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올랜도에서 열린 미국암연구학회를 마치고 7시간 넘게 차로 달려 키웨스트에 도착하였다. 미국의 남단 키웨스트는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가 10여 년 살았던 곳이다.
한 기념품 가게에 들어갔다. 진열대 안에서 보이차와 우롱차를 발견하였다. 여든 살은 족히 되어 보이는 주인 여성이 내 눈길을 포착하였다.
그녀는 열쇠로 진열장을 열어 보석 다루듯 차를 조심스레 꺼냈다. 그리고 차를 설명하였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으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 차들의 미국식 발음 ‘푸우얼’과 ‘우울랑’은 아직도 귀에 남아 있다.
그녀의 정성에 화답하려 말을 걸었다. “혹시 헤밍웨이도 차를 좋아했나요?” 그녀는 “아마도 아닐 겁니다. 그는 항상 긴장하고 살았으니까요.”라고 답하였다.
키웨스트 사람이니 헤밍웨이의 긴장을 모를 리 없다. 그리고 그녀는 차가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도 한 셈이다.
긴장의 시작, 강한 어머니와 약한 아버지
헤밍웨이 긴장의 시작은 그의 가정에서부터다. 성악가인 어머니 그레이스 홀 헤밍웨이(Grace Hall Hemingway)는 강한 통제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아버지 클라렌스 헤밍웨이(Clarence Hemingway)는 조용하고 위축된 인물이었다.
강한 어머니와 약한 아버지. 이 대비는 어린 헤밍웨이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어머니는 그를 어린 시절 누나와 쌍둥이처럼 키우려 했고 때로는 여성 복장을 입혔다.
헤밍웨이의 이 회고는 과장된 듯 보이지만 중요한 것은 사실의 무게보다 그 경험이 남긴 심리적 흔적이다. 어린 시절 정체성은 타인의 시선 속에서 형성된다. 헤밍웨이는 어릴 때부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후 그의 삶은 이 질문에 대한 반복된 답변이었다. 그의 답변은 남자. 그것도 강한 남자다.
‘강한 남자’를 증명하려, 전장에서 사냥터까지
헤밍웨이는 일찍 전쟁에 참여하여 강한 남자임을 증명하려 나섰다. 그는 20세가 되지 않은 나이에 이탈리아 전선으로 간다. 정식 전투병 입대가 거부되자 적십자 구급차 운전병을 자청하여 자신을 전쟁의 위험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곧 부상으로 돌아온다. 그는 전선에서 박격포 공격을 받아 다리에 수백 개의 파편이 박히는 중상을 입는다. 부상에도 다른 병사를 업고 이동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상처를 입었으나 물러서지 않았던 이 사건은 헤밍웨이가 강한 남자로 자신을 서사화하는 시작이 되었다. 이 부상 때문에 밀라노 적십자 병원에서 장기 입원하며 치료받는다.
그곳에서 그는 간호사 아그네스(Agnes von Kurowsky)와 사랑에 빠지고, 다시 버림받는다. 그리고 이 경험은 훗날 『무기여 잘 있거라』로 탄생한다. 직접 위험을 경험하고 이를 이야기로 변환하여 그 자신의 존재를 만들어 나가는 순환은 이후 반복된다.
전쟁 이후에도 그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는 파리로 가고, 스페인으로 가고, 아프리카로 간다. 투우를 보고, 사냥을 하고, 낚시를 한다.
그는 위험과 맞닿은 환경을 지속적으로 선택한다. 투우장에서 그는 죽음을 마주하는 인간을 본다. 그리고 『오후의 죽음』을 쓴다.
아프리카에서는 사냥을 통해 생존의 감각을 경험한다. 쿠바에서는 바다와 싸우는 노인을 상상하며 『노인과 바다』를 쓴다. 그의 작품은 모두 하나의 주제를 공유한다. “인간은 결국 패배하지만, 패배하는 과정에서 존엄이 드러난다.”
강함의 대가, 부서진 몸과 사라진 기억
이 선택은 대가를 요구했다. 그의 몸은 거듭 부서진다. 그는 자동차 사고, 권투, 사냥 사고 등으로 반복적인 두부 충격을 받는다. 그는 이미 만성적인 외상성 뇌손상 위험군에 들어가 있었다.
결정적인 사건은 1954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다. 그는 이틀 사이 두 번의 비행기 추락을 겪는다. 첫 번째 사고에서 살아남아 구조를 기다리던 중, 구조 비행기가 다시 추락한다.
언론에 사망 보도까지 나갔다. 이때 그는 두개골 골절, 심한 뇌진탕, 내부 출혈, 화상, 척추 손상을 입는다. 노벨문학상 시상식에도 가지 못하고 병상에 누워 있었다. 이미 자신의 몸을 잃고 있었다.
1960년, 그는 메이요클리닉 계열의 세인트메리스병원에서 반복적인 전기경련치료(ECT)를 받는다. 당시 그의 상태는 단순한 우울증이 아니다. 심한 우울, “FBI가 감시한다”는 편집적 망상이 동반된다.
ECT는 강력한 치료였지만 가장 거친 치료였다. 당시 전압 조절이 정밀하지 않았고 근이완마취제 사용이 제한적이었으며 기억 손상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
그는 치료 후 기억의 손상을 호소한다. 작가에게 기억은 자산이다. 그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고, 글은 기억에서 나온다.
그는 “그들이 나의 기억을 훼손하였다”, “그들이 내 자산을 빼앗아 갔다”고 말하였다. 그는 ECT를 자신의 붕괴의 원인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그 해석이 그의 마지막 선택에 영향을 준다.
1961년, 그는 아이다호 케첨의 집으로 돌아와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삶을 끝낸다.
강함은 성격이 아니라 방어였다
후대에 여러 학자들이 헤밍웨이의 심리 방어기제를 분석하고 논문으로 발표하였다. 대표적인 연구는 2006년 크리스토퍼 마틴(Christopher D. Martin)의 논문이다.
이 연구에 의하면 헤밍웨이의 삶 전체가 하나의 심리 방어기제 시스템이었다. 알코올을 통한 자기 감정 억제, 전쟁과 사냥의 행동화, 위험 추구를 통한 반동 형성과 과잉 보상, 그리고 글쓰기를 통한 승화 등이다.
저자는 헤밍웨이가 복합적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견디기 위해 여러 방어기제를 동시에 사용했지만, 그는 결국 실패하였다고 해석하였다. 그의 강한 남성성은 성격이라기보다는 조직화된 방어구조라는 설명이다.
다른 연구 논문들도 비슷하다. 헤밍웨이에게는 고통이 존재하여 우울증, 외상, 불안을 앓았고, 방어기제로 술, 공격성, 위험 추구, 글쓰기가 동원되었으며, 창작 활동과 사회적 성공으로 기능을 유지하였으나 뇌손상, 기억 저하, 자살로 붕괴에 이르렀다.
전기 자극으로 인한 기억 손상의 의미도 논문으로 다루어졌다. 그에게 기억은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의 핵심이었다. 기억의 손상은 단순한 치료 부작용이 아니라 정체성의 붕괴로 이어졌다. 전기 자극이 그의 기억을 손상시킴으로써 헤밍웨이의 존재는 붕괴되었다.
그에 대한 연구 논문들을 종합하면 헤밍웨이는 “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강해야만 했던 사람”이었다. 헤밍웨이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강함이라는 방어기제를 평생 유지하다 방어가 붕괴된 순간 무너진 사람이다.
사건과 사건 사이, 차를 끓이는 시간
헤밍웨이의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술을 마신다. 와인, 위스키, 럼. 그들은 카페에서, 전쟁터에서, 배 위에서 끊임없이 마신다.
술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다. 감정을 폭발시키고 두려움을 잊게 하는 수단이며 남성성을 확인하는 의식이다. 술은 그의 세계에서 ‘강함’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다. 술을 마시는 행위는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계속 마시고 더 마시는 술은 무너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지탱한다.
그의 작품에서 차는 사건의 중심에 있지 않다. 사냥을 나가기 전 새벽 불가에서(『아프리카의 푸른 언덕』), 늙은 군인의 베네치아에서의 아침 식사 때(『강을 건너 나무 그늘 아래로』), 바다에서 돌아와 혼자 앉아 있는 집에서(『해류 속의 섬들』) 차가 등장한다.
전쟁과 사냥 같은 거대한 사건을 쓰던 헤밍웨이는 그 사건들 사이에 물을 끓이고 차를 마시는 작은 일상을 남겨 놓았다. 극단적인 세계에서도 사건과 사건 사이에 그의 인물들은 차를 끓이고 잔을 들고 누군가와 함께 앉아 있었다.
이 대비는 의미심장하다. 술은 그의 세계에서 밖으로 향하는 힘이다. 차는 안으로 돌아오는 힘이다. 술은 긴장을 밀어붙이고 감정을 외부로 방출한다.
차는 긴장을 풀고 감정을 내부로 가라앉힌다. 그래서 그의 소설에서 차는 사건의 중심이 아니라 사건의 사이, 폭발의 순간이 아니라 폭발과 폭발 사이의 침묵에 위치한다.
술은 헤밍웨이가 선택한 삶을 이끌었다. 위험, 긴장, 외부, 강함. 술은 강하게 살려 했던 그를 결국 기억을 잃어버리는 데까지 끌고 간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간혹 등장하는 한 잔의 차는 그가 오래 머물지 못하였던 다른 가능성을 암시만 할 뿐이다. 그의 생애에서는 조용함, 회복, 내면, 멈춤을 좀체 발견하기 어렵다.
술은 헤밍웨이 세계의 전면이고, 차는 후면이다. 그가 만약 차를 마셨더라면, 전면에 내세웠던 강한 삶에서 조금 벗어나 훨씬 고요한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유영현 티클리닉 디렉터(오디오칼럼 1+1이야기 https://www.youtube.com/@yhyoo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