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발골수종 환자가 65세를 넘었다는 이유만으로 자가조혈모세포이식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한국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다발골수종은 골수에서 항체를 만드는 형질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혈액암이다. 고령 환자가 많은 다발골수종에서 자가조혈모세포이식 시행 여부를 어떻게 결정할지는 진료 현장의 오랜 과제다. 최신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국에서 새로 다발성 골수종을 진단받은 환자는 2099명이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은 혈액병원 민창기 교수 연구팀이 다발골수종 환자에서 자가조혈모세포이식의 치료 효과와 경제성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청구자료로 분석한 연구 결과를 8일 밝혔다.
65~69세 환자를 분석했더니 이식을 받은 환자의 4년 생존율이 이식을 받지 않은 환자보다 12.8%포인트 높았다. 치료비는 더 들었지만 생존기간과 삶의 질을 함께 따졌을 때 비용효과성도 확인됐다.
공동 교신저자는 가톨릭대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최수인 교수, 제1저자는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 이정연 교수다. 연구 결과는 국제 보건경제성과연구학회(ISPOR) 공식 학술지 《Value in Health》에 지난 6월 온라인 공개됐다.
이식군 4년 생존율 67.8%⋯비이식군 55.0%
자가조혈모세포이식은 환자의 조혈모세포를 미리 채취해 보관한 뒤 고용량 항암치료를 하고 다시 몸에 넣는 치료다. 다발골수종에서 중요한 치료법이지만, 고령 환자는 치료를 견딜 수 있는 몸 상태와 동반질환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
연구팀은 2009~2024년 심평원 청구자료를 이용해 2017~2024년 새로 다발골수종을 진단받은 65~69세 환자 735명을 분석했다.
이 가운데 458명은 보르테조밉·탈리도마이드·덱사메타손(VTd)으로 유도치료를 받은 뒤 자가조혈모세포이식을 받았다. 나머지 277명은 이식하지 않았다. 이번 연구 대상 가운데 이식군 비율은 62.3%였다.
이식 여부는 환자의 건강 상태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연구팀은 이런 차이가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역확률가중법(IPTW)을 적용해 두 집단의 조건을 최대한 맞췄다. 장기 생존기간과 의료비는 치료·재발·사망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계산하는 반마르코프 모형으로 추정했다.

4년 전체생존율은 이식군 67.8%, 비이식군 55.0%였다. 이식군이 12.8%포인트 높았다.
사망 위험도 이식군에서 38% 낮게 나타났다.
다음 치료를 시작하기까지 걸린 기간도 차이가 났다. 이식군은 29.8개월, 비이식군은 19.7개월로 이식군이 약 10개월 더 길었다.
2990만원 더 들었지만 질보정수명 0.71년 늘어
연구팀은 치료 성적뿐 아니라 치료비도 함께 따졌다. 이식군은 비이식군보다 의료비가 약 2990만원 더 들었다.
반면 질보정수명(QALY)은 0.71년 길었다. 질보정수명은 얼마나 오래 사는지와 그 기간의 삶의 질을 함께 따지는 보건경제 지표다. 흔히 말하는 ‘건강수명’과는 개념이 다르다.
질보정수명 1년을 더 얻는 데 추가로 들어간 비용을 뜻하는 점증적 비용효과비(ICER)는 약 4240만원이었다. 연구진이 비용효과성을 판단할 때 적용한 기준인 약 5240만원보다 낮았다.
1000차례 시뮬레이션을 돌려 불확실성을 따져본 결과에서도 이식이 비용효과적일 확률은 70.3%를 기록했다. 즉 이식은 처음에 치료비가 더 들어가지만, 환자가 더 오래 살고 삶의 질도 유지한다는 효과까지 함께 따지면 추가 비용이 감당할 만한 수준이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한국의 상대적으로 낮은 이식 관련 의료비도 이런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봤다. 미국보다 이식에 들어가는 비용 부담이 작아 초기 치료비가 늘더라도 이후 재발이나 다음 치료를 늦추면서 얻는 이익이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2019년부터 70세 미만까지 급여⋯“나이만 봐선 안 돼”
한국에서는 2019년 9월부터 조혈모세포이식 건강보험 적용 연령이 만 65세 미만에서 만 70세 미만으로 확대됐다. 이에 따라 65~69세 환자도 다른 급여 요건을 충족하면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다.
다만 이번 연구가 65~69세 환자라면 누구나 이식을 받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연구진이 강조한 것은 주민등록상 나이만으로 이식 가능성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같은 68세라도 활동 능력이나 노쇠 정도, 동반질환에 따라 이식을 견딜 수 있는지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의 최신 다발골수종 진료지침도 같은 방향이다. 자가조혈모세포이식 여부를 나이나 신장 기능만으로 결정하지 말고 전반적인 건강 상태와 활동 능력, 노쇠 정도, 동반질환을 함께 평가하도록 권고한다.
민창기 교수는 “고령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식을 검토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여전히 있지만, 이번 분석은 65~69세 환자에서도 이식군의 생존기간이 더 길었고 비용효과성도 확인됐다는 것을 국내 데이터로 보여줬다”며 “이식 여부는 나이가 아니라 환자의 전신 상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수인 교수는 “해외 비용효과 연구는 약값과 의료비 구조가 달라 국내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며 “전 국민 청구자료를 토대로 국내 실정에 맞는 근거를 마련한 만큼 향후 급여 정책 논의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번 연구는 환자를 무작위로 나눠 이식 효과를 비교한 임상시험이 아니다. 심평원 청구자료를 추적해 분석한 관찰연구다.
연구팀이 통계기법으로 두 집단의 차이를 보정했지만 실제 신체기능이나 노쇠 정도, 의료진이 이식을 선택한 이유처럼 청구자료만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차이는 남을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결과만으로 이식이 사망 위험을 직접 38% 낮춘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이식군에서 사망 위험이 38% 낮게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이번 연구는 가톨릭 다발골수종 연구 네트워크(CAREMM)의 ‘CAREMM-2110’ 연구로 수행됐다.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 박성수·변성규 교수 등도 연구에 참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