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21일 (화)

건강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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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의료보험 조기정착은 세계 모델?
필자는 의대를 졸업하고 예방의학을 전공하면서 의료보장, 의료경제학, 병원경영, 보건의료정책에 관심을 두었다. 1971년 의료선교사가 경남 거제군 하청면에 세운 거제건강원(지역사회개발보건원)의 초기 보건사업을 담당했다. 1972~74년엔 정부/세계보건기구(WHO) 보건개발프로젝트(K-4001)의 상대역(카운터 파트)을 담당하면서 고문관들과 값진 경험을 함께 쌓았다. 1975년 연세대 의대 강화보건사업을 시작하면서 봉화의료보험조합 설립과 운영을 맡아 건강보험이 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또 공군본부 의무과장(76~77년)을 거쳐 1978년부터 미국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여러 저명 교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여름방학에는 관련 기관에서 실습을 했다. 박사 학위 논문은 우리나라 자료를 수집 분석한 “대한민국 의료보험 가입자와 비가입자의 병원 이용”(81년)이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 티모시 베이커(Timothy D. Baker) 지도교수가  보건경제학 알란 솔킨(Alan L. Sorkin) 교수를 부지도교수로 추천했다. 솔킨 교수가 1976년에 지은 책을 84년 증보 발간했는데 내용이 너무 좋아 필자가 번역해 《의료경제학》(홍성사, 1985년)으로 출판했다. 책의 30%는 개발도상국 내용이었다. 필자는 학위를 받고 귀국한 뒤에도 틈틈이 존스홉킨스 교수들과 소통하면서 활동상을 알리곤 했다. 베이커 교수가 제목을 주면서 1987년 1월 특강을 하도록 요청했는데, 교수들이 다수 참석했다. 베이커 교수가 자택에서 저녁 식사를 마련하였는데, 4명의 교수가 동석하였다. 그 해 말 공문을 받았다. 1988년 1월 강좌 담당 제안 내용이었다. 대학원장. 지도교수, 국제보건학과장, 보건시스템 주임교수 등 4명이 서명한 의뢰서였다. 여럿이 서명한 편지는 평생 처음 받아봤다. 이 강의는 매년 실시되는 정규 강의여서 겨울방학 때마다 강의하러 출국했다. 더구나 존스홉킨스의 교수 발령을 받아 하는 강의였다. 학기 말에 수강생들이 강좌별로 평가를 하며, 그 결과는 도서관에 비치된다. 평가 결과가 수준 이하이면 폐강이 되므로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이 강좌는 2001년까지 매년 개설하여 운영됐다. 그 해 9.11 테러가 발생하였다. 필자는 연세대 보건대학원장 임명을 받았다. 이 강의를 하려면 겨울방학 기간에 근무하지 못하게 돼 부담스러웠다. 존스홉킨스대에 강좌를 중단하겠다고 알렸다. 이 강좌와 더불어 염두에 둘 명제가 있다. 사회적 실험(Social experiment)이다. 일반적으로 사회적으로 평가할 실험 과제는 한 세대를 지나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1977년에 시작해 불과 12년 만에 전 국민 의료보험 시행으로 도약했다. 이는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다. 77년 7월 500인 이상 사업장에 의료보험이 처음 실시된 이후 다양한 실험과 요구가 있었다. 80년대에 들어서 우리나라 경제사회 변화가 뚜렷하였다. 소득 수준이 급등하면서 복지 욕구가 솟구쳤고, 의료보험 확대 요구가 빗발쳤다. 경제, 보건 분야 학자들은 직장 의료보험을 먼저 확대하자고 주장했고, 복지 분야 학자들은 농어촌 주민과 자영자를 보험에 가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도 다양한 실험을 했다. 필자는 지역의료보험 제2차 사업(82년)에 경기 강화군을 포함하도록 보건사회부(보건복지부) 김영기 보험국장과 차흥봉 보험제도과장에게 제안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성공적으로 시행됐다. 경제기획원 문희갑 기획실장이 주관하여 매년 건강보험 세미나를 할 때 필자는 늘 참가했다. 필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1980년대 중반에 경제기획원, 보건복지부 그리고 여당 정치인에게 기회가 닿는 대로 전 국민 의료보험을 실시하자고 역설했다. 마침내 노태우 대통령 후보자가 전 국민 의료보험을 실시하겠다고 1986년에 공약을 내놓았다. 그가 당선되자 1989년에 전 국민 의료보험이 현실화했다. 국가적으로 실시하는 정책이나 사업이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국제적으로 학자들이 성공을 인정하는 대한민국의 국가 정책 사업이 가족계획사업과 새마을운동이다. 그리고 최단 기간에 시행된 것이 전 국민 의료보험이다. 필자는 전 국민 건강보험의 성과에 대해 존스홉킨스 앤더슨 교수와 함께 논문을 써서 1992년 국제 학술지에 게재했다. 논문 제목은 ‘한국에서 전 국민 건강보험의 달성-다른 개발도상국의 모델’(Achieving universal health insurance in Korea - A model for other developing countries? Health Policy, 1992)이다.
정부가 저소득층 의료 책임지면, 건강불평등 해소될까?
의사들이 병에 대해 논문을 쓸 때 당뇨병, 고혈압 등 기저질환과 함께 흡연력, 음주력, 가족력 등 여러 관련요인들을 평가하지만 대부분 환자들의 경제 상태는 평가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를 평가하는 것이 어렵고 윤리적인 문제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세계에서 시행된 이전 연구들을 보면 환자들의 경제적 상태는 환자의 예후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2018년 전국 광역시도 시군구 건강격차 프로파일을 보면 소득이 상위 20%에 속하는 사람의 기대수명과 건강기대수명은 각각 85.1세, 72.2세이지만 하위 20%는 78.6세, 60.9세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할 정도로 소득이 낮을수록 기대수명과 건강기대수명이 낮았다. 2020년 통계 개발원이 발간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9》에 따르면 이러한 기대수명 격차는 2004년 6.24세에서 2017년 6.48세로 커지고 있다. 2020년 국민건강보험 여론조사센터가 시행한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 의사의 진단을 받아 3개월이상 약을 복용하고 있거나 치료 중인 만성질환이 있다는 응답이 대졸이상 및 정규직 근로자는 10%에 불과했지만 고졸이하는 39%, 비취업자는 35%나 됐다. 가구소득으로 월소득 700만원 이상이면 18%였지만 200만원 이하는 56%나 되었다. 우울증도 ‘축약형우울척도’로 측정한 결과, 가구소득 200만원 이하는 9.21로 높게 나온 반면, 701만원 이상은 4.61로 낮게 나왔다. 이렇게 소득이나 교육수준, 사회경제적 계층과 같은 사회적 건강결정요인에 따라 질병 발생률이나 유병률, 사망률 등에 차이가 생기는 것을 건강불평등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건강불평등은 불합리하며 없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소득에 따른 건강불평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건강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건강보험보장률을 더욱 강화하고 상대적으로 취약한 저소득층이 의료비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정부에서 의료비를 모두 부담하는 의료급여수급자의 비율을 높일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연구결과들은 이런 방법이 정말로 효과적일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예들 들어 최근 민간보험형태로 제공되는 의료보험 때문에 인구의 10%정도가 건강보험이 없고, 상대적으로 매우 비싼 의료비로 악명이 높은 미국과 전국민에게 주치의 제도를 시행하면서 무상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영국 두 나라를 놓고 사회적 지위와 부의 정도에 따른 수명과 건강기대수명을 비교했더니 두 나라 모두 사회적지위가 높은 그룹이 낮은 그룹에 비하여 수명이 5~6년 정도 높게 나왔고 부유층이 빈곤층에 비해 건강기대수명이 평균 9년 정도 길게 나왔다(J Gerontol A Biol Sci Med Sci 2020;75:906-913). 이외에 다른 연구들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연구결과들은 국민건강보험 보장률이나 의료급여 수급자의 비율을 높이는 등 의료기관에서 질병치료나 관리를 통해 국민의 건강을 호전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의료기관에서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사람들의 질병으로 인한 사망을 얼마나 호전시킬 수 있을까?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로서 슬프기는 하지만, 미국 질병통제예방본부(CDC)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의료접근성(Access) 정도는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을 약 10% 정도만 줄이는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Health Aff (Millwood) 2002;21:78-93). 이와 같은 사실은 현재의 병의원과 같은 의료기관에서의 치료에 초점을 맞추는 의료정책은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건강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에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에서 발생하는 건강불균형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위 논문의 저자들은 의료기관 접근성도 중요하지만 젊어서 건강할 때 건강을 잘 보살피도록 정부가 건강관리정책을 이끌고 이와 함께 저소득층이 가지고 있는 불안정한 주거환경과 열악한 근로환경을 개선함과 동시에 이들이 약물이나 흡연, 알코올 중독에 빠지기 쉬운 사회환경을 호전시키는 등 사회정책을 함께 동반해가야 소득격차에 따른 건강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주장했다(JAMA Intern Med 2017;177:1745-1753). 인간은 누구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한다. 행복한 삶이 되기 위해서는 건강은 필수적이며 인간이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집단 내에서 완전한 평등은 존재할 수 없으며 다소간의 불평등은 어느 사회에서도 존재해왔다. 특히 소득, 교육기회, 고용, 지역 등 사회경제적 영역에서 불평등은 필연적 측면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국민 건강보험을 실시하고 있지만 저소득층은 개인이 부담해야 할 본인부담금이 부담돼 의료이용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의료이용의 접근성이 이러한 소득에 따른 건강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 또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러한 소득에 따른 건강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개인, 사회구조, 의료체계 및 보건행정, 저소득층의 주거환경 및 근로환경개선 등 전반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