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02일 (월)

입원전담전문의 10년, 이제는 의사를 키운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44 학생·전임의와 함께 여는 입원의학의 미래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대한입원의학회(KAHM)를 이끄는 경태영 회장. 수채화=이영이 교수(강릉아산병원)

올해는 여러모로 내게 아주 큰 의미가 있는 한 해다.

우리나라에 입원전담전문의 제도가 도입된 지 꼭 10년째 되는 해인 데다, 내가 과장으로 있는 입원의학과에서 국내 처음으로 펠로십 과정을 개설하고 전임의를 뽑은 해이기 때문이다.

2016년 9월, 입원전담전문의 시범사업이 처음 시작되던 무렵을 떠올리면 지금도 격세지감을 느낀다. 당시 이 제도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기대보다 걱정이 더 많았다. 전공의 근무시간 제한으로 병동환자 치료에 공백이 생긴 직후인지라, 전공의 빈자리를 메우려는 임시방편 아니냐는 말도 있었고, “전문의들이 그 일을 몇 년이나 하겠느냐”는 질문도 심심찮게 받았다. 오래 머무는 자리가 아니라 잠시 거쳐 가는 자리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로부터 10년. 그런 질문들에 대해 가장 명확한 답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입원전담전문의가 병동에 상주하며 환자 치료와 안전을 강화하고 의료의 질을 한층 더 높였다는 것이 의료계 안팎의 평가다. 우리 의료 시스템에 꼭 필요한 제도라고 판단한 정부는 2021년 1월 정규사업으로 전환하여 시행 중이다.

그리고 올해 우리는 입원의학을 더 깊이 배우겠다는 젊은 의사를 첫 전임의로 맞았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소식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입원의학이 ‘전공의 빈자리를 메우는 일’에서 ‘환자 안전을 지켜낼 의사를 길러내는 분야’로 한 걸음 올라섰다는 청신호다.

물론 사람을 길러내는 일은 전임의 과정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 출발점은 훨씬 앞에 있다. 병동에 처음 발을 들이는 의과대학 학생들이다.

올해 상반기에 의대 의학과 4학년 학생들이 입원의학과 병동을 다녀갔다. 실습이 끝나면 학생들은 피드백을 남기는데, 나는 이 글들을 꽤 공들여 읽는 편이다. 우리가 무엇을 가르쳤는지가 아니라 학생들이 무엇을 배웠는지가 고스란히 적혀 있기 때문이다.

올해 피드백을 읽다가 몇 번이나 눈길을 멈췄다.

가장 많이 등장한 이야기는 초음파였다. 환자 침상 옆에서 직접 탐촉자를 잡고 폐와 심장, 하대정맥(IVC)을 들여다보는 진료현장초음파(POCUS), 초음파로 혈관을 확인하며 중심정맥관을 넣어 보는 실습은 학생들에게 단연 인기였다. “한 번으로는 손에 익히기 부족하니 더 자주, 더 길게 해 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불평이라기보다는 반가운 투정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정작 가장 길게 이야기한 것은 따로 있었다.

한 학생은 수액과 식사, 소변량과 섭취·배설량처럼 ‘너무 기본적이어서 오히려 배울 기회가 없던 것들’을 처음 제대로 고민해 봤다고 했다. 실습 중 내가 “식이와 수액까지 모두 의사가 조절해 줘야 한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과 실습에서는 그 분과의 질환을 공부하느라 바빴는데, 정작 인턴이 되면 매일 확인하고 판단해야 할 것들을 입원의학과 실습에서 처음 배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런 기본적인 판단에서 환자의 회복과 안전이 갈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 다른 학생은 Mini-CEX(현장 임상수행평가) 이야기를 했다. 표준화 환자를 상대로 연습하던 실기시험과 달리 실제 입원 환자 앞에서는 면담이 매번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 많이 당황했다고 한다. 무엇이 중요한 정보인지 고르는 것도, 대화의 주도권을 쥐는 것도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고. 그 학생은 “처음 시작이 가장 힘든 순간”이라는 나의 말을 떠올리며, 서툴러도 피하지 않고 부딪혀 보는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입원 환자라고 하면 막연히 중증일 것 같고 실습 나온 학생이 해 드릴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을 거라 생각했다는 학생도 있었다. 그런데 하루 두 번씩 같은 환자를 만나다 보니 라포(의사-환자 관계)가 쌓였고, 건강하게 걸어서 퇴원하는 환자들을 보며 ‘해 드릴 수 있는 게 적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실습을 시작할 때 품었던 물음표가 하나씩 느낌표로 바뀌었다고 표현한 학생도 있었다.

그리고 많은 학생들이 같은 장면을 언급했다. 환자 상태가 나빠지거나 치료 방향을 다시 정해야 하는 순간, 의사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어떻게 설명하는지였다. 좋지 않은 소식 앞에서도 환자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눈높이를 맞춰 말하고, 그렇게 조금씩 신뢰를 쌓아 가는 모습이었다.

한 학생은 이렇게 적었다. “의학 지식은 책이나 인공지능으로도 배울 수 있지만,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는 태도는 강의로는 잘 배워지지 않는다.”

그 문장을 읽으며 생각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초음파를, 문진과 신체 진찰을, 수액 처방을 가르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의학 교육에는 ‘잠재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이라는 말이 있다. 교과서나 강의계획서에는 없지만, 선배 의사의 말투와 행동, 환자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저절로 전해지는 것들을 가리킨다. 학생들은 우리가 의도해서 가르친 것보다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 더 많이 배운다. 병상 옆에서 보호자의 질문에 답하던 목소리, 바쁜 회진 중에도 학생을 환자와 보호자에게 먼저 소개하던 짧은 인사 같은 것들 말이다.

입원 의학은 이런 교육에 꽤 잘 맞는 환경이다. 입원전담전문의는 하루 종일 병동에 있다. 외래 시간에 쫓겨 자리를 뜨거나 수술방으로 급히 달려갈 일이 없으니, 학생과 함께 환자를 보고 병동 복도에서 함께 고민할 수 있다. 내과뿐 아니라 외과, 정신건강의학과, 소아청소년과, 재활의학과 병동까지 돌며 한 환자를 두고 전문과마다 무엇을 중요하게 보는지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점도 학생들이 꼽은 장점이었다.

가장 마음에 남은 것은 학생 한 명이 환자 한 명을 입원부터 퇴원까지 주치의처럼 따라가 보고, 실습 마지막 주에 다 함께 모여 증례를 발표하고 토론하자는 제안이었다. 입원의학의 본질이 바로 ‘입원부터 퇴원까지’를 책임지는 데에 있으니, 학생이 그 흐름을 온전히 경험하고 싶어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다음 실습에 꼭 반영해 보고 싶은 아이디어다.

이제 우리 병동에는 학생과 전임의, 그리고 입원전담전문의가 함께 있다. 10년 전에는 병동을 지킬 사람을 찾는 일조차 쉽지 않았는데, 이제는 병동에서 다음 세대를 어떻게 길러낼지를 고민하고 있다.

한 학생은 피드백 끝에 “나중에 저도 교수님 같은 의사 선배가 되어야겠다”고 적었다. 그 문장을 읽고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았다. 교육자로서 이보다 큰 칭찬은 없을 것이다.

올여름 병동을 다녀간 학생들 가운데 누군가는 언젠가 전임의가 되고, 입원전담전문의가 되어 같은 자리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게 될지도 모른다.

좋은 의사는 좋은 의사를 곁에서 지켜보며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병동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가장 중요한 수업일 것이다.

<편집자주>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에 상주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입원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2016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입원전담의 제도는 2021년 본사업으로 전환되어 올해 꼭 10년을 맞는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는 이들이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퇴원시키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작은 순간들의 기록이다. 환자와 보호자, 다른 의료진, 그리고 입원전담의 자신에 대한 고백까지, 이 연재(주1회)를 통해 병원 안에서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한입원의학회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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