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8일 (수)

“한국서 얻은 새 생명, 가난한 이웃에 쓰겠다”⋯1만km 날아온 美 자선사업가 [메디:핫픽]

간경화로 생명 위험한 페루 출신 미국인, 딸이 간 기증⋯서울아산병원, 17시간 고난도 수술 성공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미국인 자선사업가 마르코 씨(앞줄 오른쪽)는 서울아산병원에서 딸 킴벌리 씨(왼쪽)의 간 일부를 이식 받은 뒤 건강을 되찾았다. 부녀가 귀국을 앞두고 21일 병원 신관 옥외정원에서 간이식·간담도외과 의료진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송기원·문덕복 교수, 이승규 석좌교수. 사진=서울아산병원

“제 조국 페루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고 아직 제가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한국에서 받은 간이식으로 계속 봉사할 기회를 얻어 무척 행복합니다."

미국인 자선사업가 마르코 씨와 딸 킴벌리 씨가 귀국을 앞두고 건강한 모습으로 21일(수) 서울아산병원 신관 옥외정원에서 간이식·간담도외과 의료진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생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살아온 69세 미국인이 한국에서 새 생명을 얻었다. 간경화가 악화돼 생명이 위태로워지자 가족과 함께 1만km를 날아 한국을 찾았고, 딸의 간 일부를 이식받아 건강을 되찾았다. 그는 자신이 받은 도움을 다시 어려운 이웃에게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서울아산병원은 장기이식센터 간이식팀이 페루 출신 미국인 마르코 안토니오 키로스 씨(69)에게 딸 킴벌리 루시아 키로스 씨(30)의 간 일부를 이식하는 생체간이식 수술에 성공했다고 28일 밝혔다. 부녀는 수술 후 순조롭게 회복해 최근 퇴원했으며, 29일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마르코 씨는 미국과 페루를 오가며 부동산 건설 사업과 자선사업을 병행해 왔다. 사업으로 얻은 수익을 바탕으로 페루의 양로원 노인과 저소득층 가정, 투병 중인 어린이 등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물품과 금전적 지원을 이어왔다.

그러던 2008년 페루에서 담낭 제거 수술을 받던 중 지방간이 발견됐다. 당시에는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는 진단을 받아 별다른 치료 없이 지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배에 물이 차는 복수 증상이 나타났고 올해 2월에는 폐에도 체액이 쌓여 호흡이 어려워졌다. 검사 결과 간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간경화까지 진행된 상태였다.

의료진은 간이식 외에는 치료 방법이 없으며, 그대로 두면 신장 기능까지 악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이식받을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르코 씨에 따르면 페루에서는 65세를 넘었다는 이유로 간이식 대상에서 제외됐고, 미국에서는 뇌사자 간이식을 받으려면 최소 1년 이상 기다려야 했다.

절박한 마음으로 치료법을 찾아보던 그는 살아 있는 사람의 간 일부를 이식하는 '생체간이식'을 처음 알게 됐다. 여러 나라의 의료기관을 알아본 끝에 생체간이식 경험이 풍부한 서울아산병원을 선택했다.

5월 말 가족들과 함께 한국에 도착한 마르코 씨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이후 딸 킴벌리 씨가 간 기증 의사를 밝혔고 의료진은 건강 상태와 체격 조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이식을 결정했다.

수술은 8월 14일 오전 8시 시작됐다. 간이식·간담도외과 송기원 교수는 딸의 복부를 10cm 미만으로 절개해 간 우엽을 떼어냈다. 절개 부위를 최소화해 흉터와 합병증 위험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었다.

아버지의 수술은 이승규 석좌교수와 문덕복 교수가 맡았다. 수술 과정은 쉽지 않았다. 간경화가 심해지면서 간 주변 혈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딱딱해진 간 일부가 몸의 큰 정맥인 하대정맥을 감싸고 있었다. 간을 떼어내는 과정에서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기거나 대량 출혈이 발생할 위험이 컸다.

의료진은 혈액이 안전하게 흐를 수 있도록 우회로를 만든 뒤 손상된 간을 제거하고 딸의 간 일부를 이식했다. 오전에 시작된 수술은 17시간 넘게 이어진 끝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산타 분장을 한 자선사업가 마르코 씨가 페루의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모습. 사진=서울아산병원

딸 킴벌리 씨는 수술 8일 만에 퇴원했고 마르코 씨도 수술 3주 차에 건강을 회복해 병원을 나섰다.

문덕복 교수는 “환자의 굳어진 간이 대정맥을 완전히 감싸고 있어 수술 과정에서 대량 출혈 등 위험이 컸다”며 “혈액이 흐를 수 있는 우회로를 미리 만드는 등 철저히 준비한 덕분에 어려운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승규 석좌교수도 “최근 모로코에서도 두 형제가 간암을 앓는 아버지를 모시고 한국을 찾아 건강을 되찾았다”며 “전 세계의 중증 간질환 환자들이 마지막 희망을 안고 찾는 병원이 됐다는 데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마르코 씨는 건강을 되찾은 기쁨보다 다시 봉사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더 행복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는 “올해 초 폐에 물이 차 숨쉬기조차 힘들었을 때는 몸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처음 찾은 한국에서 기적처럼 생명을 되찾았다”고 전했다.

이어 “조국 페루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고 아직 제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며 “한국에서 얻은 새 생명으로 어려운 이웃을 더 힘껏 도우며 살아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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