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이거, 확대 안 돼요?”
“못 하게 해놔서 안 돼요. 교수님들이 최대한 멀리 잡게 설치하고 줌을 안 되게 설치해 놔가지고⋯.”
지난 23일 방송된 SBS 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닥터X) 5회에서 수술실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인하려던 의사 나대일(장승조 역)이 영상자료실 직원과 나눈 대화다.
극 중 외과의사인 나대일은 자신의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믿었던 스승이 아닌 계수정(김지원 역)이라는 사실을 CCTV 영상을 통해 알게 된다. 나대일은 과거 환자의 장기에 자신의 이니셜을 새기는 등 비윤리적 의료행위를 저질렀고 이를 알고 있는 시청자들은 흐릿한 CCTV 영상 속 계수정이 나대일을 '응징하는' 모습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동시에 드라마 속 장면은 고(故) 권대희 씨가 사망한 지 10년이 되는 26일 수술실 CCTV 의무화 제도가 실제 의료현장에서 얼마나 실효성 있게 운영되고 있는지 되짚어 보게 했다.
권 씨는 2016년 9월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 수술을 받던 중 과다출혈로 중태에 빠졌고, 같은 해 10월 26일 숨졌다. 유족이 확보한 수술실 CCTV 영상에는 집도의가 자리를 비운 사이 권 씨가 적절한 의료 조치를 받지 못한 정황이 담겼다.
이 영상은 의료진의 과실을 규명하는 핵심 증거가 됐고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논의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2023년 9월 이른바 ‘권대희법’ 시행으로 이어졌다.
법 시행 3년이 지난 지금, 수술실 CCTV는 의료현장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드라마가 던진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코메디닷컴이 설치와 촬영 실태부터 영상 열람·보관에 이르기까지 제도 운영 현황을 살펴봤다.


수술실 CCTV 설치율 사실상 100%⋯실제 촬영률은 3.8%, 절반은 “제도 몰라”
권대희법 시행 이후 수술실 CCTV 설치율은 사실상 100%에 달하게 됐지만, 실제 촬영률은 4%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수술실 CCTV 설치 의무 대상 의료기관 2529곳 중 휴업 중인 1곳을 제외한 2528곳이 설치를 완료했다.
그러나 2023년 9월 법 시행 이후 올해 6월까지 이들 의료기관에서 이뤄진 수술 509만4504건 가운데 CCTV로 촬영된 건수는 19만4014건(3.81%)에 그쳤다.
낮은 촬영률에는 환자들이 수술 장면을 촬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점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실제 CCTV 촬영 요청 19만4806건 중 99.6%가 촬영으로 이어졌다. 신청하면 대부분 촬영이 이뤄졌지만, 정작 이를 요청한 환자는 많지 않았던 셈이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올해 공개한 ‘수술실 CCTV 운영 현황 분석 및 개선 방안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9~10월 최근 2년 이내 수술받은 환자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수술실 CCTV 제도를 알고 있다는 응답은 49.5%에 그쳤다. 나머지 50.5%는 제도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촬영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로는 ‘안내받지 못해서’(33.5%)가 가장 많았고, ‘제도를 몰라서’(28.1%)가 뒤를 이었다. 반면 촬영을 경험한 환자의 84.9%는 촬영 후 안심이 됐다고 응답했다.
전진숙 의원은 “수술실 CCTV 설치율은 사실상 100%인데 실제 촬영률은 3.8%에 그친다는 것은 ‘설치’만으로 제도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라며 “환자가 요청해야만 촬영할 수 있는 제도임에도 정작 환자에게 촬영 요청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개별적으로 알릴 의무가 없는 현행 구조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복지부는 이달 초 보도설명자료에서 현행 의료법 시행규칙에 따라 의료기관이 안내문 게시 등의 방법으로 촬영 가능 사실을 알리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환자·보호자가 수술장면 촬영 가능 사실을 사전에 충분히 알 수 있도록 국회에서 논의 중인 관련 법안과 현장의견을 종합하여 필요한 제도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CCTV 설치는 의무, 촬영은 환자 요청해야⋯‘권대희법’ 뜯어보니
현행 의료법 제38조의2에 따르면 전신마취 등으로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하는 의료기관은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 다만 모든 수술이 자동으로 촬영되는 것은 아니다. 환자나 보호자가 요청하거나 의료진의 촬영 요청에 환자 측이 동의해야 촬영이 이뤄진다.
의료기관은 환자가 촬영 가능 사실을 미리 알 수 있도록 안내문을 게시하는 등의 조치를 하고 촬영을 요청하는 사람에게 요청서를 제공해야 한다.
다만 촬영 요청이 있더라도 응급수술이나 생명에 위협이 되는 질환에 대한 수술, 전공의 수련을 현저히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 법에서 정한 사유에 해당하면 촬영을 거부할 수 있다. 이때 의료기관은 수술 전에 거부 사유를 설명해야 한다.
법무법인 해울의 신현호 변호사(한국의료법학회 고문)는 “현행 의료법상 환자나 보호자가 수술실 CCTV 촬영을 요청하면 의료기관은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할 수 없다”며 “응급수술 등 법에서 정한 예외적인 경우에만 촬영을 거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찍혀도 볼 수 있나⋯CCTV 영상 열람·보관도 쟁점
영상을 열람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닥터X’ 5회에서 수술실 CCTV 영상을 확인하려는 나대일에게 동료 의사는 “수술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이 동의를 해야 볼 수 있다"며 '진료지원(PA) 간호사부터 마취, 집도의, 보조, 전부'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이러니까 환자들이 보는 건 사실 거의 불가능”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현행 의료법상 수술실 CCTV 영상을 열람하거나 제공받으려면 원칙적으로 환자와 수술에 참여한 의료인 등 정보주체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다. 다만 범죄 수사나 공소 제기·유지, 법원의 재판 업무 수행을 위해 관계 기관이 요청하면 모두의 동의 없이도 영상 제공이 가능하다.
신 변호사는 “환자에게 의료사고가 발생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의료분쟁 조정이나 중재 절차가 개시된 경우에도 환자나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 CCTV 영상을 요청할 수 있다”며 “이때도 수술에 참여한 의료진 전원의 동의가 없어도 영상 제공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촬영된 영상이 수술 과정을 얼마나 명확하게 보여주는지도 짚어볼 문제다. 현행법은 CCTV를 사각지대가 최소화되는 위치에 설치하고 고화질(HD급) 이상의 화질을 확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드라마 속 나대일의 동료 의사가 "(카메라 각도를) 잘 틀어 가지고 못 보게 싹 했다"는 말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다.
다만 이러한 기준만으로 영상에서 의료진의 구체적인 행위까지 충분히 식별할 수 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영상 보관기간도 쟁점이다. 현행법상 의료기관은 촬영 영상을 30일 이상 보관해야 한다. 영상 열람·제공이나 보관 연장 요청이 있는 경우에는 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추가로 보관해야 한다.
권 씨의 어머니인 이나금 의료정의실천연대 대표는 2023년 법 시행 당시 “수술 직후에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영상 열람 요청 등의 절차를 밟는 동안 30일이 훌쩍 흘러 의료기관이 책임을 피해 갈 수 있는 여지가 생길 것”이라며 “보관 기간을 90일 이상으로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의료계는 CCTV 촬영에 따른 의료진 위축과 방어진료 가능성을 우려해 왔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는 2023년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상시 감시 상태에 놓인 의료진에게 집중력 저하와 과도한 긴장을 유발해 수술 환경이 악화하고 의료진이 방어진료를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우려는 의료진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났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지난해 의료진 100명을 조사한 결과, 72%는 수술실 CCTV가 환자와 의료진 간 신뢰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봤다. 또 41%는 ‘수술실 CCTV보다 다른 방법으로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답했다.
권대희법이 시행된 지 3년이 흐른 지금, 환자 단체와 의료계는 여전히 엇갈린 시선을 보이고 있다. 그걸 드라마는 두 마디의 대사로 표현했다.
"우리가 무슨 범죄자냐", "환자가 된다는 건 이런 거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