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흡연자들은 임신을 준비하면서 다양한 대체재를 고민한다.
불을 붙여 태우는 일반 담배(궐련)의 연기에는 일산화탄소가 들어 있다. 일산화탄소는 임신부의 혈액 속 헤모글로빈과 결합해 혈액이 산소를 운반하는 능력을 크게 떨어뜨린다. 결과적으로 태아에게 충분한 산소가 전달되지 못하고, 저체중아 출산이나 조산·유산 등을 유발할 위험이 크다.
흔히 임산부들이 떠올리는 대안으로 액상형 전자담배가 있다. 전기 코일로 액상을 끓인 뒤 발생하는 증기(에어로졸)를 흡입하는 방식이다. 직접 불을 붙이지 않아 일산화탄소 흡입 위험이 거의 없고, 액상을 맞춤화하면 니코틴을 아예 빼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니코틴 함유 여부와는 별개로, 전자담배 액상에 사용하는 향료 성분이 배아(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한 초기 단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액상 제품 절반 이상에 들어가는 바닐린, 세포 성장 막는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전자담배용 액상에 사용되는 향료 ‘바닐린’이 초기 배아 발달 단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주목했다.
바닐린은 열대에서 나는 열매 바닐라빈에서 추출한 가루 형태의 원료다. 전자담배 액상 제품의 절반 이상에 들어간다. 주로 바닐라향이나 디저트 맛을 내는 액상에 함유되지만, 무향이나 담배 본연의 맛을 표현한 액상에 바닐린을 활용한 제품도 많다.
연구팀은 수정 후 약 2~3주 상태의 배아를 재현하기 위해 사람 배아줄기세포를 사용했다. 이어서 바닐린을 희석한 뒤, 시험관을 통해 임신 중 배아가 노출될 수 있는 수준의 농도를 줄기세포에 주입했다.
그 결과, 바닐린은 배아줄기세포를 약화시켜 결과적으로 성장을 방해했다.
배아줄기세포는 원래 우리 몸을 이루는 모든 종류의 세포와 조직으로 자라날 수 있는 만능 세포다. 그런데 바닐린은 이런 만능성을 감소시켰다. 바닐린 노출 이후에는 배아줄기세포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또 이 세포들이 모인 군집에 바닐린이 독성 작용을 하면서, 결과적으로 배아줄기세포가 덜 자라고 더 쉽게 죽도록 만들었다.
중독 아닌 일상 수준 흡연도 분명한 악영향 가능성
연구팀에 따르면 임신부가 일반적인 수준으로 흡연을 한다면 배아가 노출될 수 있는 혈중 바닐린 농도는 평균 450nM(나노몰) 수준이다. 이번 실험에서 바닐린의 독성 작용이나 성장 방해가 관찰된 것도 비슷한 농도에서 관찰됐다.
연구를 주도한 프루 탤벗 캘리포니아대 생물학과 교수는 “니코틴 중독 수준의 임신부라면 배아가 최대 2만7000nM의 농도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임신 중 바닐린이 함유된 전자담배를 사용하면 잠재적으로 심각한 수준의 발달 저하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탤벗 교수에 따르면 바닐린은 배아줄기세포 표면을 자극해 칼슘이 빠르게 세포로 들어오도록 만든다. 칼슘은 정상적인 환경에서는 세포 내 단백질을 활성화하고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등 신호 전달 채널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처럼 짧은 시간 안에 과하게 많은 칼슘이 유입되면 독성 반응이 일어나 세포의 에너지 생성을 줄이고, 단백질이나 DNA를 분해하는 효소를 활성화시키는 등 세포 구조 자체를 파괴할 수 있다.
탤벗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세포실험 단계에서 확인한 연구로 실제 임신 결과에서 직접 테스트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임신이 잘 안되거나 유산을 겪은 여성이라면 의사와 상의 끝에 금연을 할 것을 권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휴먼 리프로덕션(Human Reproduction)》에 12일(현지시간) 게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