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신 사실을 알지 못해 산전 검사를 한 번도 받지 않은 31세 여성이 출산을 앞두고 양쪽 눈의 중심 시력이 심하게 떨어진 사례가 보고됐다. 병원을 찾았을 때 여성의 혈압은 215/163mmHg까지 올라 있었고, 검사 결과 중증 전자간증과 희귀 망막질환이 발견됐다.
말레이시아 말라카 종합병원과 말레이시아과학대학병원 의료진은 최근 국제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해당 사례를 보고했다.
이 여성은 첫 임신이었지만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별다른 지병은 없었다. 그러던 중 양쪽 눈의 중심부가 갑자기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눈의 통증이나 복시, 비문증, 번쩍이는 빛, 두통, 메스꺼움 등 다른 증상은 없었다.
여성은 시력에 이상 증상이 시작된 지 사흘째 병원을 찾았다. 당시 임신 36주였으며 이미 진통이 진행되고 있었다. 혈압은 215/163mmHg에 달했고, 양쪽 다리는 정강이 중간까지 부어 있었다. 소변에서 단백질도 검출돼 중증 전자간증으로 진단됐다.
의료진은 먹는 혈압약과 정맥주사제를 투여하고, 전자간증이 경련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황산마그네슘 치료를 시행했다. 혈압은 치료 후 서서히 낮아졌다.
정상 시력이라면 60m서 볼 글자, 2∼3m에서 겨우 확인
안과 검사에서 최대교정시력은 오른쪽 눈 2/60, 왼쪽 눈 3/60이었다. 정상 시력을 가진 사람이 60m 거리에서 식별할 수 있는 글자를 각각 2m와 3m 앞에서야 볼 수 있다는 의미로, 시력이 매우 심하게 떨어진 상태다.
눈 앞부분과 안압은 정상이었지만, 안저검사에서는 양쪽 시신경이 심하게 부어 있어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망막 중심부인 황반 주변에는 별 모양의 침착물이 관찰됐으며, 망막의 작은 혈관이 막힐 때 나타나는 특징적인 흰색 병변도 넓게 퍼져 있었다.
빛간섭단층촬영(OCT)에서는 황반 부종과 함께 망막 아래에 액체가 고여 일부가 들뜬 장액성 황반박리가 확인됐다. 의료진은 이러한 소견을 종합해 전자간증과 관련해 발생한 ‘푸르처 유사 망막병증(Purtscher-like retinopathy·PLR)’으로 진단했다.
혈액검사에서는 단백뇨와 빈혈, 혈중 단백질·알부민 감소, 일부 효소 수치 상승 등이 나타났다. 다만 전자간증의 중증 합병증인 HELLP 증후군의 진단 기준을 충족하지는 않았다.
여성은 사흘 동안 고용량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은 뒤 3주에 걸쳐 먹는 스테로이드의 용량을 줄였다. 두 달 뒤 검사에서는 망막 부종과 박리 등은 호전됐지만 시력은 나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이동 등 현실적인 문제로 추적 진료를 중단해 장기적인 시력 변화는 확인되지 않았다.
망막의 작은 혈관 막히면서 중심 시력 손상
푸르처 망막병증은 본래 심한 머리 외상이나 흉부 압박, 긴뼈 골절 등을 겪은 뒤 드물게 나타나는 망막질환이다. 외상이 없는데도 췌장염이나 신부전, 지방색전증, 자가면역질환 또는 전자간증과 함께 비슷한 망막 변화가 발생하면 ‘푸르처 유사 망막병증’이라고 부른다.
정확한 발생 과정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염증 반응과 혈액 성분 등이 망막의 작은 혈관을 막아 혈액과 산소 공급을 방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선명한 중심 시력을 담당하는 황반까지 혈액 공급이 차단되면 갑작스럽고 심각한 시력 저하가 나타날 수 있다.
전자간증에서도 시야 흐림, 번쩍이는 빛, 시야 일부가 보이지 않는 증상 등 여러 눈 관련 이상이 나타날 수 있다. 혈압이 크게 오르면 망막과 맥락막의 혈관이 손상되고, 망막 아래에 액체가 고이거나 망막이 들뜨기도 한다.
일반적인 전자간증 관련 장액성 망막박리는 출산과 혈압 조절 후 수주 안에 회복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푸르처 유사 망막병증처럼 망막의 미세혈관이 넓게 막히면 황반 신경세포가 손상돼 부종과 박리가 가라앉아도 시력이 회복되지 않을 수 있다.
의료진은 이번 사례 여성도 병원을 찾았을 당시 이미 황반에 심한 허혈성 손상이 발생해 시력이 회복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했다. 황반 허혈은 황반으로 가는 혈액과 산소가 부족해진 상태를 말한다.
국내 전자간증·자간증 진료 비율 2.9%
전자간증은 임신 20주 이후 새로 발생한 고혈압과 함께 단백뇨나 장기 기능 이상이 나타나는 임신 합병증이다. 단백뇨가 없더라도 혈소판 감소, 간이나 신장 기능 저하, 폐부종, 지속적인 두통 또는 시야장애가 동반되면 전자간증으로 진단할 수 있다.
대한고혈압학회가 국민건강보험 자료를 분석해 2026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국내 임신·출산 관련 의료서비스 이용자 가운데 전자간증 또는 자간증으로 진료받은 비율은 2.9%였다.
만성고혈압과 임신성 고혈압 등을 모두 포함한 임신 중 고혈압성 질환 진료 인원은 2005년 약 2만 2800명에서 2023년 3만 명 이상으로 32% 증가했다. 같은 기간 출생아 수가 크게 줄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질환 부담이 상대적으로 커졌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전자간증 초기에는 혈압만 올라 별다른 증상이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병이 진행되면 심한 부종과 두통, 명치나 오른쪽 윗배 통증, 소변량 감소, 시야 흐림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심한 경우 경련을 일으키는 자간증이나 뇌출혈, 간 손상, 폐부종, 태반으로 가는 혈류 감소 등이 발생해 산모와 태아 모두 위험해질 수 있다.
이번 사례의 여성은 산전 검사를 받지 않아 혈압이 언제부터 상승했는지, 망막 손상이 언제 시작됐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의료진은 전자간증이 늦게 발견되면서 치료 전에 망막 손상이 상당히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갑작스러운 시야 변화는 즉시 확인해야
푸르처 유사 망막병증에는 아직 효과가 확립된 표준 치료법이 없다. 원인 질환을 치료한 뒤 시력이 자연스럽게 좋아지는 환자가 있는 반면, 스테로이드 치료 후 호전되거나 심한 시력 저하가 남는 경우도 보고됐다. 진단 당시 망막과 황반의 손상 정도가 예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신 중 갑자기 시야가 흐려지거나 일부가 보이지 않고, 번쩍이는 빛이나 검은 점이 나타난다면 단순한 눈의 피로로 넘겨서는 안 된다. 특히 심한 두통이나 명치 통증, 갑작스러운 부종, 호흡곤란이 함께 나타나면 전자간증의 경고 신호일 수 있으므로 즉시 진료받아야 한다.
이번 사례는 전자간증이 뚜렷한 증상 없이 진행될 수 있으며, 드물게 망막의 혈액 공급을 방해해 심각한 시력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기적인 산전 진료를 통해 혈압과 소변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자주 묻는 질문]
Q1. 전자간증이 생기면 시력이 떨어질 수 있나요?
A. 네. 전자간증으로 혈압이 크게 오르면 망막과 맥락막의 혈관이 손상돼 시야 흐림, 번쩍이는 빛, 시야 일부가 보이지 않는 증상 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드물게 망막박리나 망막의 혈액 공급 장애로 심각한 시력 손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Q2. 푸르처 유사 망막병증은 어떤 질환인가요?
A. 외상 없이 전자간증, 췌장염, 신부전 등의 전신질환과 함께 발생하는 희귀 망막질환입니다. 망막의 작은 혈관이 막혀 혈액과 산소 공급이 줄면서 갑작스러운 시력 저하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Q3. 임신 중 어떤 시야 변화가 나타나면 병원을 찾아야 하나요?
A. 갑자기 시야가 흐려지거나 일부가 보이지 않고, 번쩍이는 빛이나 검은 점이 나타난다면 즉시 진료받아야 합니다. 특히 심한 두통, 명치 통증, 갑작스러운 부종, 호흡곤란이 동반되면 전자간증의 경고 신호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