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건강과 질병에 얼마나 많은 비용을 쓰고 있을까. 보건복지부 국민보건계정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연간 경상의료비는 2025년 기준 435만3000원이다. 여기에는 개인이 직접 부담한 의료비와 건강보험, 정부 지출이 모두 포함된다. 국가 전체로 환산하면 무려 225조원에 이른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건강과 질병에 투입되는 비용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강조되는 것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건강관리법이다. 많은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비결을 멀리서 찾지만, 사실 해답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식탁에 있다. 매끼 식탁에 ‘질병’을 줄일 수 있는, 자연 본연의 식품을 더하는 ‘로우코어 뉴트리션(Raw Core Nutrition)’이 주목받는 이유다.
최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6 한국식품영양과학회 국제학술대회 (KFN International Conference)’의 ‘기능성 식품소재와 건강 증진 전략’을 주제로 한 세션에서는 ‘질병 없이 건강한 노년을 보내기 위한 식생활’을 제시됐다.
이 세션에는 조진아 충남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전신영 순천향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최정화 계명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강민지 덕성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가 참여해 ‘로우코어 뉴트리션’ 실천을 강조했다. 수명이 늘어나더라도 만성질환에 시달리거나 신체 기능이 떨어진다면 삶의 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로우코어 뉴트리션’은 질병 위험 저하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
건강한 노화의 열쇠 ‘로우코어 뉴트리션’… 첨가물 없이 최소한의 가공
이번 학술대회에서 주목받은 개념은 ‘로우코어 뉴트리션’이다. 이는 자연식품을 중심으로 최소한의 가공을 거치고, 식품이 본래 가진 영양성분을 최대한 유지하며 섭취하는 식생활을 의미한다.
조진아 충남대 교수는 “로우코어 뉴트리션은 기존 영양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자연식품 중심의 식생활을 실천하기 위해 새롭게 도입한 개념”이라며 “이런 식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를 통해 제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2025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10만5015명을 최대 30년간 추적한 결과 건강식단지수가 가장 높은 상위 20% 집단의 건강한 노화 가능성이 가장 낮은 하위 20% 집단보다 1.86배 높았다.
여기서 '로우(Raw)'는 모든 음식을 익히지 않고 날것으로 먹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식품의 영양적 구조를 존중하면서 불필요한 가공을 줄이고, 자연식품을 일상적으로 섭취하자는 뜻이다.
구체적인 조건으로는 △다양한 영양성분이 함께 존재하는 자연식품의 구조 중시 △색과 향, 식감 등 본래 특성을 최대한 보존하는 최소 가공 △첨가당이나 불필요한 향료·착색료보다 원재료의 맛 우선 △영양제로 대체하기보다 매일 식사에 채소·과일 포함 등을 제시했다.
조진아 교수는 “핵심은 ‘식품 매트릭스(Food Matrix)’”라며 “채소와 과일에는 비타민과 무기질뿐 아니라 식이섬유, 카로티노이드, 플라보노이드, 폴리페놀 등 다양한 생리활성물질이 복합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렇다고 모든 가공식품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식사의 질을 높이고 이를 장기간 유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핵심은 ‘충분한 과일과 채소 섭취’… 사망 위험, 질병 발생률 낮아져
‘로우코어 뉴트리션’ 식생활의 핵심은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다. 최정화 계명대 교수는 채소와 과일 섭취가 만성질환과 사망 위험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한 주요 역학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2021년 국제학술지 《서큘레이션(Circulation)》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채소·과일을 하루 5회분 섭취한 사람은 2회분 섭취한 사람보다 전체 사망 위험이 약 13% 낮았다. 특히 과일 2회분과 채소 3회분을 섭취했을 때 사망 위험 감소와의 연관성이 뚜렷했다. 심혈관질환에서도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최정화 교수는 “2020년 발표된 종설 연구에서는 충분한 채소·과일 섭취가 심혈관질환 위험을 연구에 따라 약 3~20% 낮추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대장암과 폐암과의 상관관계를 살펴본 연구에서는 채소·과일 섭취량이 많을수록 발생 위험이 낮아지는 경향이 관찰됐다”고 말했다.
전신영 순천향대 교수는 나이가 들어 신체 기능이 떨어지는 ‘노쇠’와의 관련성에 주목했다. 그는 “싱가포르 연구에서 중년 남녀 약 1만2000명을 20여 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채소를 하루 180g 넘게 섭취한 집단은 약 57g 섭취한 집단보다 노쇠 위험이 약 27% 낮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결과는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섭취하는 식습관이 단순한 영양 보충을 넘어 건강한 노화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영양제로 대신 채울 수 있을까… 일부 연구에서는 오히려 ‘역효과’
채소와 과일이 건강에 좋다면 그 안에 들어 있는 비타민과 무기질을 영양제로 섭취해도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연구 결과들이 소개됐다.
전신영 교수는 식품과 영양보충제를 통한 영양소 섭취를 비교한 연구를 제시했다. 그는 “미국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비타민 K와 마그네슘을 식품을 통해 충분히 섭취한 사람들의 사망 위험이 낮았다”며 “반면 같은 영양소를 보충제로 섭취했을 때는 사망 위험과 유의한 연관성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식품과 보충제를 직접 비교한 실험도 있다. 전신영 교수는 “덴마크에서 건강한 성인 43명을 대상으로 24일간 진행한 연구에서는 하루 600g의 채소·과일을 섭취한 집단에서 적혈구의 항산화 효소 활성이 증가했다”며 “그러나 같은 양의 비타민과 무기질을 보충제로 섭취한 집단에서는 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
일부 항산화 영양소는 보충제 형태로 섭취했을 때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다. 최정화 교수는 베타카로틴과 비타민E 보충제를 이용한 임상시험을 소개하며 “일부 연구에서는 베타카로틴 보충제를 복용한 집단의 폐암 발생률이 18% 높았고, 비타민 E 보충제를 단독 복용한 남성의 전립선암 발생 위험이 17% 증가했다”며 “보충제가 정말 유익한가에 대해서는 조금 불확실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처럼 특정 영양소 하나를 따로 섭취하는 것과 여러 영양성분이 함께 존재하는 식품을 섭취하는 것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다를 수 있다. 채소와 과일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유익한 성분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 여러 영양성분의 복합적인 작용이 건강 효과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로우코어 뉴트리션’이 강조하는 자연식품 중심의 식생활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인 4명 중 3명 채소·과일 부족… 아침 ‘KCA 착즙주스’
문제는 채소와 과일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충분히 먹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강민지 덕성여대 교수는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인의 채소·과일 섭취 실태를 분석한 결과, 2024년 기준 하루 채소·과일을 500g 이상 섭취한 사람의 비율은 24.4%에 불과했다. 4명 가운데 3명이 하루 채소·과일 필요량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채소 300g과 과일 200g으로 구성하는 실천 방안을 제시했다. 조진아 교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아침 과채 섭취 습관'을 제안했다. 그는 “점심과 저녁은 외식이나 배달음식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침은 상대적으로 식재료를 직접 선택하고 식단을 조절하기 쉽다”며 “미리 씻고 손질해 소분해 놓으면 준비에 드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채소를 충분히 먹기 어렵다면 과일보다 채소의 비중이 높은 과채주스를 보완적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대표적으로는 최근 연예인들도 즐겨 마신다는 KCA 착즙주스가 있다. KCA 착즙주스는 케일(Kale)과 셀러리(Celery), 사과(Apple)의 조합으로 비타민과 식이섬유, 무기질을 보충할 수 있다. 특히 케일은 항산화 작용이 뛰어나고, 셀러리는 수분과 식이섬유가 많고 열량이 낮아 체중 관리에 탁월하다.
강민지 교수도 부족한 채소 섭취량을 채우는 방법으로 주스 활용을 제안했다. 그는 “로우코어 뉴트리션은 다양한 채소와 과일을 통해 비타민과 여러 생리활성물질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과일에 당분이 들어 있지만 지나치게 먹지만 않으면, 설탕이나 시럽 없이 자연스러운 단맛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케일과 셀러리, 사과를 조합한 주스를 만들 수 있다”며 “이처럼 식사에 다양한 색상의 채소와 과일을 활용한 주스를 곁들이는 방식으로 일상에서 손쉽게 로우코어 뉴트리션을 실천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생애주기에 따른 접근도 필요하다. 강민지 교수는 “영유아는 채소를 친숙하게 접하도록 하고, 청소년과 청년층은 학교나 직장에서도 채소·과일을 쉽게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중장년층은 만성질환 예방을 위해, 노년층은 신체 기능 유지와 건강한 노화를 위해 꾸준한 섭취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