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9일 (목)

美 테네시주, 2차례 주사에도 사형집행 실패한 약물의 숨은 정체는

펜토바르비탈 사용…현재 동물 안락사용
중추신경계 억제…과량이면 호흡·심장억제
원래 마취유도·진정·수면유도·경련억제용
대체약 바리움·아티반 나오며 뒤로 밀려
국내선 향정신성약 분류하고 사용 금지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경막외 신경차단술(경막외 마취)을 시술하는 모습. 척수를 둘러싸고 있는 보호막인 경막의 바깥쪽 공간인 경막외강에 국소마취제나 치료 약물을 주입해 통증을 줄이거나 마취하는 시술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펜토바르비탈(Pentobarbital). 생소하면서도 위험한 이 약물의 이름이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9월 30일(현지 시간) 미국 테네시주에서 시도되다 실패한 사형집행 시도에 이 약물이 사용됐다고 보도되면서다.

문제의 사형수는 18세 때인 1995년 남자친구와 함께 19세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31년간 복역하던 크리스타 파이크라는 50세 여성이다. 파이크는 과량의 펜토바르비탈을 두 차례 투여받고도 숨지지 않자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약 일주일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테네시주에는 두 차례 사형 시도에 실패했을 경우 어떻게 해야할지 규정이 없어 교정당국은 그를 병원으로 옮겼다. 3주 이상에 걸친 조사 결과 파이크는 현관이 좁아 약물이 정맥 주사를 통해 제대로 혈관으로 들어가지 못해 두 차례의 주사에도 살아남은 것으로 드러났다.

약물을 사용한 사형집행은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개발된 의약품이 가장 불행하게 남용되는 현장이다. 윤리적, 법률적 문제도 복잡하게 개입된다. 그 현장에 선 펜토바르비탈이라는 약물의 알파와 오메가를 알아본다.

펜토바르비탈, 원래 마취유도제·진정제·수면제로 사용

펜토바르비탈은 처음부터 사형에 쓰이지 않았다. 약리학적으로 중추신경계 억제제로 분류되며 마취유도제, 진정제, 수면제로서 1930~60년대에 임상에서 폭넓게 이용됐다.

처음 등장한 것은 96년 전인 1930년 미국 제약사 애보트의 어니스트 볼윌러와 도날리 테번이 합성하면서다. 마취과 의사인 존 사일러스 런디 박사가 효능을 확인한 뒤 ‘넴부탈’이라는 상품명으로 마취유도제·진정제·수면제로 임상에 널리 사용됐다. 불면증 단기 치료, 수술 전의 환자 진정, 간질과 경련 통제, 두개내압 감소 등 다양한 용도의 중추신경 억제제로 사용됐다. 당시로선 획기적인 의약품이었다.

참고로 이 의약품을 개발한 애보트는 현재 굴지의 글로벌 제약사로 지난해 매출이 443억 달러, 영업이익이 80억 5000만 달러에 이른다. 전 세계 연속혈당측정기 시장에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 품목인 ‘프리스타일 리브레’로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에 밀려 수의 안락사 약물로 전환…한국선 사용금지

하지만 펜토바르비탈은 의존성과 중독 위험이 높고, 다량에서 호흡마비가 자주 나타나는 데다 일부 자살 등에 남용되는 문제가 있었다. 1960년대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이 나타나면서 서서히 대체됐다.

벤조디아제핀계 약물로는 장기 지속형인 디아제팜·클로나제팜, 중간 지속형인 알프라졸람·로라제팜·브로마제팜, 단기 지속형인 트리아졸람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디아제팜은 바리움, 로라제팜은 아티반, 알프라졸람은 자낙스, 트리아졸람은 할시온이라는 상표명으로 대중에게도 비교적 익숙하다. 특히 아티반은 일부에서 오랫동안 약물 오남용의 대명사처럼 사용됐다.

결국 펜토바르비탈은 1970년대 이후 임상에서는 자취를 감췄다. 대신 수의과 분야에서 동물 안락사 용도로 쓰이게 됐다. 빠른 의식 소실과 심정지·호흡정지 유발 효과 때문에 조용한 안락사를 위한 표준 약물로 자리 잡았다. 일부 국가에서는 인간의 안락사나 조력 자살용으로도 사용됐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교수형과 전기의자 처형이 잔인하다는 여론 때문에 약물주사를 통한 사형 집행 용도로 사용되게 됐다.

한국에서 펜토바르비탈은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돼 엄격한 통제를 받아왔는데, 현재는 생산과 유통, 사용 자체가 금지돼 있다. 해외 직구 등을 통한 암거래가 일부 보고되고 있는데 모두 불법으로 처벌 대상이다.

애보트는 1999년 네부탈 브랜드의 펜토바르비탈 생산을 중단했지만, 다른 제약사에서 펜토바르비탈 성분의 약물을 생산한다. 하지만 사형집행용 납품은 거부하고 있다. 생명을 살리는 의약품을 만들어 공급하는 제약사에서 사형에 쓰일 줄 뻔히 알면서도 약물을 공급할 수 없다는 윤리적 이유와, 회사 브랜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현실적 우려에서다. 미국 교정당국은 간접적으로 이를 확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펜토바르비탈 모체인 바르비투르산 계열 약물의 짧은 역사

펜토바르비탈은 의약품 세계에서 선굵은 역사를 자랑한다. 펜토바르비탈은 화학적으로는 바르비투르산 계열의 약물로, 약리학적으로는 중추신경계를 억제해 진정·수면유도·항경련·마취유도 효과를 나타낸다. 바르비투르산 계열이란 화학적으로 바르비투르산을 모체 구조로 갖는 일련의 화합물을 가리키는 말로, 진정 관련 효과를 공통적으로 나타낸다.

바르비투르산은 1864년 독일의 화학자 아돌프 폰 바이어가 처음 합성했다. 바르비투르산 자체는 비활성 물질이라 약리적 효능이 없다. 1902년 같은 독일의 요제프 폰 메링과 에밀 피셔는 바르비투르산을 바탕으로 바르비탈(디에틸바르비투르산)을 합성하고 진정제 겸 수면제로 쓸 수 있을 정도의 약리 작용을 확인했다. 진정제는 소량으로 낮 동안 불안감·긴장·흥분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약물이고, 수면제는 진정제 용도보다는 많은 용량으로 밤에 잠이 들도록 유도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쓰는 의약품이다.

두 사람은 이듬해인 1903년 이를 최초의 바비투르산 계열의 진정제 겸 수면제로 상용화하면서 베로날(Veronal)이라는 상표명을 붙였다. 폰 메링이 개를 대상으로 동물실험을 했더니 너무도 곤히 잠들었기에 자신이 가본 곳 가운데 가장 평화로웠던 도시 베로나(Verona)에서 따서 붙였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베로날은 1950년대까지 임상에서 사용됐을 정도로 장수했다.

참고로 이탈리아 동북부의 고색창연한 도시 베로나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과 『베로나의 두 신사』의 극중 배경이다. 지금은 연중 벌어지는 오페라 등 공연과 축제, 그리고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 덕분에 조용하다기보다 활기차고 북적이는 도시로 자리 잡고 있다.

펜토바르비탈을 비롯한 바비투르산 계열의 의약품은 오랜 역사 속에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숱한 일화를 만들어낸 뼈대있는 약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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