’으로 기재한다. 여기서 원인 미상 사망자는 ‘의료기관 내 변사(變死)자’로 취급되며 의료법 제26조에 따라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해당 법에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는 사체를 검안하여 변사한 것으로 의심되는 때에는 사체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경찰서장에게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신을 검안한 의사가 관할 경찰서에 신고를 완료하면 이 때부터 경찰 조사가 이뤄진다. 형사소송법 제222조에 따라 변사자에 대한 공적 검시(시신과 사건 현장을 조사하는 것)도 진행된다. 경찰청훈령 제1184호 ‘변사 사건 처리 규칙’에도 보건 관련 집단 수용 시설에서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사망이 발생했을 때 현장에 경찰관이 출동해 현장조사와 부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보호자가 별도로 112에 신고하지 않더라도 의료진의 변사 신고에 따라 경찰이 사망 원인을 조사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돼 있다. 다만 원인 미상 사망이 모두 변사로 확정되거나 반드시 부검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박 이사는 이미 마련돼 있는 절차를 출동 경찰관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수사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약 현장에서 보호자가 신고하면 그때부터 병원은 강력범죄 현장처럼 취급된다”며 “실제 치료가 이뤄지는 처치실이나 진료실에 경찰이 진입해 현장을 보존하면서 응급실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아주대병원 사건에서도 환아가 사망한 당일 경찰과 과학수사대가 카메라를 들고 응급실에 들어왔다”고 전했다.
박 이사는 이 같은 상황이 단순히 진료 연속성을 해치는 데 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소아응급실 의료진은 아이의 죽음을 부모에게 알리고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맡기 때문이다.
그는 “현장 보존 절차가 시작되면 환아의 몸에 삽입된 관이나 바늘을 정리할 틈도 없이 보호자와 마주해야 할 수 있다”며 “부모가 마지막으로 보는 아이의 모습이 여러 관을 삽입하고 심폐소생술로 가슴이 눌린 상태라면 얼마나 원통하고 가슴 아프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진료가 방해받았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원칙적으로 위조 불가능한 의무기록⋯반드시 현장 강제 수사 필요할까
박 이사는 또 아주대병원의 관할청인 경기남부경찰청이 제기한 ‘기록 위조·증거 인멸 우려’를 두고도 응급실 전산 시스템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데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응급실은 365일 24시간 여러 대의 컴퓨터를 가동한다. 접수 창구부터 중증환자 처치실·소생실 등에 컴퓨터가 설치돼 있고 의료진은 필요에 따라 이동하면서 이들 컴퓨터를 활용해 의무기록을 작성한다.
의사만 기록을 작성하는 게 아니다. 여러 간호사가 분 단위로 시행한 처치와 환자 상태를 기록한다. 누가 어떤 컴퓨터를 활용해 무슨 기록을 남겼는지도 모두 조회할 수 있다. 접속이나 기록 수정 이력은 응급실과 별도의 전산 시스템에 로그로 남는다.
박 교수는 “의무기록은 구조상 위조가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위조를 시도했던 사례는 전부 다 적발됐고 기록을 수정하더라도 이력이 남는다”고 강조했다.
수사 당국을 향해선 “위조가 걱정된다면 적어도 응급실에 강제로 진입하는 방법 외에 다른 수단을 먼저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서 “경찰이나 정부에게 이 부분을 꼭 이해해 달라고 국감에서 전하고 싶었다”고 짚었다.
30년 넘게 부산대병원 응급실을 지킨 조석주 응급의학과 교수도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수사 관련 내용은 잘 모른다’며 말을 아끼던 조 교수는 의무 기록과 관련해서는 “응급실이 아닌 전산실에서도 기록 확보와 수정 이력 확인이 충분히 가능하다”며 “결국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의료진을 '현행범'으로 규정한 판단 자체”라고 지적했다.
향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면 응급환자 치료가 이뤄지는 현장에 직접 진입하기보다 전산실 등을 통해 임의제출 방식으로 기록을 확보하는 방안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 행정 전문가 “응급실 특수성 고려해야 하지만⋯법의 보편적 적용도 지켜나가야”
경찰행정 전문가 역시 응급실의 특수성을 고려한 수사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석좌교수도 이날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치료 행위가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의료 현장 특수성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촌각을 다투는 응급실의 특성을 고려해 기존 환자들의 치료가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필요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수사를 하는 경찰이 응급실의 기본적인 기능이나 업무 프로세스를 이해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다만 오 교수는 ‘압수수색 영장 집행’이라는 행위에 대해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압수수색은 현장 경찰이 자의적으로 판단해 진행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법부가 강제수사의 필요성을 인정해 영장을 발부하면 경찰은 이를 집행하는 기관”이라며 “법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돼야 하므로 이번 압수수색 집행 자체가 부당했다고 보는 것은 과도한 해석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수사 원칙을 중시하는 경찰·사법부와 환자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의료계의 입장이 달랐기에 이런 논의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며 “원칙을 지키되 의료기관과 응급실의 정당한 요구를 수용하는 상식적인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