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료 후 검사에서 암이 잘 조절되고 재발 징후도 없더라도 환자가 심한 피로나 통증에 시달리고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치료 성과를 충분히 설명했다고 할 수 있을까.
최근 의료계에서는 생존율이나 재발 여부뿐 아니라 치료 뒤 환자가 실제로 어떻게 지내는지도 의료 성과로 함께 보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은 유방암 환자에게 적용해 온 이런 ‘가치기반의료(Value-Based Healthcare)’를 폐암 등 다른 암종으로 넓힌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 11일 암병원 중강의장에서 ‘제1회 삼성서울병원 가치기반의료 국제 심포지엄’을 열었다고 14일 밝혔다.
치료 성적 좋아도 환자 삶은 다를 수 있어
가치기반의료는 얼마나 많은 환자를 진료했는지보다 치료 뒤 환자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생존이나 재발 같은 임상 결과뿐 아니라 환자가 느끼는 증상과 기능, 삶의 질도 함께 살핀다.
치료 결과가 좋아 보여도 환자는 통증이나 피로, 불안 때문에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치료 뒤 환자의 상태를 평가할 때 통증과 피로, 불안·우울뿐 아니라 팔과 유방의 증상, 신체·정서·인지·사회 기능, 일할 수 있는 능력, 신체상과 성기능까지 살핀다. 이런 평가 기준은 국제건강성과측정컨소시엄(ICHOM)이 비전이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마련한 국제 표준에 포함돼 있다. 생존율이나 재발 여부만으로는 환자가 실제로 겪는 치료 결과를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외래 갈 때마다 환자가 직접 삶의 질 답한다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은 환자가 자신의 증상과 건강 상태, 삶의 질을 직접 답하는 환자자기평가결과(PRO·Patient-Reported Outcomes)를 진료에 활용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은 2018년부터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수술 시점과 이후 외래 방문 때마다 PRO를 받고 있다. 의료진은 이를 통해 삶의 질 변화를 살피고 치료 방향을 정하는 데 참고한다. 현재 응답률은 80% 이상이다.
한 번 묻고 끝내는 설문이 아니라 치료 과정에서 삶의 질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계속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환자 입장에서는 검사 수치만으로 드러나지 않는 불편을 의료진에게 전달할 통로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다. 의료진도 같은 질문에 대한 응답 변화를 비교하면 치료 전후 환자의 상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삼성서울병원은 지난 4월 비전이성 유방암 분야에서 ICHOM 1단계(Level 1) 인증을 받았다. 병원에 따르면 한국 의료기관 가운데 처음이다.
ICHOM은 환자에게 중요한 치료 결과를 같은 기준으로 측정할 수 있도록 국제 표준을 만드는 비영리기구다. 환자와 의료진, 연구자 등이 함께 질환별로 어떤 결과를 측정할지 정한다.

유방암에서 폐암으로⋯무엇을 넓히나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은 유방암에서 쌓은 환자 성과 측정 경험을 폐암 등 다른 암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단순히 설문 대상 암종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환자가 직접 말한 증상과 삶의 질을 치료 성적과 함께 보고, 그 변화를 실제 진료에 활용하는 방식을 다른 암 환자에게도 적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장기적으로는 암병원을 넘어 병원 진료 전반으로 넓힐 방침이다.

이번 국제 심포지엄에서도 이런 방향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첫 세션에서는 임상 레지스트리 구축과 폐암 연구,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폐암 연구, ICHOM 인증 경험 등을 다뤘다. 치료 결과를 어떻게 데이터로 쌓고 다시 진료 개선에 활용할지가 주요 주제였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여러 진료과가 함께 참여하는 암 환자 진료와 노인종양학 모델, 고령 암생존자의 정신건강, 간호사가 주도하는 노인종양학 진료 등이 소개됐다.
해외에서는 국제폐암연구협회(IASLC) 회장을 지낸 헤더 웨이클리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종양내과 과장과 서머 한 스탠퍼드 암연구소 교수 등 5명이 참석했다. 호주 피터맥컬럼 암센터와 리버풀 암치료센터 전문가들도 참여했다.
삼성서울병원에서는 신동현 간암센터 교수, 이세경 유방암센터 교수, 양경미 방사선종양학과 교수가 사례를 발표했다.
김희철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장은 “진료 건수나 재원일수 같은 치료 과정 중심의 지표만으로는 환자가 실제로 얻은 건강과 삶의 질을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며 “치료 성적뿐 아니라 환자 경험과 삶의 질을 치료 성과의 중요한 요소로 관리해 왔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