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9월 19일 (토)

7mm 혈관 약 2초 만에 봉합⋯휴고 새 무기, 다빈치 독주 수술로봇 시장 파고든다

메드트로닉 리가슈어 RAS 美FDA 허가⋯오타바·버시우스도 미국 진입, 승부처는 수술기구·소모품·AI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메드트로닉의 휴고 로봇수술 시스템용 혈관봉합기 ‘리가슈어 RAS 메릴랜드’. 지름 7mm 이하 혈관과 두꺼운 조직, 림프관을 밀봉한 뒤 절단할 수 있다. 사진=메드트로닉

20년 넘게 ‘다빈치’가 사실상 독주해온 수술로봇 시장에 경쟁자들이 속속 뛰어들고 있다. 메드트로닉 ‘휴고’에 혈관을 봉합하고 자르는 수술기구가 추가됐고, 존슨앤드존슨(J&J)과 영국 CMR서지컬도 미국 시장에 진입했다.

이에 따라 로봇팔의 정교함을 넘어 혈관봉합기와 수술용 스테이플러, 각종 수술기구와 소모품, 인공지능(AI)까지 얼마나 폭넓게 갖췄느냐가 중요해졌다. 수술용 스테이플러는 조직을 자르거나 이어 붙일 때 작은 금속 스테이플로 절단면이나 연결 부위를 빠르게 봉합하는 기구다.

이런 변화를 보여준 사례가 메드트로닉의 혈관봉합기이다. 메드트로닉은 휴고 로봇수술 시스템에 사용하는 ‘리가슈어 RAS 메릴랜드’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허가했다고 16일 밝혔다.

이번 허가는 FDA의 의료기기 시판 전 신고 절차인 510(k)를 통해 이뤄졌다. 510(k)는 새 의료기기가 미국에서 이미 판매 중인 유사 기기와 안전성과 성능 면에서 실질적으로 동등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절차다.

7mm 혈관 약 2초 만에 봉합⋯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리가슈어 RAS는 혈관이나 두꺼운 조직, 림프관을 집게로 잡고 전기에너지를 가해 밀봉한 뒤 자르는 기구다. 열에너지로 혈관벽을 서로 붙여 피가 새지 않도록 막는다. 최대 지름 7mm 혈관까지 사용할 수 있다.

메드트로닉에 따르면 혈관을 밀봉하는 데 약 2초가 걸린다. 하나의 기구로 조직을 잡고 박리하면서 혈관을 밀봉하고 절단할 수 있어 수술 도중 기구를 바꾸는 횟수도 줄일 수 있다. 박리는 수술할 조직을 주변 조직에서 조심스럽게 떼어내는 과정이다.

다만 ‘2초’만으로 휴고가 다빈치보다 빠르다고 볼 수는 없다. 다빈치에도 지름 7mm 혈관을 처리하는 혈관봉합기가 있고 최신 제품은 수초 안에 혈관을 밀봉한다.

정작 중요한 변화는 따로 있다. 메드트로닉이 기존 외과수술에서 널리 써온 리가슈어를 미국에서도 휴고 로봇팔로 직접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휴고에서 쓸 수 있는 수술도구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리가슈어는 지난 20여 년간 세계 65개국 이상에서 4500만 건 넘는 수술에 사용됐다고 회사는 밝혔다. 한국에서는 휴고용 리가슈어 RAS가 미국보다 앞선 지난 2월 이미 출시됐다. 휴고는 한국에서 2024년 허가됐고, 지난해 5월 서울대병원에서 첫 수술이 이뤄졌다.

어떤 수술기구를 얼마나 갖췄느냐가 중요한 이유는 수술로봇의 사업 구조에 있다.

다빈치5 수술로봇 시스템. 왼쪽부터 서전 콘솔, 비전 카트, 로봇팔이 달린 페이션트 카트로 구성됐다. 20년 넘게 다빈치가 독주해온 수술로봇 시장에 메드트로닉 '휴고', J&J '오타바', CMR서지컬 '버시우스'가 잇따라 미국 진입을 마치며 경쟁 구도가 본격화하고 있다. 사진=인튜이티브 서지컬

전투기도 기체값이 끝 아니다⋯수술로봇도 ‘쓴 뒤’가 시장

수술로봇 사업은 고가 전투기 같은 무기체계와 닮은 점이 있다. 전투기는 기체를 사는 것으로 비용이 끝나지 않는다. 미국 회계감사원에 따르면 무기체계의 정비와 부품, 인력 등에 드는 운용·지원비는 전체 생애주기 비용의 약 70%를 차지한다.

수술로봇도 본체를 들여놓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수술할 때마다 전용 기구와 소모품을 쓰고 유지보수와 소프트웨어 서비스도 받아야 한다. 병원에 로봇이 많이 깔릴수록 이후 반복해서 쓰는 수술기구와 서비스 시장도 커진다.

다빈치 제조사 인튜이티브 서지컬의 실적을 보면 이런 구조가 선명하다. 올해 6월 말 전 세계 다빈치 설치대수는 1만 1710대다. 올해 2분기 시스템 매출은 6억 8500만 달러였지만 수술기구·액세서리 매출은 17억 3490만 달러로 2.5배를 넘었다. 같은 기간 다빈치 수술 건수도 지난해보다 약 15% 늘었다.

후발업체가 로봇 본체만 내놓아서는 다빈치를 따라잡기 어려운 이유다. 병원이 한 업체의 로봇을 들이면 의료진 교육부터 수술기구, 수술실 운영방식까지 해당 제품에 맞춰진다. 다른 제품으로 바꾸려면 다시 비용과 시간이 든다.

메드트로닉이 주력 외과수술 기구인 리가슈어를 휴고에 붙이는 것도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한 포석이다. 다만 다빈치를 쫓는 업체는 메드트로닉만이 아니다.

메드트로닉의 수술로봇 ‘휴고 RAS(Hugo RAS)’와 전용 혈관 봉합·절단 기구 ‘리가슈어 RAS(LigaSure RAS)’. 사진 앞쪽 수술대 위에 놓인 기구가 리가슈어 RAS다. 사진=메드트로닉

휴고만 아니다⋯J&J·CMR도 시장 진입

다빈치가 여전히 크게 앞서 있지만 도전자는 빠르게 늘고 있다.

J&J는 지난 7월 ‘오타바(Ottava)’ 수술로봇에 대해 FDA의 De Novo 허가를 받았다. De Novo는 미국에 이미 비교할 만한 기기가 없는 새로운 중위험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성능을 심사해 새로운 제품군을 만드는 허가 절차다.

오타바는 위절제술과 담낭절제술, 위우회술, 충수절제술 등 여러 일반외과 수술에 사용할 수 있다. 로봇팔을 별도 카트에 두지 않고 수술대와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영국 CMR서지컬의 ‘버시우스 플러스’도 지난해 12월 담낭절제술 용도로 FDA 510(k) 허가를 받아 미국에 진입했다. CMR에 따르면 버시우스를 이용해 수술받은 환자는 지난 3월까지 세계적으로 4만 5000명을 넘어섰다.

휴고는 현재 세계 35개국 이상에서 쓰이고 있다. 다만 미국에서는 지난해 12월 비뇨기 수술용으로 처음 허가됐고, 일반외과와 부인과로 사용 범위를 넓히는 절차가 진행 중이다. 미국에서 쓸 수 있는 수술 범위는 아직 다빈치보다 좁다.

다빈치가 크게 앞선 가운데 휴고와 오타바, 버시우스가 서로 다른 설계와 수술기구를 앞세워 시장에 파고들고 있다.

한국 다빈치 수술 연 8만 5000건⋯병원 선택지도 넓어질까

한국도 이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이미 로봇수술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인튜이티브서지컬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서 다빈치를 이용한 수술은 약 8만 5000건에 달했다. 2005년 한국에 처음 도입된 뒤 누적 수술도 올해 6월 기준 50만 건에 육박했다.

경쟁자가 늘어나면 병원은 로봇 본체 가격뿐 아니라 수술기구와 소모품, 유지보수, 의료진 교육, AI 기능 등을 함께 비교할 수 있다. 수술로봇 한 대의 가격보다 장기간 들어가는 비용과 그 로봇으로 어떤 수술을 할 수 있느냐가 선택 기준으로 자리잡게 된다.

한국에서 로봇수술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 부담도 크다. 2025년 국제학술지 《공중보건의 최전선(Frontiers in Public Health)》에 실린 한국 비용 연구 24편 종합 분석에서는 로봇수술의 입원비는 복강경·내시경 수술보다 평균 3279달러, 환자 본인부담은 평균 5701달러 높았다.

다만 이 분석을 수행한 연구진 3명은 모두 다빈치 제조사 인튜이티브서지컬 직원이며, 논문에 이를 이해상충으로 공개했다. 연구진은 퇴원 이후 비용과 장기적인 비용 대비 효과를 판단할 한국 자료도 부족하다고 밝혔다.

수술로봇 경쟁은 이제 로봇팔 자체의 성능만으로 갈리지 않는다. 혈관봉합기와 조직을 잘라 봉합하는 스테이플러부터 AI와 데이터까지, 그 로봇으로 얼마나 다양한 수술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휴고에 추가된 리가슈어는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한 사례다. 다빈치가 오랫동안 쌓아온 시장에 휴고·오타바·버시우스가 잇따라 들어오면서 경쟁은 로봇 본체를 넘어 수술기구와 소모품, 소프트웨어와 서비스까지 번지고 있다. 병원이 어떤 로봇을 들이느냐보다 그 로봇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다음 승부처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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