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을 빼고 혈당을 조절하는 약이 노화 속도까지 늦출 수 있을까.
비만치료제 ‘위고비’와 당뇨병치료제 ‘오젬픽’의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를 늙은 생쥐에게 투여했더니 수명이 약 12% 늘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단순히 식욕이 줄어 덜 먹었기 때문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도 확인됐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대사생물학·영양학과 다니카 첸 교수 연구팀은 이 같은 연구 결과를 9월 2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20개월 된 암컷 C57BL/6 생쥐에게 GLP-1 수용체 작용제인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여한 뒤 수명과 노화에 따른 신체·세포 변화를 살폈다.
생쥐 25개월이면 절반만 생존⋯20개월부터 투여
생후 20개월이라고 하면 얼핏 젊게 느껴지지만 생쥐에게는 이미 노년기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대체로 C57BL/6 계통의 암컷 생쥐는 18개월까지 약 90%가 살아 있지만, 25개월에는 생존 비율이 50%로 떨어진다. 28개월에는 25%, 30개월에는 10%만 생존한다.
노화 연구에서도 대체로 18~24개월 된 생쥐를 ‘노령’으로 분류한다. 사람과 생쥐의 나이를 정확히 1대1로 바꿀 수는 없지만, 이 생애 단계를 사람의 약 56~69세와 비교한 연구가 있다. 20개월은 대략 사람의 60대 전후에 해당하는 노화 단계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젊을 때부터 약을 투여해 노화를 예방한 실험이 아니다. 이미 생애 후반에 접어든 뒤 세마글루타이드를 쓰기 시작했다는 점이 이번 연구에서 눈에 띈다.
연구팀은 세마글루타이드군 40마리에게 체중 1kg당 10nmol의 세마글루타이드를 매일 피하주사했다. 대조군 39마리에게는 생리식염수를 투여하고 죽을 때까지 생존기간을 추적했다.
대조군의 중앙수명은 742일, 약 24.4개월이었다. 세마글루타이드군은 834일, 약 27.4개월이었다. 두 집단 사이에는 92일, 약 12%의 차이가 났다. 중앙수명은 한 집단에서 절반이 사망하기까지 걸린 시간을 뜻한다.
20개월부터 약을 투여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생애 상당 부분을 보낸 뒤 시작한 치료가 약 3개월의 중앙수명 차이로 이어진 셈이다.

오래 살기만 한 게 아니었다⋯근력·기억도 달라져
연구팀은 별도의 생쥐에게 세마글루타이드를 3개월간 투여해 몸의 변화도 살폈다.
세마글루타이드군은 낯선 공간에서 더 활발하게 움직였다. 회전봉 위에서 버티는 운동 능력과 거꾸로 매달려 버티는 근력이 좋아졌고, 러닝머신에서도 지칠 때까지 더 오래, 더 멀리 달렸다. 체중 차이를 보정한 뒤에도 일부 운동·근력 차이는 유지됐다.
기억력에서도 차이가 났다. 미로 검사에서 목표 지점을 더 잘 찾아갔고, 포도당을 투여한 뒤 혈당을 처리하는 능력도 좋아졌다.
세포와 조직에서도 노화와 관련된 변화가 줄었다. 염증과 세포 노화 지표가 감소했고, 미토콘드리아 기능과 세포 안 단백질을 정상 상태로 유지하는 능력도 좋아졌다. 뇌 해마에서는 새 신경세포 생성과 관련된 변화도 관찰됐다.
단순히 ‘몇 일 더 살았느냐’만 본 실험은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사람에게 쓰는 개념인 ‘건강수명’을 직접 측정한 연구는 아니어서 생쥐의 건강수명이 12% 늘었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덜 먹었으니 오래 산 것 아닐까?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세마글루타이드는 식욕을 줄이는 약이다. 실제로 세마글루타이드를 맞은 생쥐는 먹이를 24% 적게 먹었다. 그렇다면 수명이 길어진 이유도 결국 덜 먹었기 때문 아닐까.
먹는 양을 지나치지 않게 줄이는 ‘칼로리 제한’은 생쥐를 비롯한 여러 동물에서 노화를 늦추고 수명을 늘리는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도 이 영향을 따로 떼어 분석했다.
20개월 된 생쥐를 세마글루타이드군, 대조군, 칼로리 제한군으로 나눠 비교했다. 칼로리 제한군에는 세마글루타이드군이 먹은 양에 맞춰 평소보다 24% 적은 먹이를 줬다. 각 집단은 10마리였고 최대 5개월간 관찰했다.
여러 신체 기능에서는 세마글루타이드와 칼로리 제한이 비슷한 효과를 냈다. 그러나 모든 결과가 같지는 않았다.
세마글루타이드군은 같은 양을 먹은 칼로리 제한군보다 낯선 공간을 탐색하는 행동과 공간기억, 혈당 조절에서 더 큰 개선을 보였다. 연구팀은 세마글루타이드 효과 가운데 일부는 단순히 먹는 양이 줄어든 것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먹는 시간도 달랐다. 칼로리 제한군은 하루치 먹이를 받으면 빠르게 먹어 치운 뒤 긴 공복 시간을 보냈다. 반면 세마글루타이드군은 줄어든 양을 하루 동안 나눠 먹었다. 하루 총섭취량이 비슷하더라도 먹는 패턴은 달랐던 것이다.

‘살 빼는 약’, 칼로리 제한 효과까지 흉내 냈나
연구팀은 세마글루타이드가 칼로리 제한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생물학적 변화를 비슷하게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칼로리 제한 모방제’처럼 작용할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세마글루타이드 투여 뒤에는 세포가 영양 상태를 감지하고 노화와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여러 신호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염증과 DNA 복구, 단백질 관리에 관여하는 유전자 활동 역시 칼로리 제한 때와 일부 비슷하게 바뀌었다.
그렇다고 위고비를 ‘장수약’이라고 부를 단계는 아니다.
이번 실험에는 한 계통의 암컷 생쥐만 사용됐다. 연구진은 수컷끼리 싸우거나 다치는 일이 장기간 수명 연구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줄이기 위해 암컷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수컷이나 다른 계통의 생쥐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사람에게 사용하는 위고비 제품 자체를 투여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생쥐에서 수명이 늘었다고 사람이 오래 산다는 뜻도 아니다.
사람도 천천히 늙을까⋯90명 대상 임상 시작
이 질문을 사람에게 직접 던지는 임상시험은 이미 시작됐다.
미국 텍사스대 의학부는 ‘무디 장수 임상시험(Moody Longevity Trial)’이라는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연구는 2026년 2월 27일 시작됐으며 현재 참가자를 모집 중이다. 목표 인원은 55~70세 성인 90명이다.
대상은 비만이거나 체중 관련 질환을 동반해 터제파타이드 체중감량 치료 대상이 되는 성인이다.
이번에는 세마글루타이드가 아니라 터제파타이드를 사용한다. 터제파타이드는 GLP-1과 GIP 두 호르몬 수용체에 함께 작용하는 약으로 비만치료제 ‘젭바운드’와 당뇨병치료제 ‘마운자로’의 성분이다. 이 임상에서는 젭바운드를 사용한다.
참가자는 무작위로 나뉜다. 시험군은 터제파타이드 2.5mg을 주 1회 24주 동안 피하주사하고, 비교군은 약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후 12주 동안 약을 끊은 상태에서도 변화를 살핀다. 임상시험 완료 예정 시점은 2028년 1월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체중이 얼마나 빠졌느냐가 주된 평가 목표가 아니라는 점이다.
연구진은 DNA에 붙는 화학물질의 변화를 분석해 몸의 ‘생물학적 나이’를 추정한다. 실제 나이가 같아도 세포와 조직이 늙는 속도는 다를 수 있다. 이 차이를 추정하는 ‘후성유전학적 시계’를 이용해 터제파타이드 투여 전후 노화 속도가 달라지는지 확인한다. 신체 기능과 염증, 인지 관련 지표도 함께 살핀다.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사람이 GLP-1 계열 약을 맞으면 더 천천히 늙거나 오래 산다고 말할 근거가 없다.
쥐에서 늘어난 92일⋯사람에게는 몇 년일까
생쥐에서 나타난 92일을 사람의 몇 년으로 환산할 수도 없다.
생쥐와 사람은 수명뿐 아니라 노화 속도와 사망 원인, 약물 대사도 크게 다르다. 앞서 20개월 된 생쥐를 사람의 60대 전후에 견준 것도 생애 단계에 따른 대략적인 비교일 뿐이다.
다만 이번 연구에서 확인된 사실은 분명하다. 노령기에 접어든 암컷 생쥐에게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여했더니 중앙수명이 742일에서 834일로 늘었다. 운동·근육 기능과 기억, 혈당 조절에서도 노화와 관련된 저하가 줄었다.
반면 사람의 수명을 연장하거나 노화를 늦춘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비만이나 대사질환이 없는 건강한 사람에게 같은 효과가 나타날지도 더욱 알 수 없다.
이번 연구가 던진 질문은 ‘위고비를 맞으면 오래 사느냐’에서 끝나지 않는다. 체중과 혈당을 조절하던 GLP-1 신호가 나이가 들면서 떨어지는 몸의 여러 기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늙은 암컷 생쥐에서는 이런 변화가 실제 수명 차이로 나타났다. 이제 사람에게서 확인해야 할 것은 체중이 얼마나 줄었느냐만이 아니다. 같은 나이를 먹어도 몸이 늙는 속도까지 달라질 수 있는지가 다음 질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