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식 환자에게 “면역억제제를 평생 먹어야 한다”는 말은 거의 상식이다. 새로 이식받은 장기를 우리 몸의 면역세포가 ‘외부 침입자’로 착각해 공격(거부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서울아산병원이 공개한 소아 환자 사례는 이런 통념을 흔들었다(코메디닷컴 보도: 희귀병 아이, 엄마 간·조혈모세포 이식받고 평범한 일상 되찾아). 어머니의 간과 조혈모세포(피·면역세포를 만드는 ‘씨앗’ 세포)를 차례로 이식받은 뒤, 면역억제제를 완전히 끊고도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핵심은 ‘면역관용(Immune Tolerance)’이다. 면역관용은 우리 몸의 방어 시스템이 특정 대상을 더 이상 적으로 보지 않고 받아들이는 상태를 말한다. 쉽게 말해 면역세포가 국경 경비대라면, 면역억제제는 경비대 전체의 경계를 낮추는 약이다. 반면 면역관용은 특정 대상에게만 “통과해도 된다”는 출입증을 주는 것에 가깝다.
이번 사례에서 의료진이 주목한 대목은 면역체계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환아는 과호산구증후군으로 간경변이 진행돼 간 이식이 필요했지만, 문제의 뿌리는 간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호산구를 만들어내는 골수에 있었다. 의료진은 어머니의 간 이식으로 간부전을 해결한 뒤, 반일치 조혈모세포 이식을 통해 환아의 혈액·면역세포 시스템을 공여자(어머니) 쪽으로 재구성했다. 이후 혈액세포가 100% 어머니 세포로 바뀐 상태가 확인됐고, 그 결과 이식 간을 ‘남’이 아니라 ‘우리 편’처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면역이 재설정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면역관용이 주목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면역억제제는 거부반응을 막는 대신 감염 위험을 높이고, 신장 기능 저하 등 부작용 부담이 뒤따를 수 있다. 특히 성장기 소아에게는 복약·식사 제한 등 일상 제약이 더 크게 작용한다. 의료진은 이번 접근이 희귀 난치 질환에서 ‘근본 원인(골수) 치료’와 ‘이식 후 약 중단’이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노린 전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본다.
다만 면역관용은 누구에게나 쉽게 적용되는 ‘마법’은 아니다. 조혈모세포 이식은 합병증 관리와 장기 추적이 필수인 고난도 치료다. 그럼에도 “평생 약”을 당연시하던 이식 치료에서, 면역을 억누르는 대신 ‘공존’을 유도하는 길이 열릴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