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02일 (일)

평택 미군기지 백린 누출에 주민 대피…피부에 닿으면 왜 위험할까?

공기 만나면 쉽게 발화해 깊은 화상…고농도 연기 흡입 땐 폐 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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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6년 미 공군의 더글러스 A-1E 스카이레이더 전투기가 백린 폭탄으로 남베트남에 있는 베트콩 진지를 공격하고 있다. 베트남전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백린탄 폭격의 주요 목적은 적의 시야를 차단하는 연막 생성과 800도가 넘는 고열로 적의 진지나 장비를 불태워 접근을 억제하는 소이 공격의 두 가지다.  사진=퍼블릭 도메인

경기 평택시 미군기지에서 7월 28일 백린(白燐·white phosphorus) 누출 신고가 접수돼 한때 인근 주민들에게 대피명령이 내려졌다. 사고는 기지 안에서 수습됐고 인명피해도 없었다. 재난문자에 ‘피부 노출 주의’가 명시되면서 백린이 사람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이 쏠린다.

이날 오후 5시 7분쯤 평택시 서탄면에 있는 오산공군기지(K-55)에서 백린이 누출됐다는 신고가 경찰과 소방당국에 접수됐다.

평택시는 오후 5시 37분 ‘대피명령 발령’이라는 제목으로 “17시 7분경 평택시 서탄면 K-55 미군기지 내 백린 누출. 인근 주민은 피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라는 긴급재난문자를 보냈다.

오후 6시 13분에는 “부대 내 조치 완료. 인근 주민들은 일상생활로 복귀 바랍니다”라는 문자를 보내 대피명령을 해제했다. 첫 대피문자를 발송한 지 36분 만이다.

소방당국은 장비 9대와 인력 31명을 동원해 미군 측의 수습을 지원했다. 경찰은 기지에서 300~500m 떨어진 곳에 순찰차를 배치해 시민의 접근을 막고 차량 우회를 안내했다.

당시 백린탄 탄두 2개에서 백린이 흘러내렸으며, 누출량은 알려지지 않았다. 미군은 자체 소방대와 폭발물처리반을 동원해 사고를 수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에 미 공군 부사관이 무기체계 훈련 중 연막탄용 81㎜ 백린 박격포탄을 장전하고 있다. 백린탄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사진=퍼블릭 도메인

군, 연막탄·조명탄·표지탄으로 활용…전쟁·액션 영화 단골 등장

백린은 흰색이나 옅은 노란색을 띠는 왁스 형태의 물질이다. 공기 중 산소와 만나면 쉽게 불이 붙는다. 산소를 차단하거나 물질이 모두 탈 때까지 연소가 이어질 수 있다.

백린이 타면 짙은 흰 연기가 생긴다. 군에서는 이 연기로 병력이나 장비의 움직임을 가린다. 특정 위치를 알리는 표지탄이나 주변을 밝히는 조명용 탄약, 불을 내는 소이용 탄약에도 백린을 쓴다. 쉽게 불이 붙고 많은 연기와 열을 내는 성질을 군사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다만 백린이 들어갔다고 해서 모든 탄약이 소이탄인 것은 아니다. 탄약의 설계와 사용 목적에 따라 용도가 달라진다.

1996년 한국 평택의 오산 공군기지에서 미 공군 병사가 표지탄용 70㎜ 백린 로켓을 점검하고 있다. 관리를 잘못하면 부대 인근 민간인 생활지역에 피해를 줄 수도 있지만, 화학무기도, 금지무기도 아니어서 규제가 쉽지 않다. 사진=퍼블릭 도메인

피부에 붙으면 깊은 화상…꺼진 듯 보여도 다시 타

백린이 몸에 직접 닿았을 때 가장 우려되는 것은 화상이다. 불이 붙은 백린 입자는 피부나 옷에 달라붙어 심한 통증을 일으킨다. 뜨거운 열로 피부를 태울 뿐 아니라, 타는 과정에서 생긴 물질이 피부 조직에 화학적 손상도 준다.

백린은 공기와 닿아 있는 동안 계속 탄다. 피부에 백린 입자가 남아 있으면 불이 꺼진 듯 보이다가도 다시 공기와 접촉하는 순간 불이 붙을 수 있다.

지방에 잘 녹는 성질이 있어 피부 아래로 파고들기도 쉽다. 노출량이 많거나 오랫동안 접촉하면 피부뿐 아니라 근육 등 깊은 조직까지 손상될 수 있다. 심한 경우 화상이 뼈 가까이까지 이를 수 있다. 피부를 통해 많은 양이 흡수되면 간과 콩팥, 심장에도 이상이 생길 수 있다.

이런 피해는 불이 붙은 백린이나 백린 입자가 몸에 직접 닿았을 때 생긴다. 이번 평택 사고에서는 기지 안팎에서 다친 사람이 보고되지 않았다.

고농도 연기 마시면 기침·호흡곤란…폐부종도 주의

백린이 타면 인 산화물이 섞인 짙은 흰 연기가 생긴다. 이 연기는 눈과 피부는 물론 코와 목의 점막을 자극한다. 눈이 따갑고 눈물이 나거나 기침, 목 통증, 가슴 답답함, 호흡곤란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야외에서 소량의 연기가 빠르게 흩어지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수 있다. 좁고 환기가 잘되지 않는 곳에서 짙은 연기를 마시면 호흡기가 심하게 손상될 수 있다. 폐에 물이 차는 폐부종이나 호흡부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연기를 마신 뒤 기침이나 호흡곤란이 가라앉지 않거나 점점 심해진다면 곧바로 진료를 받아야 한다. 폐 손상은 노출 직후보다 몇 시간 지난 뒤 뚜렷해지기도 한다.

피부에 닿았다면 찬물로 씻고 공기 차단해야

백린은 물로 끌 수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설명은 아니다. 물로 백린을 없애거나 중화할 수는 없다. 다만노출 부위를 물에 충분히 적시면 산소가 닿지 않아 연소와 재발화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

백린이 피부에 닿았다면 우선 현장을 벗어나 119에 신고해야 한다. 노출 부위는 찬물이나 생리식염수로 충분히 씻은 뒤 젖은 천으로 덮어 공기와 닿지 않게 해야 한다.

피부나 옷에 붙은 백린 입자를 맨손으로 떼어내서는 안 된다. 오염된 옷도 다른 피부에 닿지 않도록 조심해서 벗어야 한다. 눈에 연기나 입자가 들어갔다면 깨끗한 물로 충분히 씻고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평택의 K-55 오산기지에서 미 공군 F-35 전투기가 이륙하는 모습. 기지와 주민 거주지 사이의 거리가 멀지 않다. 사진=연합뉴스

화학무기로 보진 않지만 사용 범위 제한

백린은 인체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화학무기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독성 자체보다 열과 불, 연막 효과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다만 백린을 불을 내거나 사람에게 화상을 입힐 목적으로 사용하면 소이무기 관련 국제협약의 제한을 받을 수 있다. 이 협약은 민간인과 민간시설에 대한 소이무기 공격을 금지하고, 민간인이 밀집한 지역에서의 사용도 엄격히 제한한다. 연막이나 조명용으로 쓰더라도 민간인 피해를 피하거나 줄이기 위한 조치를 해야 한다.

다행히 이번 사고는 기지 안에서 수습돼 주민 피해로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오산공군기지 주변 주민들은 사고가 나도 어떤 물질이 얼마나 새어 나왔는지, 바람을 타고 주거지까지 퍼질 가능성은 없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결국 재난문자와 관계기관의 안내를 믿고 움직일 수밖에 없다.

당국은 위험물질의 보관·관리 상태를 평소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사고가 나면 누출 물질과 양, 확산 범위는 물론 주민이 대피해야 하는지 실내에 머물러야 하는지, 창문과 환기장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야 한다.

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경고나 “조치를 마쳤다”는 통보가 아니라 자신의 건강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정확한 정보다. 군사기밀은 보호하되, 누출 물질과 확산 범위, 주민 행동요령처럼 생명과 안전에 필요한 정보는 숨김없이 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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