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환자실 환자가 갑자기 횡설수설하거나 심하게 흥분하면 섬망을 의심할 수 있다. 반대로 조용히 누워 평소보다 말수가 줄고 물음에 반응이 늦어지는 것도 섬망의 신호일 수 있다. 이런 변화를 뇌파로 살피는 인공지능(AI) 감시 기능이 미국에서 출시됐다.
미국 의료기기 기업 세리벨(Ceribell)은 기존 뇌전증 발작 감시 장비에 섬망 감시 기능을 추가해 미국 시장에 출시했다고 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이 기능은 지난해 1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510(k) 허가를 받았다. 510(k)는 기존에 판매 중인 의료기기와 사용 목적, 안전성·성능 등이 실질적으로 동등한지 평가하는 시판 전 심사 절차다.
감염·산소 부족 등 원인 다양⋯조기 발견 중요
섬망은 주의력과 의식 상태가 몇 시간 또는 며칠 사이 갑자기 달라지는 증후군이다. 감염이나 산소 부족, 약물 부작용 등이 원인일 수 있다. 증상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달라져 한때 정상처럼 보이다가 다시 나빠지기도 한다.
섬망이 나타나면 의료진은 원인을 신속히 찾아 치료해야 한다. 섬망을 겪은 중환자는 입원 기간이 길어질 수 있고, 퇴원 후에도 기억력과 집중력 저하가 이어질 위험이 높다. 이 때문에 환자의 상태를 주기적으로 평가하고 변화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세리벨 시스템은 환자 머리에 전극이 달린 띠를 둘러 뇌파를 측정한다.
FDA 허가 자료에 따르면 AI는 처음 30분간 기록한 뇌파를 분석해 섬망 징후가 있는지 평가한다. 이후 15분마다 결과를 새로 제공하며, 섬망 관련 징후가 새로 나타나면 의료진에게 경고를 보낸다. 같은 장비로 뇌전증 발작도 감시할 수 있다.
FDA 허가 당시 제출한 성능평가에서는 성인 중환자 225명의 자료를 분석했다. 섬망 환자를 찾아내는 민감도와 섬망이 아닌 환자를 구별하는 특이도가 각각 약 81%였다. 실제 섬망 환자 100명 중 약 81명을 찾아내고, 섬망이 없는 환자 100명 중 약 81명을 구별하는 수준이다.
뇌파를 이용한 유사한 검사기기는 이전에도 나왔다. 네덜란드 프로리라의 '델타스캔'은 2023년 미국 FDA 허가를 받았다. 다만 이 제품은 급성 뇌병증 진단을 돕는 장비로, 세리벨의 섬망 지속 감시 기능과 사용 목적이 다르다.
한국, 중환자실 섬망 평가에 건강보험 적용
한국에서는 2025년 10월부터 중환자실 환자의 섬망을 확인하는 '한글판 CAM-ICU 평가'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의료진이 환자의 주의력과 의식 상태 등을 살피는 검사로, 입원 초기 7일 이내에 일정 조건을 충족한 18세 이상 섬망 의심 환자가 대상이다.
국내에서도 뇌파와 AI를 활용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대병원 연구진은 지난해 수술 3만4550건의 뇌파 자료 등을 분석해 수술 후 섬망 발생 위험을 예측하는 AI 모델을 개발했다. 다만 실제 진료에 활용하려면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다만 세리벨의 장비도 뇌파만으로는 섬망을 확진하지는 못한다. 의료진은 AI 분석 결과와 환자의 증상, 진찰 결과를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 지속적인 감시가 실제 합병증이나 사망 위험을 줄이는지도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섬망은 치매와 달리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가족이 갑자기 사람이나 장소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평소보다 말수가 크게 줄고 반응이 느려진다면 즉시 의료진에게 알려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