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31일 (월)

“수입 방사성 치료제 대신 병원서 ‘현장 조제’?”⋯한국 바이오기업의 도전

에스엔비아, 10분 내 방사성동위원소 표지⋯환자 유래 켈로이드 동물모델서 2주 뒤 크기 70% 감소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수입 방사성 치료제 대신 병원서 ‘현장 조제’?”⋯한국 바이오기업의 도전
방사성동위원소를 혈관에 넣어 암세포를 찾아가게 하는 현재의 방식이 아니라 의사가 방사성동위원소를 병변에 직접 주사해 넣는 새로운 방식을 한국의 한 바이오기업이 제시했다. 그랬더니 암의 일종인 켈로이드 크기가 2주만에 70% 정도 줄어들더라는 연구 데이터도 발표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전립선암 치료제 ‘플루빅토’와 신경내분비종양 치료제 ‘루타테라’는 암세포를 찾아가는 리간드(ligand)에 방사성동위원소를 붙여 정맥으로 투여한다. 리간드가 암세포에 결합하면 함께 붙어 있는 방사성동위원소가 방사선을 내보내 암세포를 공격한다.

한국 바이오기업 ㈜에스엔비아(SNvia)는 반대로 생각했다. 방사성동위원소가 몸속을 돌다가 암을 찾아가게 하는 대신, 의사가 방사성동위원소를 병변에 직접 넣으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신기술(NET) 인증을 받은 광가교 소재로 만든 생분해성 히알루론산(HA)을 마이크로겔(microgel, 비드)로 만들고 여기에 의사가 주사기나 카테터로 치료용 방사성동위원소를 병변에 국소적으로 주입하여 방사선을 조사하는 방식인 셈이다.

이 방식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첫 동물시험 결과가 국제학술지에 실렸다.

부산대 양승윤 교수(바이오소재과학과)와 부산대병원 김훈수(피부과), 김근영(핵의학과) 교수, SNvia 김소담 박사 연구팀 논문이 8월 10일 약물전달 분야 국제학술지(Journal of Controlled Release, 약학 분야 상위 3%대 학술지)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이후 ‘메디컬엑스프레스’(medicalxpress), ‘뉴스메디컬’(news-medical) 등 해외 전문매체도 이를 잇따라 소개했다. 정식 출판은 10월 10일이다.

켈로이드에 넣었더니 2주 만에 무슨 일이 벌어졌나

연구진이 먼저 시험한 대상은 암이 아니라 켈로이드(keloid)였다. 켈로이드는 상처가 아문 뒤에도 섬유아세포와 흉터 조직이 계속 증식해 원래 상처 범위를 넘어 두껍게 솟아오르는 질환이다. 치료해도 다시 커지는 경우가 많아 관리가 까다롭다.

연구진이 동결건조한 히알루론산 마이크로 미립구에 방사성동위원소인 요오드-131(¹³¹I)을 표지하자, 동결건조 과정에서 생긴 미세한 구멍들이 방사성동위원소 용액을 빠르게 흡수하며, 10분 이내 90% 이상 표지가 가능했다.

환자에게서 얻은 켈로이드 조직을 이식한 동물모델에 주입하자 미립구는 병변에만 선택적으로 머물렀고, 2주 뒤 켈로이드 크기는 약 70% 줄었다. 주변 정상조직이나 갑상선 등 장기에서는 방사성 신호나 손상이 관찰되지 않았다. 주입된 미립구는 몇개월에 걸쳐 천천히 분해된다

다만 사람에게서 같은 효과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이번 연구는 환자 유래 조직을 이용한 동물실험 단계로, 실제 치료제가 되려면 적정 방사선량·장기 안전성·재발률 등을 추가로 검증해야 한다.

켈로이드 다음은 어디로 향하나

SNvia가 보는 최종 시장은 켈로이드에 머물지 않는다. 회사는 현재 수술이 불가능한 간암치료를 위한 ‘동맥경유 방사선색전술’(TARE)용 방사성 미립구 개발을 목표로 동남권원자력의학원(원장 정승필)과 함께 비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간으로 가는 동맥에 카테터를 넣어 종양 주변 혈관까지 미립구를 보내 혈류를 막는 동시에 방사선을 조사하는 방식이다.

이강오 SNvia 대표는 켈로이드 연구 결과를 TARE용 미립구 개발과 연계해 사업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 대표는 이 방식의 강점을 두 가지로 짚는다. 하나는 안전성이다. 동위원소 위치가 병변에 고정되므로 방사성리간드치료(RLT)제의 정맥투여 방식에서 나타나는 ‘비표적분포’(off-target distribution)와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경제성이다. 플루빅토처럼 암세포를 찾아갈 별도의 리간드가 필요 없어 제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며 저렴하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의사가 중재시술(intervention)이나 주사(injection)로 접근 가능한 병변이라면 이비인후과·산부인과·피부과·정형외과·안과·비뇨기과 등 다양한 분야의 고형암으로 적응증을 넓힐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암종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병변 위치·크기·주변 정상조직 등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진짜 승부는 '병원에서 만들어 쓸 수 있느냐'

SNvia가 주목하는 지점은 미립구 자체보다 방사성의약품을 만들고 공급하는 전반적인 생태계이다.

방사성동위원소는 반감기가 수시간~수일로 짧아 대량 생산 후 오래 보관해 두고 쓰기가 어렵다. 그래서 현재 방사성의약품이나 관련 의료기기를 해외에서 빈번하게 수입해야 하며, 국내에서 제조한 진단용 방사성동위원소도 신속하고 안전하게 병원까지 배송이 이루어져야 한다.

SNvia 방식은 이 문제를 둘로 나눈다. 방사성동위원소가 표지되지 않은 미립구는 미리 만들어 병원에 재고로 둔다. 시술 일정이 잡히면 필요한 동위원소만 급받아, 병원에 설치된 핵의학과 조제소에서 30분 내에 주입 가능한 제형을 만든다. 병원이 치료 직전에 '현장조제'하는 현재의 시스템과 매우 유사한 방식이다.

사업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표는 “완제품을 해외에서 들여오는 지금 구조에서 벗어나, 미립구는 국내에서 만들고 동위원소도 국내 GMP제조소에서 생산된 제품을 공급받아 병원에서 최종 조제하는 생태계가 구축된다면 해외에서 방사성 의료제품을 수입하는 비용을 절감하는 것은 물론 방사성의약품 기술 수출도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그 동위원소를 부산 기장에서 만든다면

이 지점에서 SNvia의 기술은 부산 기장군 '동남권방사선의·과학산업단지'와 만난다. 기장에는 의료·산업용 방사성동위원소 생산을 위한 수출용신형연구로가 건설되고 있다. 내년부터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기장에서 만든 동위원소를 병원 핵의학과로 공급하고, 병원은 미리 갖고 있던 생분해성 미립구에 동위원소를 표지하여 환자 맞춤형 방사성의약품을 현장에서 조제해 병변에 주입하는 그림이다.

사진=부산 기장 동남권방사선의과학산업단지

물론 아직 '기장에서 생산한 치료용 방사성동위원소→SNvia 생분해성 미립구에 표지→지역 병원 치료'라는 공급망이 실제로 구축된 것은 아니다. 어떤 동위원소를 어떤 제품으로 허가받아 어느 병원에서 쓸지도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한편 부산의 방사성의약품 산업을 '단지 좋은 치료제를 해외에서 수입해 병원에서 사용하는 구도'로만 볼 필요는 없다. 치료용 방사성동위원소를 지역에서 생산하고, 이를 안전하게 전달하여 치료효과를 높일 약물전달기술(DDS)을 지역 기업이 개발하고, 병원에서는 이를 환자 맞춤형으로 조제하여 실제 치료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의료산업 생태계' 구축이라는 큰 그림을 염두에 두고 산·학·연·병·관이 전향적으로 협력해야 할 때다.

켈로이드 크기를 2주 만에 70% 줄인 작은 마이크로겔 하나가 부산을 방사성동위원소 생산기지를 넘어 글로벌 방사성의약품 생산기지로 만들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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