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09일 (목)

'게임체인저'가 된 中바이오...글로벌 빅파마들 기술 사가려 '웨이팅'

[중국 바이오 굴기] <상> 중국, 글로벌 바이오기술 거래의 40% 차지

올해 초 중국의 인공지능(AI) '딥시크'가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예상보다 뛰어난 실력과 매우 저렴한 가격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딥시크를 향해 몰려갔다. 일부 투자가들은 딥시크를 두고 ‘중국 AI의 스푸트니크 모먼트’라고 부르기도 했다. 과거 소련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해 미국 과학기술계에 충격을 준 것만큼이나 AI업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는 의미다. 중국의 혁신을 보여주는 이런 일이 지금, 바이오업계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선급금 규모가 말해주는 중국 바이오 위상

최근 중국이 잇달아 대규모 기술 수출 뉴스를 전하며 글로벌 바이오제약 무대에서 ‘게임 체인저’로 부상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헝루이, 3SBio, 이노벤트, 항서제약 등 주요 제약사들이 미국·유럽 빅파마와 체결한 기술수출 계약만 10건 이상, 계약 규모는 100억달러(약 13조5000억원)를 넘어섰다.

특히 주목할 점은 거래된 기술 대부분이 이중항체, CAR-T(키메릭항원수용체-T세포), AI(인공지능) 기반 신약 플랫폼 등 고난도 차세대 치료기술이라는 점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비용 효율성과 기술 혁신을 동시에 추구하는 과정에서 중국 기술이 전략적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중국발 초대형 계약이 잇따랐다. 이노벤트가 이중특이적 항체 기반 항암제 후보물질 'IBI3009(후보물질명)'를 총 계약액 10억달러(약 1조3500억원) 규모로 로슈에 기술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심시어는 애브비와 최대 10억5500만달러(약 1조4600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항서제약은 3월 MSD에 전이성 고형암 치료 후보물질 'HRS5346'(임상 2상)을 기술이전했다. 당시 거래는 선급금 2억달러(약 2700억원), 총 계약금은 17억7000만달러(약 2조3900억원)에 달했다. 해당 후보물질은 DNA 손상 복구 효소인 PARP(Poly ADP-Ribose Polymerase)와 DNA 손상을 겨냥한 이중 작용제로 치료가 어려운 암종에 새 옵션으로 기대된다.

이어 3SBio는 화이자와 자가면역질환 타깃 항체 'SSGJ-707'에 대해 전임상 단계에서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선급금 12억5000만달러(약 1조6900억원), 총 규모는 48억달러(약 6조4800억원)로 올해 첫 초대형 계약의 포문을 열었다. 시로낙스는 노바티스와의 계약으로 BDM(차세대 면역조절) 플랫폼 기술을 수출하며, 총 58억9000만달러(약 7조9500억 원) 규모의 메가딜을 맺는데 성공했다.

헝루이제약도 GSK와 이중항체 'HRS-9821'를 포함한 총 12개 파이프라인을 일괄 기술이전하는 초대형 계약을 진행했다. 선급금 5억달러(약 6750억원), 마일스톤 포함 총액은 120억달러(약 16조2000억원)에 달한다. 이번 계약은 후보물질 개별 계약이 아닌, 포트폴리오 전체의 글로벌 사업화를 전제로 한 전략적 기술이전으로 평가된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선급금만으로 수천억 원을 지불하며 중국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바이오의 질적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중항체, AI 약물 설계, CAR-T 등에서 중국은 독자적 플랫폼을 갖춘 상태”라며 “퍼스트인클래스(First in class) 신약 개발 가능성도 실현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이는 단순한 위탁개발(CDO) 수준을 넘어, 중국이 글로벌 신약 시장에서 ‘기술 원천국’으로 입지를 넓히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올해 상반기 기술수출액, 이미 작년 전체 금액 넘어서

이런 추세는 중국 전체 바이오기술 수출 규모를 쭉쭉 밀어올렸다. 중국의 제약바이오 라이선스 아웃 규모는 2023년 166억달러(약 23조원)에서 지난해 415억달러(약 57조원)로 150% 급증했고, 올해 상반기 이미 이를 넘어 660억달러(약 91조원, 중국 투자업계 기준)를 기록했다.

글로벌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이벨류에이트에 따르면 2020년 전세계 기술수출에서 5% 미만을 차지하던 중국 거래 비중은 올해 약 40%에 이를 전망이다. 불과 수 년 전만 해도 제네릭 의약품과 원료의약품 수출에 주력하던 중국이었지만 지금은 그들의 기술을 전세계가 사가는 ‘기술 수출국’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중국은 대규모 임상 환자 풀, 낮은 비용, 빠른 규제 환경을 바탕으로 임상시험수탁기관(CRO)과 임상시험에서도 급부상했다. 스탠퍼드 메타연구혁신센터 연구에 따르면 2023년 중국의 임상시험 등록 건수는 1만6612건으로 미국(9100건)을 크게 앞섰다.

이같은 임상시험 경쟁력 강화는 곧 신약개발 역량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연구·개발 중인 신약은 약 1250개로 유럽연합을 넘어섰고, 미국(1440개)에 바짝 다가섰다. 신약 출시 속도만 놓고 보면 수 년 내 미국을 추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이제 빅파마들도 중국 시장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앞으로 AI나 휴머노이드 로봇처럼 중국 바이오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요즘 바이오업계에서는 중국 시장을 과거 미국이나 유럽 시장 보듯이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백승수 보건산업진흥원 중국 지사장은 “중국 의약품 시장은 세계 2위 규모로, 신약 파이프라인 수에서도 미국에 이어 두 번째”라며 “임상 효율성, 연구개발 투자, 클러스터 조성 등 정부지원 등이 맞물리며 기술수출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앞으로 전망도 밝다.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특허 공백을 메우려는 글로벌 빅파마의 수요와 맞물려 중국 기술수출이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과 유럽 빅파마의 입장에서는 자체 개발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파이프라인을 확보할 수 있고, 같은 예산으로 여러 후보물질을 들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 후보물질을 높게 평가한다.

백 지사장은 “중국 혁신신약 연구개발(R&D) 수준은 미투(me too) 단계에서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로 빠르게 옮겨 가고 있다”며 “향후 퍼스트인클래스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다만 ‘중국이 미국을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신중론도 나온다. 한종수 신한투자증권 기업금융센터 헬스케어 IB 부장(의사)은 “중국이 연구·임상 속도 면에서는 발전할 수 있어도 미국처럼 상업화 밸류체인을 갖추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상업화 역량이 글로벌 제약 패권(헤게모니)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하>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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