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정지로 의식을 잃은 환자들이 심폐소생술 중 들었던 소리를 기억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심장박동이 멈춘 뒤에도 뇌가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고 기억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 코미야스 교황청대, 영국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대, 리버풀 존 무어스대 공동 연구진은 심정지 환자의 소리 인식 능력을 조사해 이 같은 결과를 국제학술지 《더 이노베이션(The Innovation)》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영국과 스페인 13개 병원에서 심정지 위험이 있는 환자 140여 명을 모집했다. 환자들이 심정지 상태에 빠지면 심폐소생술을 시작한 뒤 처음 2분 동안 스피커로 특정 소리를 들려주고, 회복 후 이를 기억하는지 확인했다.
실험은 세 집단으로 나눠 진행했다. 첫 번째 집단에는 새소리와 빗소리, 파도 소리 등 익숙한 자연의 소리를 들려줬다. 두 번째 집단에는 과거에 들었던 음악과 혼동하지 않도록 새롭게 만든 멜로디를 사용했다.
두 집단에서는 양자컴퓨터의 양자 얽힘 현상을 활용해 각 소리의 재생 여부를 결정했다. 양자 얽힘은 양자컴퓨터의 정보 단위인 큐비트의 측정 결과가 서로 연관되는 현상이다. 세 번째 집단에는 양자 얽힘을 사용하지 않는 시스템으로 두 번째 집단과 동일한 멜로디를 들려줬다.
이후 회복한 환자들은 심폐소생술 중 실제로 재생된 소리 5개와 재생되지 않은 소리 5개를 구별하는 기억력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자연의 소리를 들은 집단과 새롭게 만든 멜로디를 들은 집단은 10개 문항 중 평균 6~7개를 맞혔다. 무작위로 답을 골랐을 때 예상되는 5개보다 높은 점수였다. 반면 양자 얽힘을 사용하지 않은 세 번째 집단은 평균 약 5개를 맞혀 우연히 정답을 고른 수준과 비슷했다.
뇌의 산소 수치와 기억력 사이에서도 예상 밖의 연관성이 발견됐다. 뇌 산소 수치가 낮을수록 심폐소생술 중 들었던 소리를 더 정확하게 구별했고, 임사체험도 더 강렬하게 보고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가 심정지로 혈액순환이 크게 떨어지고 겉으로 의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상태에서도 뇌가 일부 정보를 처리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기존 연구에서도 죽어가는 뇌에서 일시적으로 조직적인 전기 활동이 증가하는 현상이 관찰된 바 있다. 연구진은 이러한 뇌 활동이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이 보고하는 밝은 빛, 과거 기억의 회상, 유난히 또렷한 의식 등을 설명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심정지가 발생했다고 해서 모든 뇌 활동이 즉시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심폐소생술은 뇌에 일정량의 혈액을 공급할 수 있으며, 심장이 멈췄더라도 소생이 가능한 상태에서는 일부 뇌 기능이 남아 있을 수 있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에 대해 "회복 가능한 임상적 사망 상태에서도 의식이 보존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이는 심장박동이 멈춘 뒤 의식이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사라지는지 이해하는 데 새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연구진은 심폐소생술 중 환자가 외부 자극이나 대화를 인식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진이 환자를 존중하는 태도로 말하고, 회복한 환자에게 당시의 기억이나 특별한 경험이 있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환자들이 나중에 당시의 사건이나 대화를 기억할 수 있으므로 심폐소생술 중에도 환자를 존중하는 언어적 의사소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임사체험으로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환자에게는 적절한 심리적 지원도 권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