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데이터는 국가전략자산, 지금 구축안하면 영원히 못한다”
[화요초대석] 백롱민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구축사업단장
“국민 100만 명의 생명정보를 빅데이터로 구축하는 이 사업은 대한민국의 명운을 좌우할, 국가전략자산 사업입니다. 군사, 식량, 통신, 지하자원 등에 버금가는 중요한 국가자산을 확보하는 것이지요. 미국, 영국, 일본, 중국 등 멀찌감치 앞선 선발 주자들을 따라잡고 우리만의 특장점을 살리기 위해선 정부, 의료기관, 산업체 등의 협력과 국민의 동의가 절대적입니다.”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구축사업단 백롱민 단장(66)은 “사업의 중요성과 선발 주자와의 격차를 생각하면 1분, 1초가 아까울 정도”라면서 “정부와 전문가, 기업 등이 사업 전부터 다양한 준비를 해왔지만 선발국에 비해 까마득하게 늦었기 때문에 정부 각 부처 및 사업단의 정예요원과 민간 전문위원들이 사업 각 분야에서 분초를 다투며 사업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지난 4월 사업이 본격 출범하면서 단장에 선임된 백 단장은 “사업단은 특히 국민의 이해와 동의를 이끌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면서 “어떻게 하면 쉽고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을지, 참여자에게 어떤 혜택을 제공할 수 있을지 적극적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사업은 1단계로 2028년까지 77만2000명의 바이오 재료와 정보를 확보하고 관련 데이터를 생산해서 데이터뱅크와 바이오뱅크를 구축한 데 이어 2032년까지 100만명의 바이오데이터를 확보할 계획이다. 지난해 6월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면서 6066억원의 예산이 책정됐으며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질병관리청 등 범부처가 참여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주관하며 국가생명연구자원정보센터, 한국보건의료정보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등의 ‘브레인 기관’들이 구체적 사업을 맡는다.
사업단은 참여자들의 동의를 받아 혈액, 조직, 소변 등을 검체 등을 수집하고 이 가운데 34만명의 전체 유전체(WGS)를 분석해 데이터뱅크에 담는다. 설문을 받고 필요한 진료정보도 모은다. 희귀질환자, 중증질환자와 일반인으로 나눠 정보를 수집하는데 대상군에 따라 정보의 종류가 다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청 등의 공공 데이터도 모은다. 바이오뱅크와 데이터뱅크로 나눠 관리 운영하면서, 국내외 연구자들에게 원하는 정보를 제공한다. 연구결과의 일부는 다시 뱅크에 포함돼 선순환된다. AI를 비롯한 각종 기술을 적용해서 진료 가이드라인을 향상시켜 '맞춤형 정밀의료'를 가능케하고 산업계에 적용할 수 있는 자산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보 제공자에게는 유전체 분석 결과에 따른 건강관리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비롯한 각종 혜택을 줄 계획이다. ▶아래 그래픽 참조
사업단은 ▲사업 지원조직 구축 ▲참여기관 확보 ▲유전체분석 및 데이터 기술 지원 ▲데이터뱅크와 바이오뱅크의 서버 구축 및 운영 등 복합적 업무를 총괄 추진한다. 백 단장은 “국민의 동의를 얻기 위해 동의서를 중학교 2학년도 알 수 있게 쉽게 만들고 관련 영상을 만드는 등 디테일에 크게 신경쓰고 있다”고 소개했다.
얼굴기형 치료의 세계적 권위자인 백 단장은 의료정보, 병원경영 등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이 사업의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 성형외과학의 태두로 불리는, 형 백세민 박사(2022년 작고)와 함께 베트남 얼굴기형 어린이 2000여 명을 무료치료해 웃음을 찾아준 공로로 베트남 국가우호훈장, 오드리 헵번 인도주의상 등을 받았다. 또 분당서울대병원 부원장, 원장 등을 거치며 세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 병원으로 성장시키는 데 힘썼다. 서울대병원과 SKT의 합작투자회사 헬스커넥트의 대표로 의료정보 산업 현장을 경험했으며 대한의료정보학회 회장, 건강보험디지털의료전문평가위원회 위원장, AI 정밀의료솔루션 닥터앤서 2.0 사업단장 등을 역임했다.
-이 사업이 국가전략자산 구축사업이라고 계속 강조했는데….
“그렇다. 바이오데이터는 21세기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전략자산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국민을 위한 맞춤 건강의 기반이 될 것이고 학계와 산업계에서는 연구의 기본자료가 될 것이다. 한번 구축하면 고정되는 데이터뱅크가 아니라, 활용하면서 계속 업그레이드되는 생명력 갖춘 정보뱅크가 될 것이다. 미국, 영국 등 중요성을 간파한 나라들은 일찌감치 스타트했기 때문에 격차를 줄이는 것이 숙제다.”
-바이오빅데이터 선발국들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으며, 격차는 어느 정도인가?
“이를 설명하기 전에 배경부터 알려드리겠다. 각국의 바이오빅데이터 구축은 ‘유전체 혁명’과 ‘디지털 전환(D/X)’이라는 세계사의 양대 흐름의 교집합 안에서 태동했다. 유전체 혁명은 1990년에 시작해서 2003년에 공개된 ‘휴먼 게놈 프로젝트’가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미국의 에너지부와 국립보건원을 중심으로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중국 등 6개국 공동연구단이 30억 달러(약 4조 1650억원) 예산으로 시작했다가 ‘생명공학계의 이단아’ 크레이그 벤터가 이끈 민간기업 셀레라 지노믹스와의 경쟁과 협력으로 2년 앞당겨 결과를 발표했다. 현재 한 명의 전체 유전체를 분석하는 비용이 100달러(약 13만8000원) 아래로 떨어져 다양한 연구와 사업이 가능해졌다. 게다가 디지털 전환으로 각종 데이터를 모아서 분석하는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의학계에선 임상정보와 유전자정보를 분석해서 인체의 비밀을 본격적으로 벗겨내기 시작했으며 정밀의료와 개인맞춤형 건강관리가 가능해졌다.”
-그것의 중요성을 미리 알아챈 나라들이 먼저 출발했다는 말씀인 듯한데….
“바로 그렇다. 생명공학의 선도국인 영국은 2006년 ‘UK 바이오뱅크’를 출범시켰다. 5억3780만파운드(약 9660억원)가 투입되는 사업인데, 10년만에 50만명의 유전체 정보를 확보했고 지난해 세계 과학자들에게 공개했다. 연구자들은 별도의 신청 승인 절차를 거쳐 사용료를 내고 이들 자료를 사용할 수 있다. 미국은 2015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연두 국정연설에서 ‘정밀의료 추진계획(Precision Medicine Initiative)’을 발표하면서 시작했다. 이듬해 ‘21세기 치료 법안(The 21st Century Cures Act)’이 의회를 통하면서 15억달러(약 2조원)의 예산을 넣기로 했고 매년 2억1500만달러(약 3000억원)를 투입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이끄는 ‘올 오브 어스(All of Us)’ 사업을 통해 100만명의 바이오데이터를 모을 계획이며 현재 65만명의 데이터를 확보했다. 일찌감치 2002년 시작한 이웃 일본의 ‘바이오뱅크 재팬’은 30만명의 데이터를 확보했다. 핀란드는 ‘핀진(FinnGen)’ 사업을 통해 인구 10%인 50만명의 혈액 샘플과 유전체 정보를 확보했으며 에스토니아는 인구 15%인 20만명의 유전체 정보를 뱅크에 담았다.”
-미국에서 정밀의료 추진계획과 바이오빅데이터가 연결된 것이 흥미롭다.
“개인의 유전체 데이터와 임상정보에 식단, 운동습관 등 생활하면서 생산하는 각종 건강정보를 합친 빅데이터는 신약이나 치료법을 위한 연구재료이기도 하지만, 개인 맞춤형 치료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의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의사가 ‘당신의 유전체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과거 질병력과 생활습관을 분석했더니, 이대로라면 3년 안에 당뇨병 생길 확률이 65%인데, 식단을 이렇게 고치고 운동을 요렇게 하면 발병 확률이 9%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고 진단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한편으론 먼 미래의 일처럼 들린다.
“정밀의료는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내가 의대에서 공부할 때만 하더라도 폐암은 크기와 모양에 따라 세 종류로 분류됐고 이후에 좀 더 세분화됐는데, 유전체 연구가 쌓이면서 수 십 종류가 밝혀졌다. 폐암의 종류별 실체가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수술로 암 부위를 잘라낼 수 없으면 정상세포와 암세포를 무차별 폭격하는 항암제에 의존해야 했지만, 지금은 암과 관계있는 유전자만 공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질병의 타깃이 명확해지면서 치료뿐 아니라 예측, 관리도 진일보했다. 안젤레나 졸리가 자신의 유전체에서 BRCA(BReast CAncer Susceptibility) 유전자 돌연변이를 확인하고 예방적 유방절제술을 받은 것이 대표적이다. 한마디로 질병과 의료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기 시작했다.”
-앞서 말씀하신 영국의 UK 바이오뱅크를 보니, 선발국들은 벌써 산업과 연구 등에서 열매를 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영국에서는 연구자들에게 데이터를 공개하면서 상당한 비용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뱅크가 연구 목적을 심의하고 결과를 공유하면서 자연히 미래 정밀의료의 허브가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을 비롯한 선발국들이 전력을 다해 바이오데이터의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뒤늦게 시작해서 충분하지 않은 비용으로 선발국을 따라잡아야 하므로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에겐 축적된 지식과 노하우, 연구자들의 열정이 있다. 지금 못하면 영원히 못하고, 바이오 정보의 종속국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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