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다. 수명이 늘어나더라도 각종 만성질환에 시달린다면 삶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건강 분야에서는 질병 없이 신체와 인지 기능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건강한 노화(Healthy Aging)’가 중요한 화두다. 그렇다면 건강한 노화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까.
“채소와 과일을 자연에 가까운 식품 형태로 섭취하고, 이를 매일 반복하는 ‘로우코어 뉴트리션(Raw Core Nutrition)’이 중요하다.”
조진아 충남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29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6 KFN International Conference(한국식품영양과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건강한 장수와 생애주기별 식생활 실천을 위한 로우코어 뉴트리션》을 주제로 발표하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건강한 노화를 위한 식생활의 새로운 접근법으로 ‘로우코어 뉴트리션’을 제시했다. 조 교수는 “로우코어 뉴트리션은 자연식품을 중심으로 최소한의 가공을 거치고, 식품이 본래 가진 영양성분을 최대한 유지하며 섭취하는 식생활을 의미한다”며 “이런 식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를 통해 제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식품의 본래 가치 살리는 ‘로우코어 뉴트리션’, 왜 중요할까?
이번 발표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 것은 ‘로우코어 뉴트리션’이다. 조 교수는 “로우코어 뉴트리션이라는 것은 이번에 새롭게 만들어낸 용어”라며 “기존 영양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자연식품 중심의 식생활을 실천하기 위한 개념”이라고 소개했다.
조 교수가 말한 ‘로우(Raw)’는 모든 음식을 익히지 않고 날것으로 먹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식품의 영양적 구조를 존중하면서 불필요한 가공을 줄이고, 자연식품을 일상적으로 섭취하자는 뜻이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식품 매트릭스(Food Matrix)’다. 식품에는 비타민과 무기질뿐 아니라 식이섬유, 파이토케미컬 등 다양한 성분이 복합적으로 존재한다. 이들 성분은 식품의 구조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소화와 흡수 과정에도 관여한다.
조 교수는 “특정 영양성분을 추출해 섭취하는 방식보다 다양한 채소와 과일을 식품 자체의 형태로 꾸준히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영양제를 통해 개별 성분을 보충하는 것보다 일상적인 식사의 질을 높이는 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건강한 노화, 사망 위험 낮추는 효과…로우코어 뉴트리션의 조건 4가지
그렇다면 로우코어 뉴트리션을 충족한 식품은 어떤 것을까. 조 교수는 4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비타민·무기질·식이섬유·파이토케미컬 등이 함께 존재하는 자연식품의 구조를 중시할 것 △색과 향, 식감 등 본래의 특성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필요한 세척·조리 등 최소한의 가공을 거칠 것 △첨가당이나 불필요한 향료·착색료보다 원재료의 맛을 우선할 것 △영양제로 대체하기보다 매일 식사에 채소와 과일을 포함할 것 등이다.
그렇다고 모든 가공식품을 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 교수는 “통곡물빵이나 무가당 플레인 요구르트처럼 가공 과정을 거쳤더라도 건강한 식단에 포함될 수 있는 식품이 많다”며 “지나치게 엄격한 식단보다는 다양한 식품을 장기간 꾸준히 섭취할 수 있는 유연한 식생활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런 자연식품 중심의 식생활이 건강한 노화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25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10만5015명을 최대 30년 동안 추적 관찰한 결과 건강식단지수가 가장 높은 상위 20% 집단은 가장 낮은 하위 20% 집단보다 건강한 노화 가능성이 1.86배 높았다.
채소·과일 섭취량과 사망 위험의 관계를 살펴본 연구도 있다. 2021년 미국심장협회 학술지 《서큘레이션(Circulation)》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하루에 채소·과일을 5회분 섭취하는 사람은 2회분 섭취하는 사람과 견줘 전체 사망 위험은 약 13% 낮았다. 다만 섭취량이 늘어날수록 사망 위험이 무한정 감소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루 5회분 정도에서 위험 감소 효과가 정체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들 연구는 특정 영양성분 하나보다 전체적인 식생활의 질과 장기간 유지하는 식습관이 건강한 노화에 중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관찰연구인 만큼 채소·과일 섭취가 건강한 노화를 직접적으로 유발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한국인 4명 중 3명, 채소·과일 섭취량 부족… 아침 식사부터 바꿔야
문제는 건강한 식생활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실제로 충분한 채소와 과일을 섭취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국민건강영양조사 통계에 따르면 하루 채소·과일을 500g 이상 섭취하는 사람의 비율은 2015년 38.6%에서 2021년 25.6%, 2024년 24.4%로 감소했다. 2024년 기준으로 보면 약 4명 중 3명이 하루 500g에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조 교수는 하루 채소·과일 섭취 목표를 500g으로 설정하고, 이 가운데 60%인 300g은 채소로, 나머지 40%인 200g은 과일로 구성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때 채소는 감자나 고구마처럼 전분이 많은 식품보다 비전분성 채소를 중심으로 섭취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먹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바쁜 일상에서 식재료를 씻고 손질하는 일이 번거롭고, 외식과 간편식에 의존하는 식생활도 영향을 미친다. 채소 특유의 쓴맛이나 질감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조 교수는 한국인의 채소 섭취가 김치에 편중돼 있어 다양한 색깔의 채소를 충분히 먹지 못하는 문제도 지적했다.
조 교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아침 과채 섭취 습관'을 제안했다. 그는 “점심과 저녁은 외식이나 배달음식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침은 상대적으로 식재료를 직접 선택하고 식단을 조절하기 쉽다”며 “아침에 채소와 과일을 일정량 섭취하면 하루 전체 섭취 목표를 달성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실천 방법도 어렵지 않다. 채소와 과일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거나 미리 씻고 손질해 소분해 놓으면 준비에 드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매일 한 끼에 채소 한 가지를 추가하는 것도 방법이다.
채소를 충분히 먹기 어렵다면 과일보다 채소의 비중이 높은 과채주스를 보완적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제시했다. 다만 주스는 제조 과정에서 식이섬유 함량과 식품의 구조가 달라질 수 있어 채소와 과일 자체를 섭취하는 것이 우선이다.
조 교수는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속적인 실천이 중요하다”며 “채소와 과일을 쉽게 구입하거나 집에서 준비할 수 있어야 하고, 이런 행동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러운 생활 습관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