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9월 22일 (화)

카페 서빙부터 플로깅까지⋯세상 밖 치매환자들이 찾은 ‘내 역할’

[치매 예방, 화투판 밖으로 ②] 직원은 초기 치매 환자⋯문제풀이 넘어 일하고 걷고 사람 만나는 치매 관리 확산 운동·사회활동 결합한 ‘다중영역 중재’⋯AI·로봇 활용 맞춤형 예방 프로그램 늘어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최근의 치매 극복 프로그램 트렌드는 단순 문제풀이를 넘어 플로깅, 카페 운영 참여 등으로 진화, 발전하고 있다. 사진=AI 이용 이미지

전국의 경로당은 사실상 고스톱이 점령했다. ‘화투가 치매를 예방한다’는 속설 덕에 어르신들은 화투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코메디닷컴은 <치매 극복의 날>을 맞아 화투를 대신하면서도 의학적 근거를 토대로 진행 중인 색다른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살펴봤다. 그 시도는 현재진행형이었다. 이제는 화투판에 작별을 고할 때다. 편집자주

커피를 주문했는데 엉뚱한 음료가 나왔다. 그런데도 손님은 화를 내기는커녕 감사 인사를 건넸다. 조금은 낯선 풍경이 펼쳐지는 이곳은 초기 치매 환자가 직원인 ‘기억다방’이다.

담요를 깔고 화투를 치는 어르신, 간단한 산수 문제와 낱말 기억 학습지를 풀게 하는 강사, 부모의 기억력이 걱정돼 각종 검사지와 설문지를 챙기는 자녀들까지 흔히 떠올리는 치매 예방이나 인지훈련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기억다방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어르신이 로봇과 게임을 하고 동네를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가 하면 여러 세대가 한 공간에서 어울려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활동하는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엔 공통점이 있다. 단순한 ‘문제풀이’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몸을 움직이고 사람을 만나며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일상 속에 인지훈련을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치매 예방과 관리의 무게중심이 기억력 자체를 훈련하는 데서 벗어나 신체활동과 사회적 관계, 일상 속 역할을 함께 유지하고 회복하는 방향으로 확장하고 있다.

“단순 문제풀이만으로는 부족”⋯달라지는 치매 예방

이 같은 변화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먼저 ‘인지기능 검사 점수 향상’과 ‘치매 위험 감소’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올해 개정한 ‘인지저하 및 치매 위험 감소 지침’에서 인지훈련이 노인의 인지기능을 소폭 개선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정상 인지기능을 가진 사람이나 경도인지장애 환자에게 치매 예방을 위한 인지훈련을 제공할 수 있다고 권고했다.

다만 문제풀이나 단어 기억 같은 훈련이 장기적으로 치매 발병 위험을 낮추거나 증상을 완화하는 효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WHO는 인지훈련만으로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근거의 확실성은 낮다고 평가했다.

대신 주목한 것은 여러 위험요인을 함께 관리하는 ‘다중영역 중재’다. 인지활동뿐 아니라 운동과 사회활동, 식생활, 우울 관리, 심혈관·대사질환 관리 등을 개인의 상황에 맞게 결합하는 방식이다. 치매 예방과 관리가 단순한 기억력 훈련을 넘어 건강한 생활습관과 사회적 관계를 함께 관리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여러 치매안심센터와 지방자치단체가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을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카페 직원부터 플로깅까지⋯문 밖으로 나선 치매 환자들

서울시와 한독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치매 환자 인식 개선 캠페인 ‘기억다방’이 대표적인 예시다. 종업원을 맡은 어르신들은 경도인지장애나 경증 치매 진단을 받은 환자들이다.

이 다방의 기본 규칙은 ‘주문한 것과 다른 음료가 나와도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것’이다. 기억다방은 구로구 치매안심센터를 비롯, 서울 여러 지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시니어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약간의 배려만 더해지면 치매 환자들도 얼마든지 사회에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덕이다.

현재 기억다방은 서울 금천·서대문·구로·성북·동작·마포·은평·강동·송파·서초구 치매안심센터에서 운영되고 있다. 25개 구 전체를 돌아다니는 ‘이동형 다방’도 운영된다.

서울에는 치매 환자들이 보다 직접적으로 카페 운영 전반에 참여하는 형태의 사업도 있다. 최근 성북구에 4호점을 연 ‘초록기억카페’다.

이곳에서 치매 환자들은 함께 일하는 시니어 바리스타를 도와 스마트팜 작물 재배부터 음료 제조와 판매를 맡는다. 지점마다 10명 안팎이 활동 중이다.

초록기억카페는 치매 환자들이 직접 운영에 참여하는 방식의 카페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올해 7월 4호점(성북구 매장)을 열었다. 사진은 강서구 치매안심센터 지점. 사진=서울시

손님을 맞고 주문을 처리하며 동료와 협력하는 과정에서 참여자는 단순히 ‘돌봄을 받는 환자’에 머물지 않는다. 카페에서 자신의 역할을 맡아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사회활동을 이어간다.

서울시가 참여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사전·사후 평가에서는 우울 점수가 14.2점에서 10.9점으로 낮아졌고 자기효능감은 29.6점에서 31.7점으로 높아졌다. 다만 대조군을 둔 임상시험이 아니어서 이를 치매 예방이나 인지기능 개선 효과로 직접 해석하기는 어렵다. 서울시는 일상 속 사회활동이 참여자의 우울감을 낮추고 심리적 건강을 높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제주광역치매센터는 지난해부터 치매 인식 개선 사업인 ‘우리마을 히어로즈’를 운영하고 있다. 치매 환자가 동네를 걸으며 쓰레기를 줍거나 폐품을 새로운 물건으로 만드는 재활용 활동에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핵심은 치매 환자를 단순히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데서 벗어나 지역사회를 함께 돌보는 공동체 구성원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데 있다. 제주 동부보건소는 이러한 취지를 살려 올해 3월부터 경증 치매 환자를 위한 ‘기억해봄 쉼터’와 우리마을 히어로즈 프로그램을 연계했다.

치매 환자들이 플로깅(산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 등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우리마을 히어로즈' 프로그램. 사진=제주광역치매센터

AI·로봇도 치매 예방 현장으로

중장년층과 일반 노인을 대상으로 한 치매 예방 프로그램도 달라지는 추세다. 특히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신기술을 인지훈련과 신체활동에 접목하는 시도가 늘었다.

경기 용인시는 지난해 처인구와 수지구에서 시작한 AI 로봇 활용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올해 기흥구까지 확대했다. 김건하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교수가 개발에 참여한 개인형 인지훈련 AI 로봇 ‘보미’를 활용한다. 치매를 진단받지 않은 일반 노인도 프로그램에 참여 가능하다.

참가자는 보미와 함께 인지 과제를 풀고 블록을 조작하거나 음악·게임 활동을 한다. 보미는 단순히 문제를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맥박과 호흡, 스트레스 수준 등을 측정하고 이용자의 동작을 인식해 보여준다.

이대목동병원 연구진은 경도인지장애 환자 46명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임상시험에서 4주 동안 하루 60분씩 보미를 활용해 훈련한 환자의 작업기억력이 대조군보다 개선됐다고 보고했다. 연구 규모가 작아 결과를 일반화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반복적인 인지훈련에 대한 흥미와 참여를 높이는 도구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현재 용인시를 비롯해 서울 양천구, 대구 달서구, 경기 광명시, 전북 김제시, 전남 광양시 등의 치매안심센터와 종합사회복지관에서 보미를 활용하고 있다.

판교종합사회복지관의 ‘얼리스쿨’은 인지훈련과 신체활동을 폭넓게 결합한 사례다. 45~70세 주민이 참여하는 일종의 ‘건강 학교’로, 참가자는 인지학과와 신체학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 인지학과에서는 명상·요가·미술·영양교육 등을, 신체학과에서는 걷기와 맞춤형 운동 등을 한다.

특히 근력과 균형감각, 통증 등 개인별 신체 상태를 측정한 뒤 각자의 능력에 맞는 운동을 제공한다. AI 기반 시니어케어 기업 비바랩스도 자체 플랫폼을 지원했다.

판교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진행된 '얼리스쿨'에서 참여자들이 각자의 신체 능력에 맞춤 설계된 신체활동을 수행하는 모습. 사진=판교 종합사회복지관

판교종합사회복지관 관계자는 “활발한 신체활동은 치매 예방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어르신마다 신체능력에 차이가 있어 획일적인 프로그램에는 한계가 있었다”며 “AI를 활용해 맞춤형 운동을 제공하자 일부 참여자는 수업이 끝난 뒤에도 운동을 계속할 방법을 논의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눈에 띄는 변화는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이어졌다. 2024년 얼리스쿨 1기 참여자 가운데 4명이 운동지도사 자격과정을 이수했고, 이 중 한 명은 2025년 2학기 주민강사로 활동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해 도움을 받던 주민이 다시 다른 주민의 건강을 돕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기억력 문제를 반복해서 푸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을 만나고 몸을 움직이며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이어가도록 하는 건 최근 치매 예방과 관리 현장에서 나타나는 변화의 방향이다.

3회에서는 올해 시행된 ‘돌봄통합지원법’이 치매 예방과 관리 정책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현장에 안착하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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