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렴이나 요로감염 등을 일으킨 세균이나 진균이 혈액으로 퍼지는 상태를 ‘혈류감염’이라고 부른다. 감염원이 피를 타고 온몸으로 퍼질 수 있어 원인균을 빨리 확인하고 적절한 항균제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혈액배양검사에서 균이 자란 사실을 확인했다고 곧바로 가장 적합한 약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정확한 원인균을 확인하고 어떤 항균제에 잘 듣는지 알아보는 데 추가 시간이 필요하다.
고려대 안암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김근주 교수 연구팀은 혈액배양 양성 환자에게 신속 다중 중합효소연쇄반응(PCR) 검사를 추가하자 효과적인 항균제로 처음 치료를 조정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41.3시간 줄었다고 3일 밝혔다. 연구팀은 이 검사가 혈류감염 치료에서 의료진의 ‘기다리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음을 무작위 대조시험으로 확인했다.
여러 원인균·내성 유전자 한 번에 찾는다
혈류감염은 폐렴이나 요로감염, 복강 내 감염, 정맥관 감염 등에서 세균이나 진균이 혈액으로 퍼져 발생할 수 있는 중증 감염이다. 원인균을 빨리 파악하고 적절한 항균제를 선택하는 것이 치료의 중요한 관건이다.
이번 연구에 사용된 ‘다중 PCR’은 한 번의 검사로 여러 종류의 세균·진균과 일부 항균제 내성 유전자를 동시에 찾는 검사다.
그렇다고 기존 혈액배양검사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혈액배양에서 양성이 나온 검체를 신속 PCR로 다시 분석해 원인균과 일부 내성 정보를 더 빨리 확인하고, 의료진이 치료 방향을 정하는 데 필요한 단서를 앞당겨 제공한다.
원인균을 정확히 확인하고 항균제 감수성을 최종적으로 판단하려면 기존 배양검사가 여전히 필요하다. 신속 PCR은 여러 원인균과 일부 내성 유전자를 빠르게 찾는 검사이지, 모든 항균제에 대한 감수성을 한꺼번에 알려주는 검사는 아니다.
연구팀은 이런 검사를 추가했을 때 실제 환자의 치료 결정까지 빨라지는지를 살폈다.
환자 418명 무작위로 나눠 실제 치료 과정 비교
연구팀은 2025년 6월부터 10월까지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혈액배양 양성이 확인된 성인 입원환자 418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208명은 기존 표준검사만 받았고, 210명은 표준검사에 신속 다중 PCR을 추가했다. 환자를 연구 시작 단계에서 두 집단에 무작위로 나눈 뒤 이후 치료 결과를 비교하는 ‘전향적 무작위 대조시험’ 방식이다. 과거 진료기록을 뒤져 결과를 비교한 것이 아니라, 연구를 시작하면서 환자들을 무작위로 나눠 두 검사 전략이 실제 진료에서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 앞으로 관찰했다는 뜻이다.
두 집단 모두 항균제를 적절하게 선택하고 불필요한 사용을 줄이기 위한 ‘항균제 적정사용 관리’도 함께 받았다.
효과적인 항균제로 바꾸는 데 64.5시간→23.2시간
실제 처방이 바뀌는 시점도 크게 앞당겨졌다.
환자에게 효과적인 항균제로 처음 처방을 바꾸기까지 걸린 시간의 중앙값은 기존 검사군 64.5시간에서 신속 PCR군 23.2시간으로 줄었다. 41.3시간 빨라진 셈이다.
효과는 특정 원인균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람음성균과 그람양성균, 진균 감염에서도 치료 조정 시간이 두 유의하게 줄었다.
중환자실 환자에서는 차이가 더 컸다.
환자에게 효과적인 항균제로 처음 처방을 바꾸기까지 걸린 시간의 중앙값은 기존 검사군 84.8시간에서 신속 PCR군 20.5시간으로 줄었다. 64.3시간, 약 이틀하고도 16시간 빨라진 셈이다.
일반병동에서도 55.5시간에서 23.4시간으로 단축됐다. 검사실이 평소처럼 운영되는 시간뿐 아니라 야간이나 휴일 등 비정규 운영시간에도 치료 조정 시간이 유의하게 줄었다.
신속검사의 의미가 단순히 ‘검사 결과를 몇 시간 빨리 받았다’는 데 그치지 않는 이유다. 실제 환자에게 효과적인 항균제로 처방을 바꾸는 시점까지 빨라졌다.
혈액에서 같은 균 계속 나온 환자도 절반 수준
치료 결정을 빨리 내린 효과는 감염이 지속되는 비율에서도 나타났다.
일정 시간이 지나도 혈액에서 같은 원인균이 계속 검출되는 ‘지속성 혈류감염’은 기존 검사군에서 11.5% 발생했지만 신속 PCR군에서는 5.7%로 줄었다. 비율이 절반 수준으로 낮아진 셈이다.
다만 모든 결과가 좋아진 것은 아니다. 30일 사망률과 전체 입원기간에서는 두 집단 사이에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가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연구만으로 신속 PCR이 사망 위험이나 입원기간까지 줄인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검사 속도보다 ‘맞는 약을 빨리 쓰는 것’ 더 중요
이번 연구가 보여준 핵심은 검사 자체가 빨라졌다는 사실보다 그 결과가 실제 치료 결정을 앞당겼다는 데 있다.
혈류감염 초기에는 정확한 원인균과 감수성 결과가 나오기 전에 경험적으로 항균제를 먼저 투여하는 경우가 있다. 원인균과 내성 정보를 빨리 확보하면 환자에게 효과적인 약으로 더 일찍 바꾸거나 치료 범위를 조정할 수 있다.
김근주 교수는 “신속 분자진단이 단순히 검사 결과를 빨리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환자에서 효과적인 항균제 치료 결정을 크게 앞당길 수 있다는 점을 무작위 대조시험으로 확인했다”며 “신속한 진단과 항균제 적정사용 관리체계를 긴밀하게 연계한다면 혈류감염 환자에게 보다 빠르고 정확한 치료를 제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김근주 교수와 감염내과 윤영경 교수가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다. 진단검사의학과 남명현 교수와 감염내과 손장욱 교수는 공동 교신저자로 연구를 총괄했다.
연구 결과는 미국감염병학회(IDSA) 공식 학술지 《임상감염병(Clinical Infectious Diseases)》에 8월 20일 온라인 게재됐다. 학술지 편집진이 주요 연구를 선정해 소개하는 ‘Editor’s Choice’에도 뽑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