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가 아파 응급실에 데려간 것만 서너 번이 넘어요. 그때마다 ‘응급한 상황이 아니니 당장 조치해줄 수 없다’는 의료진이 원망스러워 화도 내고 민원도 넣었죠. 부모란 아픈 아이 앞에서는 눈이 뒤집어지는 법이니까요. 그런 저도 이번 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네요. 당장 내 아이가 또 아팠을 때 응급실에서 진료해줄 선생님들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무섭습니다.”
네 살 딸을 둔 심재은(36·가명)씨는 26일 코메디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응급의료가 무너지는 상황에 의사들 못지않게 엄마들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최근 경찰이 아주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압수수색한 데 대해 의료계의 반발이 커지고, 소아응급의료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을 두고 한 말이다.
아이들 문제면 ‘눈 뒤집어지던’ 엄마들도 바뀌었다
초보 엄마였던 심씨는 평소 비슷한 나이대의 엄마들과 맘카페에서 소통하는 것을 즐겨왔다. 아이를 낳기 전까진 알지 못하던 다양한 식기구들의 구매처, 갓난 아이를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동네 카페나 식당 위치, 20분 넘게 성심성의껏 환아를 진료해주는 소아과 정보가 모두 카페에서 공유됐다.
부작용도 있었다. 심씨가 활동하는 곳은 하루 접속자만 4만 명이 넘는 경기도 남부 지역의 맘카페다. 회원 수가 많다보니 ‘어떤 카페는 아르바이트생들의 응대가 별로’, ‘무슨 식당엔 유아용 의자가 많지 않더라’는 식의 '카더라'식 정보가 쉽게 퍼졌다. 여러 정보들 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번지는 건 '병원 정보'라는 사실도 털어놨다.
심씨는 “'A 병원이 알레르기 반응을 잘못 진단해 아이 팔에 흉터가 생겼다'거나, 'B 병원 응급실에서 아이가 세 시간 넘게 방치됐다'는 제보글에는 채 한 시간도 안 돼 ‘추천’이 50개를 넘어갈 정도"라며 "내심 소아과나 응급실 의료진들이 가장 꺼리는 것도 맘카페 회원들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고 우려했다.
그런데 아주대병원 압수수색 사건이 보도된 이후 심씨는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감지했다.
그는 “평소라면 부모 심정에 공감한 회원들이 병원을 욕하는 글이 엄청나게 올라왔을 것”이라며 “일부 과격한 익명 커뮤니티는 사망사고가 일어난 병원 의료진에게 이른바 ‘신상털기’를 시도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상과 다르게 피해 부모를 성토하고 의료진의 고충을 이해하는 글이 훨씬 많았다"고 전했다.
이런 현상을 심씨만 경험한 건 아니었다. 다른 맘카페에서도 나타났다.
여러 게시판에 앞다퉈 “필수의료 망하기 직전이다”, “부모 입장은 안타깝지만 몇 명 안 남은 소아응급 전문의들이 이런 일에 계속 휘말리면 누가 진료에 나서겠나”, “여론과 가정에 호소하는 의료 소송 관둬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심 씨의 말처럼 소아과와 응급실의 주요 민원인이 '엄마'들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의료진 “무너진 보호자와의 관계⋯압색 당하는 병원에 누가 아이 맡기나”
응급 현장의 의료진도 허탈한 심정을 전했다.
박수현 분당차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대한소아응급의학회 공보이사)는 코메디닷컴에 “응급실 의료진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 중 하나는 아이 보호자와의 의사소통”이라며 “신뢰와 소통 없이는 응급 의료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압수수색처럼 응급실 의료진의 신뢰도가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 사건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이 의료진과 보호자들간 관계라는 점도 짚었다.
그는 “수사관들이 돌아다니는 응급실에서, 걸핏하면 정부·경찰과 싸우는 의사들에게 자녀의 생사를 맡기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나”라며 “응급실은 실시간으로 생명이 오가고 진료가 벌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에 보호자와 신뢰 관계가 한 번 망가지면 회복이 힘들다. 이는 진료 성적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하소연했다.
또 “소아응급실 의료진들은 평생 사명감과 아이들에 대한 애정 하나로 버티는 사람들이다. 사망 사고가 일어났을 때 가장 크게 무너지는 것도, 보호자들의 원망과 감사 인사에 일희일비하는 것도 의료진”이라며 “속상해하는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없다는 게 가장 힘들다”고 덧붙였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사이에서도 소아과와 소아응급실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맘카페 회원들에게선 성명문을 내거나 근처 소아과에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는 등 실질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뷰 말미 건넨 심씨의 말에도 그런 우려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끝까지 아이를 살리던 의료진을 상대로 고소와 압수수색을 진행한 전대미문의 사건이 오히려 부모들의 분노를 키운 거죠. 상식 선에서 행동했다면 엄마들이 먼저 유족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았을까요. 상식이 지켜지지 않으니 ‘내 아이가 아플 때 찾아갈 곳이 없다’는 두려움이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거라고 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