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에서 최소한의 일만 하며 자리를 지키는 태도를 가리키는 ‘조용한 이탈(quiet quitting)’이라는 표현이 결혼생활에도 쓰이고 있다. 이혼하지는 않지만, 대화와 정서적 노력, 일상적 관심을 서서히 줄여가는 모습을 말한다.
뉴욕의 이혼 전문 변호사 제임스 섹스턴은 미국 폭스뉴스 디지털에 “관계를 끝내기 위한 극적인 행동은 하지 않고, 그냥 멈추는 것”이라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관계에 참여하지 않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혼이 주는 고통을 겪는 것보다 관계에서 조용히 멀어지는 편이 더 쉽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관계를 끝낸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섹스턴은 “이별을 만든 사람이 아니라 이별의 피해자로 보이며 더 많은 동정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섹스턴은 잦은 다툼보다 관계를 위해 애쓰지 않는 태도가 더 큰 경고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사람들이 싸운다는 것은 아직 관계에 마음을 걸고 있다는 뜻”이라며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말했다.
마이애미의 임상 성학자이자 공인 정신건강 상담사인 민디 드세타 박사는 결혼 30년 차 무렵 상담을 찾는 부부가 많아지고 있다면서, 자녀가 독립하거나 은퇴를 앞두면서 가족을 돌보느라 바빴던 시간이 지나고, 두 사람의 관계를 마주하게 되는 사례를 들었다.
드세타 박사는 “아이들이 어릴 때 이미 서로의 관계에서 조용히 멀어지고 있었구나 하고 깨닫는 부부들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신체적 성적 친밀감에 대해 대화하는 법, 한 팀으로 움직이는 태도, 각자의 자율성, 꾸준한 데이트를 통해 상대를 알아가고 매일 다시 마음을 얻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관계에서 마음을 거둔 부부도 가사와 책임을 함께 처리하며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정서적 거리는 그와 별개로 커질 수 있다.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고 각자 다른 프로그램을 보거나, 잠드는 시간과 친구 모임, 운동 시간이 달라지면서 일상이 나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두 전문가는 멀어진 부부 관계를 돌보기 위한 4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작고 돈 들지 않는 표현부터 다시 하기
섹스턴은 관계를 회복하려고 거창한 이벤트부터 준비할 필요는 없다면서 관계 초반에 서로 좋아했던 간단한 표현을 다시 시작하는 편이 관계의 흐름을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좋은 아침’이라는 짧지만 다정한 문자, 상대를 칭찬하는 짧은 메모, 함께 들었던 노래를 보내는 행동이 여기에 들어간다. '내가 당신에게서 좋아하는 점 10가지'를 적은 이메일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는 “돈도 들지 않고 30초면 된다”며 “누구나 듣기 좋은 말이고, 서로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생에서 만나는 사람은 영원히 내게 주어진 존재가 아니라 잠시 함께하는 존재”라고 했다.
△함께 있을 때는 서로에게 집중하기
둘이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 휴대전화를 보거나 다른 일에 몰두하면 관계를 위한 시간은 줄어들 수 있다. 드세타 박사는 함께 영화를 보면서 한 사람이 계속 휴대전화를 확인한다면, 그 기기가 ‘관계의 세 번째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는 것은 당신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대신 그것을 선택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함께하는 활동에서는 화면보다 상대에게 시선을 두고, “오늘 하루는 어땠어?”처럼 서로의 생각과 일상을 묻는 일이 관계를 다시 잇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불만보다 좋았던 기억으로 대화 시작하기
관계가 멀어졌다는 불만을 바로 꺼내면 대화는 쉽게 결핍과 서운함에 머물 수 있다. 섹스턴은 “우린 이제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잖아”라고 말하기보다, 두 사람이 즐거웠던 기억을 꺼내고 그 시간을 다시 만들어 보자고 제안하는 방식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고쳐야 할 점에만 집중하는 일은, 처음에 왜 이 사람에게 끌렸는지를 떠올리는 일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상대 역시 관계 초반의 자기 모습과 멀어졌다고 느낄 수 있다며, “‘우리’가 되기 전의 ‘너’와 ‘나’를 서로 떠올리게 해주는 일이 필요할 수 있다”고 했다.
△다시 호감을 표현하고 데이트하기
드세타 박사는 파트너에게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현하는 행동이 기분을 높이고, 여전히 낭만적 관심이 있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결혼 뒤에도 상대를 계속 알아가고 다가가려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는 “매일 상대의 마음을 다시 얻기 위해 곁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은 방식으로라도 상대를 아끼고 생각하고 있다는 마음을 전하면, 관계에서 조용히 멀어지는 흐름을 끊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섹스턴은 질병이나 비극이 관계를 다시 돌보기 위한 계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함께 있을 수 있는 횟수, 만날 수 있는 횟수,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횟수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