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대부분 아프다 죽는다. 자다가 편안하게 죽는 게 소원이지만 가능성이 매우 낮다. 10년 이상 병으로 누워 지내다 떠나는 사람도 있다. 이를 지켜보는 가족의 심정은 어떨까? 돈도 많이 들어간다. 치료비와 간병비를 대느라 집까지 파는 사람이 있다. 환자도 가족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오랜 투병과 간병이다. 특히 아내나 남편, 배우자의 일상은 무너진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환자를 돌볼 수밖에 없다. 가부장적인 성격의 남편도 마지막에는 “여보, 미안했어” 후회의 말을 남긴다.
평생 술, 담배를 즐긴 남편은 건강 관리도 소홀했다. 몇 차례 몸에서 경고음이 울렸지만 이를 무시했다. 급기야 집에서 쓰러진 후 병원을 찾았지만 수술도 할 수 없는 말기 암이었다. 암의 기본 치료법은 수술이다. 암 3기까지는 수술이 가능하지만 4기 이상은 항암 치료밖에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효과 좋은 신약이 나와 얼마간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비싸다. 1년에 1억 이상 드는 약이 적지 않다. 건강보험에 등재되지 않은 비급여 신약이기 때문이다. 가족의 고민은 시작된다. 지금 살고 있는 집까지 팔아야 하나?
환자도, 가족도 고생하지 않는 죽음이란?
요즘 ‘좋은 죽음’(웰 다잉)이 주목받고 있다. 환자도, 가족도 오래 고생하지 않는 죽음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웰다잉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좋은 죽음으로 ‘통증 없는 죽음’을 꼽은 사람들(20.1%)이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가족이 나의 병수발을 오랫동안 하지 않는 것(18.5%), 가족이 나의 간병 과정에서 경제적 부담을 많이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17.5%) 순이었다. 환자가 아프지 않게, 가족이 힘들게 않게 세상을 떠나는 것이 좋은 죽음인 것이다.
이 보고서에서 주목할 점은 설문 조사 응답자의 82%가 조력 존엄사 합법화에 찬성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무의미한 치료의 연장은 불필요(41.2%)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 인간은 자기 죽음을 결정할 권리가 있음(27.3%), 죽음의 고통을 줄일 수 있음(19.0%)이 뒤를 이었다. 조력 존엄사는 의료진의 도움으로 환자가 스스로 약물을 투입하여 세상을 떠나는 방식이다. 한국은 엄연히 불법이다. 스위스 등 일부 국가에서 허용됐지만 심사 과정이 까다롭다. 한국리서치의 올해 9월 조사에선 조력 존엄사 도입에 대해 60세 이상은 91%, 59세 이하도 85%가 찬성했다.
조력 존엄사, 한국에서 가능할까?
말기 환자는 본인의 고통은 물론, 가족을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보고서에서 언급된 대로 가족 간병, 간병비 걱정에 잠을 못 이루기도 한다. 생명을 연장하는 신약 투여에 대해 환자가 반대하는 경우가 있다. 가족이 사는 집까지 팔아서 조금 더 살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도 가족은 “아빠의 얼굴을 더 보고 싶다”면서 비싼 신약을 권한다. 결국 암 병동에선 울음이 터져 나온다. 남편, 아빠의 얼굴에선 후회가 밀려온다. “내가 건강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조력 존엄사는 현재 우리나라 국회에서도 관련법이 발의돼 있다. 하지만 실제 시행까지는 갈 길이 너무 멀다. 생명 존중은 물론 악용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환자 스스로 생명을 끊는 방식이지만, 도입 시 그 충격이 엄청날 것이다. 유방암 재발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던 한국의 70대 여성이 스위스의 조력 존엄사 기관을 직접 방문, 세상을 떠난 사례가 있다. 잠을 못 이룰 정도의 통증은 이해하지만 이는 엄연한 불법이다.
온갖 의료장치 주렁주렁 단 나의 모습, 가족에게 보이기 싫어
조력 존엄사 논의에 앞서 2018년부터 시행 중인 연명의료결정법을 더 활성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연명의료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을 통해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다. 임종을 앞둔 환자 본인 또는 가족의 동의로 치료효과 없이 임종 기간만 늘리는 연명의료의 중단을 법제화한 것이 연명의료결정법이다. 다만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행위와 영양분, 물, 산소의 단순 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
나이 들어 무의미한 연명 치료는 받지 않겠다고 서약한 사전의향서 작성자가 10월 20일 오전 현재 359만 1689명이다. 40~60대 중년들도 미리 사전의향서를 제출하고 자녀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도 한다. 실제로 연명의료를 중단한 임종기 환자는 55만 1366명에 이른다. 최근 연명의료 중단 환자를 현재의 임종기에서 말기로 앞당기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말기 환자가 의식이 있다면 온갖 의료장치를 주렁주렁 단 모습을 자녀에게 보이기 싫을 것이다. 품위 있는 죽음과는 거리가 멀다. 2명 이상의 전문의가 판단해 임종 과정에 들어섰다면 ‘좋은 죽음’을 생각할 수도 있다. 왜 우리는 아프다 죽어야 할까? 통증 없이 편안하게 떠나면 얼마나 좋을까? 아내, 딸, 아들에게도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아빠 때문에 가족이 간병비로 고통 받으면 안 된다. 갈수록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시대에 ‘좋은 죽음’이 또 하나의 과제가 되고 있다.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모두 좋은 죽음은 어떤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