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제약업계에서 연구개발(R&D) 투자의 경제적 의미가 커지고 있다. R&D가 신약·개량신약 등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투자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는 제네릭 중심 제약사들이 당장의 약가와 수익성을 방어하는 수단으로도 작용할 전망이다.
3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제약산업 혁신 민·관협의체를 출범하고 혁신형·준혁신형 제약기업 육성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특히 일정 수준의 R&D 투자를 하지만 기존 혁신형 제약기업 수준에 이르지 못한 기업을 위해 ‘준혁신형 제약기업’을 새로 도입할 계획이다.
정부는 제네릭 및 특허만료 의약품의 기본 약가 산정률을 기존 53.55%에서 45%로 낮추는 대신 R&D 등 혁신 노력에 따라 차등 보상하기로 했다. 신규 제네릭의 기본 약가 산정률은 일반기업 45%이고, 준혁신형은 50%, 혁신형은 60%의 산정률을 최대 4년간 적용받을 수 있다.
일반기업과 준혁신형은 5%p 차이에 불과하지만 실제 가격 차이는 크게 날 전망이다. 동일한 오리지널 약가를 기준으로 일반기업의 산정률 45%와 준혁신형의 50%를 비교하면 준혁신형 약가는 일반기업보다 약 11.1% 높고 혁신형은 일반기업보다 약 33.3% 높은 수준이 되기 때문이다. 약가 차이만 단순 환산하면, 일반기업에서 100억원인 매출 규모는 준혁신형에서 약 111억원에 해당한다.
결국 제네릭 중심 제약사에서는 R&D를 얼마나 더 투자해야 인증 기준을 맞출 수 있는지와 그 투자로 얼마의 약가를 지킬 수 있는지를 비교하는 셈법이 중요해진다.
특히 준혁신형 지정 기준도 R&D 투자와 직접 연결된다. 정부안에 따르면 직전 3개년도 평균 의약품 매출이 1000억원 이상인 기업은 의약품 매출 대비 R&D 비중이 5% 이상이어야 한다. 1000억원 미만 기업은 7% 이상이면서 최소 50억원을 투자해야 한다.
HLB제약은 준혁신형 인증 신청 계획을 밝힌 회사는 아니지만 이 같은 투자 셈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회사는 2028년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투자설명서에서 2023~2025년 평균 매출 대비 평균 R&D 비중이 3.37%라고 밝히면서, 현행 5%와 향후 7% 기준을 고려할 때 추가 연구개발비 지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HLB제약의 2023~2025년 별도 기준 매출은 연평균 약 1425억원이다. 회사가 밝힌 평균 R&D 비중 3.37%를 이 매출에 단순 적용하면 연평균 R&D 비용은 약 48억원으로 추산된다. 매출이 동일하다는 가정 아래 이를 5%까지 높이려면 약 71억원이 필요해 연간 약 23억원을 추가 투입해야 하는 계산이다. 다만 실제 인증에서는 의약품 매출액과 인정되는 의약품 연구개발비를 별도로 산정하는 만큼 필요액은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이 추가 투자가 약가 우대로 충분히 보상되느냐다. 일반기업의 신규 제네릭 약가 산정률은 45%인 반면 준혁신형은 50%로, 동일 판매량을 가정하면 준혁신형이 일반기업보다 약 11.1%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단순계산하면 HLB제약이 추가 R&D 비용 23억원과 같은 규모의 추가 매출을 약가 우대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반기업 약가 기준으로 약 207억원 규모의 우대 대상 신규 제네릭 매출이 필요하다.
국제약품도 상황이 비슷하다. 국제약품은 최근 5년간 개발을 완료한 34개 품목 가운데 33개가 제네릭으로, 최근 개발 실적이 제네릭에 집중돼 있다. 회사의 2023~2025년 별도 매출은 총 4520억원, R&D 비용은 162억원이다. 이를 단순 계산하면 3개년 R&D 비중은 약 3.6%다.
연평균 환산시 매출은 약 1507억원, R&D 비용은 54억원이다. 매출이 현재 수준을 유지한다는 가정하에 R&D 비중을 5%까지 높이려면 연평균 연구개발비가 약 75억원으로 늘어야 한다. 현재보다 연간 약 21억원을 추가 투자해야 한다. 추가 R&D 비용과 같은 규모의 추가 매출이 약가 우대로 발생하려면 일반기업 약가 기준 약 192억원의 신규 제네릭 매출이 필요하다
물론 이는 판매량과 처방량, 제품구성 등 다른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한 단순 계산이다. 실제 약가 우대가 곧바로 같은 비율의 영업이익 증가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회사별 경제적 유인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결국 준혁신형 제도가 실제 제약사의 R&D 확대를 이끌지는 추가 R&D 비용보다 약가 우대로 얻는 경제적 효과가 충분히 큰지에 달릴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