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급의료와 고위험 산모·신생아 진료는 수익성이 낮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져야 하는 영역입니다. 그것이 대학병원의 존재 이유이고, 동산의료원이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대구·경북 의료계의 최대 화두는 단연 ‘지역 완결형 필수의료 체계’ 구축이다.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화되면서 중증 응급환자와 고위험 산모가 지역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이 같은 위기 속에서 계명대 동산병원이 권역응급의료센터와 중증모자의료센터 지정을 추진하며 지역 필수의료의 새로운 축을 세우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배재훈 계명대 동산의료원장이 있다. 기초의학자인 생리학 교수 출신인 그는 의료원의 기획과 경영, 대외협력을 두루 경험한 보기 드문 ‘종합형 리더’다.
취임한 지 반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생명의 원리를 연구한 학자이자 병원 경영을 책임지는 최고경영자의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그는 지역 의료의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배 원장은 인터뷰 내내 “환자 안전은 구호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증명돼야 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응급의료와 모자의료에 대한 선제적 투자 역시 같은 철학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그는 “지역민들이 서울로 가지 않아도 최고 수준의 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권역응급·중증모자센터는 병원 전체를 움직이는 핵심 운영체제
배 원장은 지역 완결형 필수의료 체계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에 비유했다. 생리학자로서 그가 주목한 것은 생명체가 극심한 스트레스와 위기 상황에서도 생존을 유지하는 ‘항상성(Homeostasis)’이다.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위기 상황에 즉각 개입해 생명을 살려내는 자율신경계와 심혈관계의 중추입니다. 중증모자의료센터는 다음 세대의 생명을 안전하게 잉태하고 보존하는 생명 유지의 근원과도 같습니다.”
그는 그러나 두 센터의 의미를 단순히 특정 진료 분야의 강화 차원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중증 응급환자와 고위험 산모를 24시간 완벽하게 치료하려면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마취통증의학과, 영상의학과 등 병원 전체가 최고 수준으로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결국 두 센터는 동산의료원 전체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핵심 운영체제(OS)’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필수의료는 적자여도 해야 한다…생명을 지키는 미래 투자
최근 동산병원은 권역응급의료센터 지정 여부와 관계없이 응급중환자실(EICU)을 확대하고, 신생아중환자실(NICU) 병상과 전문 인력을 선제적으로 확충하고 있다.
대학병원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재정적 부담이다. 그럼에도 배 원장은 주저 없이 “당연히 해야 할 투자”라고 답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구동산병원 전체를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내놓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 의료기관의 진정한 가치는 얼마나 많은 환자를 안전하게 품고 치료할 수 있는가로 증명된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그래서 동산병원은 응급중환자실을 20병상으로 확대하고, 신생아중환자실도 기존 38병상에서 51병상으로 늘리고 있다. 심뇌혈관과 ECMO 전담팀 역시 24시간 운영 체계를 구축했다.
“이것은 단순한 시설 투자가 아닙니다. 지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미래 투자이며, 127년간 이어져 온 동산의료원의 '메디컬 프런티어(Medical Frontier)' 정신입니다.”

‘응급실 뺑뺑이’ 해법은 병상 아닌 최종 치료 역량
배 원장은 현재 대구 응급의료체계의 가장 큰 문제로 지역 불균형을 꼽았다.
약 77만 명이 거주하는 달서구와 달성군에는 아직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없다. 반면 성서 동산병원은 대구 서남부는 물론 경북 고령·성주·칠곡과 경남 창녕·합천 등 의료취약지역까지 포괄하는 지리적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실제로 병원 내원 환자의 상당수가 이들 지역에서 유입되고 있다.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지정된다면 대구 중심부에 집중된 응급의료 축을 보완해 ‘서남부권 광역 응급의료 허브’라는 새로운 축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는 최근 사회문제로 떠오른 ‘응급실 뺑뺑이’ 현상에 대해서도 분명한 진단을 내렸다.
“문제는 응급실 병상 수가 아닙니다. 중증 환자를 최종적으로 치료할 배후 병상과 전문 인력이 부족한 것이 핵심입니다.”
동산병원이 구상하는 해법은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중환자실, 수술실, 입원병동으로 끊김 없이 연결되는 ‘원스톱 최종 치료 완결 체계’다.
즉 골든타임 안에 도착부터 최종 수술까지 모두 책임지는 구조의 완결이다.
고위험 산모가 병원을 찾아 헤매지 않도록…지역의 든든한 안전망 구축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 진료는 대표적인 필수의료 기피 분야다. 낮은 수가와 높은 업무 강도 탓에 전문 인력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하지만 배 원장은 중증모자의료센터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했다.
“핵심은 어떤 상황에서도 치료가 끊기지 않는 안전망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는 고위험 임신이 산전 진단과 분만, 신생아 집중치료, 소아외과 수술까지 하나의 궤도 위에서 움직여야 하는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이 끊기면 산모는 병원을 찾아 헤매야 하고, 갓 태어난 아기는 구급차를 타야 합니다. 가족들이 느끼는 불안과 절망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동산병원이 구상하는 체계는 산과와 신생아과, 소아외과, 마취과, 영상의학과가 24시간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지역 임산부들이 ‘위급한 순간이 와도 이 병원이라면 끝까지 책임져 준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 목표라는 것이다.
AI는 보여주기용 기술이 아니라 의료진의 든든한 조력자
동산의료원은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AI·로봇 기반 스마트병원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배 원장은 “기술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표 사례로 꼽은 것이 ‘AI 뇌졸중 및 심뇌혈관 영상 분석 솔루션’이다.
“초급성기 뇌졸중 환자의 CT·MRI 영상을 실시간 분석해 전문의 수준의 병변 정보를 제공합니다. 혈전용해제 투여나 시술 결정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진단 속도를 높이는 것을 넘어 야간이나 취약 시간대 근무 의료진의 심리적 부담과 육체적 피로도를 크게 줄여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스마트 기술은 결국 의료진을 돕고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는 핵심 조력자가 돼야 한다는 것.
127년 전 제중원의 정신으로…글로벌 중증의료 허브 도약
인터뷰 말미, 배 원장은 글로벌 의료관광 시장에 대한 구상도 밝혔다.
그는 “한국의 의료관광이 성형과 미용 중심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서도 “동산의료원은 다른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127년 전 제중원에서 시작된 생명 존중과 기독교적 사랑의 정신은 지금도 우리 DNA에 깊이 각인돼 있습니다.”
동산의료원이 꿈꾸는 미래는 암 수술과 심뇌혈관 시술, 장기이식 등 고난도 중증질환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메디컬 허브다.
“대구 서남권을 넘어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 근로자, 전 세계의 중증 환자들이 ‘계명대 동산병원은 생명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라고 확신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진정한 가치입니다.”
‘수익’보다 ‘생명’, ‘경쟁’보다 ‘책임’.
배재훈 의료원장의 철학은 결국 한 문장으로 귀결됐다.
“필수의료는 누군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동산의료원이 기꺼이 감당하겠습니다.” 그의 맺음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