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4일 워싱턴DC의 상원 재무위원회 청문회에서 보여준 발언과 태도의 후폭풍이 거세다. 미국의 보건복지 수장인 케네디 장관은 그날 3시간에 걸친 청문회에서 여야 상원의원들과 백신‧보건의료‧과학, 그리고 리더십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케네디 장관의 발언이 문제가 되는 것은 부정확한 정보나 비과학적 음모론을 바탕으로 보건의료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앞으로도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보건의료 관련 연구·투자와 정책 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의 발언을 분석하면 사실과 다르거나 비과학적인 주장 6가지가 드러난다.
백신과 코로나19 통계 불신
첫째, 연례 코로나19 백신접종 승인 범위를 축소한 것에 대해 상원의원들이 따지자, 케네디는 “건강한 미국인도 의사 처방만 받으면 누구나 백신을 맞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동문서답식 발언을 했다. 하지만 백신 접종에는 의사 진찰이나 처방이 필요하지 않다.
둘째, 그는 “정부 데이터가 부족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미국인이 코로나19로 사망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세계보건기구(WHO)는 모두 약 120만 명의 미국인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는 데이터를 제시하고 있다.
셋째, 코로나19 백신의 효능에 대해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가 2024년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이 백신은 2020년 12월 도입 이후 유럽에서만 사망률을 최소 57% 줄여 140만 명이 넘는 목숨을 구했다. 전 세계적으로는 헤아리기 힘든 정도다.
‘학교 총기난사에 항우울제가 관련’ 주장도
넷째, 그는 감염질환이 미생물이 아닌 지형 때문에 발생한다는 반과학적인 ‘지형이론’을 신봉하고,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등 백신 음모론을 지지해 왔다. 이에 따라 현대의학을 의심하고 반과학적인 사고에 빠졌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CDC 수장 등 백신음모론을 지지하지 않는 고위 보건관료들의 사직이 잇따른 것은 이 때문이다.
이를 따지는 상원의원들의 질의에 케네디는 “나는 안전에 찬성하며 자녀들에게도 백신 접종을 시켰다”며 “내가 원하는 유일한 것은 좋은 과학”이라고 말했다. 과학을 자신의 입맛에 맞는 ‘좋은 과학’과 그 외의 과학으로 나눈 셈이다.
다섯째, 케네디 장관은 청문회 한 주 전 폭스뉴스 인터뷰를 통해 “학교 총기 난사 사건에서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계열의 항우울제가 모종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그러면서 “국립보건원(NIH)이 폭력에 기여할 수 있는 일부 SSRI 계열 약물과 다른 정신과 약물의 잠재적 기여도에 대한 연구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혀 자신이 지시했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는 ‘학교 총격사건 원인을 항우울제 탓이라고 했다’는 미네소타주 민주당 상원의원 티나 스미스의 지적에는 “거짓말을 꾸며내고 있을 뿐”이라고 거칠게 받아쳤다.
여섯째, 케네디는 “지금 아이들은 출산부터 18세까지 백신을 69~92회 맞아야 하는데 그중 위약과 비교 시험을 거친 백신은 단 하나뿐”이라며 백신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하지만 미국에선 아동에게 18가지 질병에 대한 정기 예방 접종을 권장하며 접종 횟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미국 소아과학회(AAP)는 여러 백신을 접종하는 데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에서 백신을 승인받으려면 위약 대조 연구를 포함해 안정성과 효과를 입증해야 한다.
‘자폐증은 백신 때문’, ‘코로나19는 백인‧흑인 공격용’ 주장
케네디 장관은 지난 2월 13일 장관에 취임하기 전부터 ‘비과학적’이고 ‘반과학적’인 음모론자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BBC방송은 그가 취임 전부터 백신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코로나19 음모론을 퍼뜨려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백신 안전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거나 ‘자폐증은 백신 때문에 생긴다’, ‘코로나19는 백인과 흑인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다’ 등과 같은 주장을 해왔다. 하지만 백신은 미국 식품의약청(FDA)이 다양한 연구‧검토 결과 안전성을 인증한 것이다. 코로나19 발병률과 사망률이 인종에 따라 다르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
그 외에도 그는 치아 부식을 막기 위해 미국 수돗물에 첨가하는 불소가 ‘관절염, 골절, 뼈암, 지능 저하, 신경발달 장애, 갑상선 질환과 관련이 있다’며 반대운동을 벌여왔다. 명확한 증거는 아직 없다는 과학자들의 지적에도 ‘고도가공식품(UPF)이 암과 정신건강 문제를 일으킨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고위 전문공직자 자질론 부각
케네디 장관의 청문회에서 드러난 이러한 품성은 고위 공직자, 특히 과학과 관련한 보건‧환경‧과학기술 정책 분야 전문 공직자의 자질과 관련해 다양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우선 전문성이 필요한 공직에 해당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비전문가를 기용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고위 공직자 발탁의 기본이다. 정부가 생산한 기본 통계를 믿지 않거나,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사람에게 공직은 맡기는 일은 행정적 해임 행위다.
다음으로 비주류 과학이나 음모론, 혹세무민의 미신 신봉자는 아예 공직에 기용하거나 고위 공직자가 가까이 해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전문성과 비과학적인 믿음이 충돌하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케네디가 프린지 이론(검증되지 않은 비주류 이론)에 빠져 보건의료를 해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보답이나 보상의 일환으로 전문 공직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교훈도 중요하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뒤늦게 자신의 믿음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말을 돌리거나 말 바꾸기로 일관하는 사람은 공직을 꿈도 꿀 수 없도록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