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 고혈압 치료를 받던 73세 남성이 어느 날 갑자기 심하게 피를 토하고 복통, 피로감을 견디다 못해 응급실로 실려 왔다. 병원에 도착했을 당시 환자는 의식은 뚜렷했으나 맥박이 가파르게 치솟는 빈맥 증상을 보였다. 의료진이 윗배(상복부)를 누르자 견디기 힘든 통증을 호소했다.
응급으로 진행한 혈액 검사에서는 급성 빈혈이 확인됐다. 곧이어 시행된 응급 내시경 검사에서는 위 안쪽 여러 곳에 검붉은 색을 띤 울퉁불퉁한 혹 같은 것들이 널려 있었다. 의료진은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위해 생검을 시도했으나 뚜렷한 답을 얻기 어려웠다.
컴퓨터 단층촬영(CT) 검사에서는 울퉁불퉁한 위벽에 혹(종괴)이 있고 극심한 위출혈 증상이 고스란히 포착됐다.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다. 의료진은 큰 출혈을 막기 위해 즉각 대수술(위전절제술과 대망절제술)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위전절제술은 위를 모두 잘라내는 수술이며, 대망절제술은 위장 아래쪽을 앞치마처럼 덮고 있는 지방 조직인 대망(그물막)을 함께 떼어내는 수술이다.
의료진은 떼어낸 조직을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봤다. 위벽 전체에 걸쳐 많은 암세포가 빠르게 번져 있었고, 주변 림프절(15곳 중 5곳)에서도 똑같은 암세포가 깊숙이 파고 들어가 있었다.
의료진은 검사 결과를 토대로 점막 흑색종을 의심했다. 검사(HMB-45, S100 등) 결과에서도 흑색종이 의심됐지만, 정밀 조직 검사에서 흑색종 진단에 꼭 필요한 핵심 표지자(SOX10)는 음성으로 나왔다.
추가로 검사해 보니 폐에서도 똑같은 암세포가 발견됐지만 피부나 눈, 항문직장 등 다른 곳에는 암세포가 전혀 없었다. 결국 의료진은 위에서 시작된 암이 폐로 전이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의료진은 "특정 검사 하나만 보고 흑색종이 아니라고 단정해선 안 되며, 여러 검사를 꼼꼼히 함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는 암 수술 후에도 철저한 영상의학적인 추적 관찰과 전신 면역 치료 등을 통한 지속적인 예후 관리를 받고 있다.
알바니아 티라나대학병원 연구팀은 이 사례(증례) 연구 결과(Gastric Melanoma Presenting With Gastrointestinal Bleeding: A Case Report of a Probable Primary Lesion)를 최근 국제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발표했다.
흑색종은 크게 피부 흑색종과 점막 흑색종으로 나눌 수 있다. 점막 흑색종은 피부 외 신체의 다른 부위와 구강, 비강, 식도, 위장관, 항문직장, 비뇨생식기 등 장기의 점막에 발생한다. 피부 흑색종은 전체 흑색종의 약 90% 이상을 차지한다. 서구권 기준 인구 10만 명당 연간 약 15~20명 이상으로 비교적 높은 발병률을 보인다.
점막 흑색종은 전체 흑색종의 약 1.4%에 그치는 드문 암이다. 인구 백만 명당 연간 약 2.2명꼴로 발생한다. 대규모 역학 데이터를 기준으로 할 때, 피부 흑색종의 발병률은 점막 흑색종에 비해 약 70배 높다.
이 사례 속 환자의 위장관 흑색종은 위, 식도, 대장 등 소화기계에서 극히 드물게 발생하는 악성종양이다. 초기 증상이 일반적인 위궤양이나 위암과 비슷해 진단이 까다롭다. 특히 위 흑색종은 종양 조직이 자라면서 표면이 취약해지고 쉽게 헐어 많은 위장관 출혈이나 빈혈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된다.
멜라닌 색소를 생성하는 세포인 멜라노사이트가 없는 위 점막에서 흑색종이 발생하는 정확한 메커니즘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멜라노사이트의 비정상적인 이동이나 다능성 줄기세포의 변이 등이 원인 중 하나로 추정된다. 통상 소화기계 흑색종은 다른 부위에서 암세포가 퍼진 경우가 많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및 질병관리청 통계에 따르면 국내 소화기계 원발성 악성 흑색종은 전체 위장관 악성종양의 1% 미만을 차지한다. 진단 때 이미 림프절이나 원격 장기로 전이된 경우가 많아 예후가 나쁜 편이다.
이번 사례처럼 진단 과정에서 흑색종의 핵심 표지자(SOX10)가 음성으로 나타나는 변이형까지 겹칠 경우, 폭넓은 면역조직화학 패널을 종합하는 정밀 접근이 필수적이다. 수술적 절제가 우선이며, 전이성이거나 절제 불가능한 경우에는 표적치료제와 면역관문억제제 등 전신 항암 요법을 적용한다.
[자주 묻는 질문]
Q1. 위에도 흑색종이 생길 수 있나요?
A1. 피부나 눈에 주로 발생하는 흑색종은 위나 장 등 소화기계에서도 드물게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다만 위 점막에는 원래 멜라닌세포가 없기 때문에 위에서 최초로 발생하는 원발성 위 흑색종은 세계적으로 매우 희귀합니다. 대다수는 다른 신체 부위에서 전이된 형태를 띱니다.
Q2. 흑색종의 대표적인 표지자(SOX10) 검사가 음성인데도 이 암으로 진단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A2. SOX10은 멜라닌세포 분화를 확인하는 대표적 표지자이지만, 일부 특수 변이형 흑색종에서는 발현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번 사례에서는 HMB-45, S100 등 다른 핵심 표지자가 양성 반응을 보이고 세포 형태가 흑색종과 일치해 정확한 진단이 가능했습니다.
Q3. 위 흑색종이 의심될 때 나타나는 주요 증상은 무엇인가요?
A3. 종양이 자라면서 표면이 쉽게 부서지고 궤양을 일으키기 때문에 검은 대변(흑변), 토혈(피 토함), 심한 복통, 빈혈로 인한 피로감 등 위장관 출혈 증상이 주로 나타납니다. 이는 일반적인 위궤양이나 위암과 비슷한 증상입니다. 내시경 검사와 조직병리학적 정밀 검사를 통해 감별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