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물을 섭취하면 장은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분은 흡수하고, 세균이나 독소, 소화되지 않은 물질은 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내는 강력한 검문소(장벽) 역할을 한다.
이 장벽은 세포들이 서로 손을 꽉 잡고 있는 것처럼 아주 촘촘한 고리(밀착연결, Tight Junction)로 연결되어 있다. 건강한 장벽은 완전히 소화된 아주 작은 단위의 영양분만 통과시켜 혈액으로 들어가게 한다.
하지만 어떤 원인으로 인해 이 촘촘했던 세포 간 고리가 느슨해지면, 장벽에 미세한 틈이 생기면서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 입자, 세균, 독소 등이 그 틈을 뚫고 혈액으로 들어간다.
혈액 속으로 들어온 각종 이물질을 발견한 면역세포들은 이를 '불청객(敵)'으로 인식하고 공격을 시작한다. 이에 따라 소화기뿐만 아니라 전신적인 염증 반응이 일어나는데, 이때 나타나는 여러 가지 증상을 총괄하여 ‘장누수증후군’(leaky gut syndrome)이라 한다. 정식 학술 명칭은 '장관 투과성 증가(Increased intestinal permeability)'이다 [1, 2].
건강한 장은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만 통과시키지만, 장 누수가 생기면 마치 갈라진 벽 사이로 빗물이 새는 것과 유사하게 유해 물질들이 몸속으로 유입된다 (아래 그림) [3].

장벽 무너뜨리는 주범, '서구화된 식단'
장 누수는 왜 생기나? 특정 약물 복용이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장벽 구조가 무너지는 가장 흔한 원인은 고지방, 고단백, 가공식품, 설탕 등으로 구성된 '서구화된 식단'이다. 특히 유익균의 먹이가 되는 ‘식이섬유’가 부족해지면 단쇄지방산 생성이 감소하고, 이는 장 점막을 약하게 하여 장 누수를 불러온다 [4].
유익균의 먹이를 '프리바이오틱스'라 한다. Pre-는 “~보다 먼저(before)”, Bio-는 “생명(life)”, -tics는 “~와 관련된 물질”이란 뜻으로 “생명 이전에 필요한 물질” 즉, 미생물이 자라기 위해 먼저 필요한 물질(먹이)을 의미한다. 프리바이오틱스 중 대표적인 것은 과일·채소에 들어있는 식이섬유다. 대장 속 '유익균'은 식이섬유를 먹고 자란다.
식이섬유는 식물 세포벽의 구성 성분으로, 식물만이 식이섬유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식이섬유를 얻으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식물에서 얻는 것이다.
식이섬유와 섬유질은 사람이 "소화할 수 없는 식물의 성분"을 뜻하는,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약간의 의미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소의 주식(主食)인 풀은 섬유질이지만 사람은 풀을 먹을 수가 없어 식이섬유는 아니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섬유질을 ‘식이섬유’라 한다. 과일, 채소, 통곡물, 콩류, 견과류, 씨앗류, 해조류에 풍부하게 들어있다.
장 건강 지켜주는 유익균은 뭘 먹고 사나?
'복합 탄수화물'인 식이섬유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구조를 가진다. 크게 나누어 물에 녹는지 안 녹는지, 발효가 되는지 안 되는지 등으로 분류한다 [5].
식이섬유 중 물에 잘 녹는 수용성 섬유(이눌린, 펙틴, 올리고당 등)는 주로 과일·채소에 있으며 유익균에 의해 발효된 후 단쇄지방산을 생성한다.
물에 잘 녹지 않는 불용성 섬유(셀룰로스, 리그닌, 저항성 전분 등)는 주로 통곡물과 뿌리채소에 있으며 미생물에 의해서 분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물을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나 대변을 굵고 부드럽게 만들어 편한 배변 활동을 도와준다.
식이섬유에는 수용성과 불용성의 중간쯤 되는 성질을 가진 것도 있다. 식물성 식품 속엔 수용성과 불용성이 다양한 비율로 섞여 같이 존재한다.
'정제 탄수화물'인 흰 빵, 흰 밥, 흰 밀가루 음식에는 식이섬유가 적어 소장에서 빨리 흡수되고 대장까지 넘어가지 않으니, 유익균에겐 별 도움이 안 된다. 고기·생선·우유·계란 등 동물성 식품에는 식이섬유가 하나도 들어있지 않아 유익균에겐 재앙이다.
식이섬유가 부족한 식사를 하면 유익균 감소로 단쇄지방산이 줄어들고, 점막이 약해져서 장 누수를 비롯한 각종 염증성 장 질환이 증가한다. 약해진 점막에 독성이 강한 담즙산이 자극하면 '용종(polyp)'이나 '대장암'이 생길 위험도 증가한다 [4].
식이섬유는 비만, 당뇨병, 고지혈증, 고혈압, 변비, 대장암 등 현대인이 가장 흔히 앓고 있는 질환을 예방 및 치료할 수 있다(아래 표) [6].

유산균 제품보다 강력한 '현미밥 채식'
충분한 식이섬유 섭취는 위장관에서 발생하는 노폐물을 대변으로 제거하는 가장 훌륭한 ‘인체 정화’ 방법이다. 필자에게 수술받는 모든 환자는 현미밥에 채식하게 된다. 평생 한 번도 안 해본 식단이라 다들 낯설어하지만, 2~3일 지나면 수년간 고생했던 변비가 해결되고 ‘숙변’이 다 나와 너무 시원해졌다고 고마워하는 분들이 많다. 그동안 사 먹은 온갖 종류의 유산균 제품들보다 훨씬 강력하고 효과적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가스 발생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간혹 유튜브에 전문가라는 분들이 나와 식이섬유 섭취는 가스를 발생시켜 북부 팽만감 등 부작용을 유발하니 섭취량을 줄이라는 조언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어리석은 조언이다.
식이섬유를 섭취하면 가스가 생긴다.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장내 미생물군은 양조장과 같아서 식이섬유를 발효할 때 가스가 발생한다. 동시에 단쇄지방산을 생산하는 등 건강에 유익한 혜택을 준다.
약간의 가스 때문에 식이섬유 섭취를 포기한다는 건 그야말로 '소탐대실'이다. 오히려 가스 발생은 장내 미생물군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좋은 신호다. 걱정하지 말자.
식이섬유 섭취가 부족하면 장내 유익균 감소로 장 점막이 약해지고 ‘장 누수’를 불러온다. 장 점막을 통해 유입된 이물질들은 면역계를 자극하여 '염증'을 일으킨다.
가스는 장내 미생물이 일하고 있다는 신호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염증성 장 질환뿐만 아니라 알레르기, 자가면역질환, 대사질환, 대장암 등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즉, 식이섬유 부족은 장 문제를 넘어 온몸 건강을 흔드는 출발점이 된다 [7].
현대의학이 발전함에 따라 식이섬유와 장의 중요성이 점점 더 두드러지고 있다. 하지만 2천5백 년 전,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이미 이 문제를 간파하고 있었고,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다.
"모든 질병은 장에서 시작된다(All disease begins in the gut)."
놀랍지 아니한가?
송무호 의학박사, 정형외과·생활습관의학 전문의

참고문헌
1. WK Jeon. Leaky Gut Syndrome. Korean J Fam Pract 2011;1(1):1-6.
2. H Usuda, T Okamoto, K Wada. Leaky gut: effect of dietary fiber and fats on microbiome and intestinal barrier. International journal of molecular sciences 2021;22(14):7613.
3. Y Kinashi, K Hase. Partners in leaky gut syndrome: intestinal dysbiosis and autoimmunity. Frontiers in Immunology 2021;12:673708.
4. K Makki, EC Deehan, J Walter, F Bäckhed. The impact of dietary fiber on gut microbiota in host health and disease. Cell host & microbe 2018;23(6):705-715.
5. G Su, X Qin, C Yang, et al. Fiber intake and health in people with chronic kidney disease. Clin Kidney J 2022;15(2):213-225.
6. D Dhingra, M Michael, H Rajput, RT Patil. Dietary fibre in foods: a review. J Food Sci Technol 2012;49(3):255-66.
7. A Fasano. All disease begins in the (leaky) gut: role of zonulin-mediated gut permeability in the pathogenesis of some chronic inflammatory diseases. F1000Res 2020;9:Rev-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