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레지던트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했다. 예전에는 종종 만나 레지던트 시절의 무용담과 각자 임상의사로 겪는 소소한 일상을 나누었으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 모두 응급의학과 의사로 일하는 터라 각자의 안전뿐만 아니라 소속한 의료기관, 그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환자와 보호자를 위해서도 최대한 거리두기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화기 너머 들리는 음성이 매우 반가웠지만 친구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전에 정말 어이없고 화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친구는 힘든 레지던트 시절에도 격앙된 감정을 드러내는 사례가 드물었지만 그때는 꽤 흥분한 듯했다. "요즘 코로나19 확진자의 격리기간이 1주일인 것 아시죠? 확진한 뒤 대략 1주일 동안 심각한 증상이 없이 호전하면 완치로 간주하고 격리해제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우리 응급실에 확진한 뒤 8일째인 환자가 왔습니다. 확진 후, 7일째까지는 심각한 증상이 없어 새로운 지침에 따르면 완치자죠. 그런데 8일째부터 고열과 호흡곤란이 생겨 우리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격리실에 수용하고 검사하니 양쪽 폐에 심한 바이러스성 폐렴이 있더군요." 바이러스는 독특한 존재다.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후손을 남기는 측면에서는 '생물'이 틀림없지만 다른 생명체와 달리 스스로 후손을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생명체의 세포에 침투해 그 기관을 빌릴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며 '생물'이 명백한 '세균'과 구분되는 특징을 지닌다. 대부분의 세균성 폐렴(Bacterial pneumonia)이 초기부터 비교적 뚜렸한 증상을 보이는 것과 달리 바이러스성 폐렴(Viral pneumonia)은 꽤 진행할 때까지 환자가 증상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가 만드는 폐렴은 산소포화도가 다소 감소해도 환자는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하다가 심각하게 악화한 뒤에야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친구가 말한 환자도 그런 사례에 속하는 듯했다. 몇 개월 전에는 그런 환자도 대부분 전담병원 혹은 생활치료센터에 입원해 의료진이 경과를 살폈을 것이어서 자각증상이 없어도 바이러스성 폐렴의 발생을 조금 일찍 파악했겠지만 재택치료가 대세를 이루고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다보니 관찰과 확인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듯했다. "조금만 악화하면 인공호흡기 치료가 필요할 상황이라 즉시 보건소에 신고했습니다만 글쎄 무슨 대답을 들었는지 아십니까?" 친구의 목소리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레지던트 시절에도 조직의 질서와 규정을 존중하던 친구라 그런 분노가 낯설게 느껴졌다. "완치자랍니다! 변경된 지침에 따르면 코로나19는 완전히 나은 것이고 다른 원인으로 새롭게 폐렴이 생겼으니 알아서 일반병동에 입원시켜 보라더군요." 친구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확진하고 8일째에 고열과 호흡곤란을 호소하여 시행한 CT에서 심각한 바이러스성 폐렴을 확인했다면 환자는 '코로나19로 인한 폐렴'에 해당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니 당연히 음압격리실에 입원해서 치료해야 한다. 일반병실에 입원해서 치료하면 끔찍한 원내감염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런데도 보건소 담당자는 '변경된 지침에 따르면 7일이 지난 후부터는 완치자'라고 했으니 얼마나 화가 났을지 헤아릴 수 있었다. 그런데 보건소 담당자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일하는 공무원이 상부에서 만든 지침을 어기고 '예외적인 사례'를 만들면 자칫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친구가 몇 시간 동안 여기저기 연락한 끝에 그 환자는 코로나19를 치료하는 음압격리실에 입원할 수 있었다고 한다. Ⅱ 일반적으로 백혈구는 1㎕에 4000-1만 개가 정상범위다. 백혈구는 병원체에 맞서 싸우는 기능을 가진 만큼 감염이 발생하면 증가한다. 또, 몇몇 감염에서는 오히려 정상범위 이하로 감소한다. 그런데 그렇다면 9999는 정상이라 걱정할 필요가 없고 1만1부터는 감염을 의심해야 할까? 역시 4001은 정상이라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3998은 백혈구감소증(Leukopenia)이라 온갖 검사를 진행해야 할까? 안타깝게도 우리가 임상의학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수치 가운데 이른바 '정상범위'를 규정하는 기준은 국가 사이에 그은 '국경선'이 아니다. 여기까지는 미국, 여기서부터는 멕시코란 식으로 그 선만 넘으면 법과 제도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기준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전형적인 사례'와 '일반적인 경우'에 기반하여 만든 기준일 뿐이다.…
각 지역의 제후가 스스로 왕을 칭하며 '천하의 통일'을 위해 격돌하던 전국시대, 진(秦)나라는 그리 대단한 세력이 아니었다. 북서쪽의 변방에 위치한 진나라는 제나라 같은 전통적인 강자와 비교해 문화와 경제, 통치제도, 모두 낙후했고 유목민의 침략에도 취약했다. 심지어 중원에선 진나라 자체를 유목민과 다름없는 존재라 여기기도 했다. 진나라가 그런 상황을 극복하고 훗날 시황제 무렵 중국을 통일한 제국으로 발돋움한 것에는 상앙(공손앙)의 개혁이 크게 공헌했다. 원래는 위나라에서 활동하던 상앙은 진나라 효공이 인재등용에 적극적이란 소문을 듣고 찾아가 진나라를 발전시킬 자신의 계획을 설명한다. 상앙이 효공에게 제시한 계획은 엄격한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는 것을 뼈대로 한 '부국강병책'으로 요순시대를 모범으로 삼는 당대의 왕도정치와는 완전히 달랐다. 상앙의 계획은 '법가사상'에 해당하며 훗날의 마키아벨리즘과 유사한 혁신적인 사상이었다. 그러나 효공의 전폭적인 지지에도 상앙의 새로운 법에는 많은 반대가 따랐다. 특히 '신분을 막론하고 공정하게 법을 집행한다'는 부분에 저항이 컸다. 그래서 상앙은 본보기를 보이려고 법을 어기고 중죄인을 숨겨준 왕세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물론 왕세자를 실제로 처형할 수는 없어 왕세자 측근의 코를 베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상앙의 새로운 법이 뿌리내렸으며 덕분에 진나라는 '변방의 낙후한 국가'에서 '통일을 주도하는 강국'으로 떠오른다. 물론 '상앙의 법'은 매우 가혹하고 엄격했으며 부국강병과 중앙집권이란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신분을 막론하고 공정하게 법을 집행한다'는 부분은 심지어 오늘날에도 아주 매력적이다. 얼마 전, 수도권 대형병원 1인실에서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다양한 기저질환을 지닌 환자는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응급실을 방문했고 1인실에 입원하여 치료를 진행하는 과정에 있었다. 그런데 발열 혹은 호흡곤란이 있으면 응급실 격리구역에서 코로나19확진검사를 시행하여 결과를 확인하고 병동으로 입원하는 통상적인 사례와 달리 환자는 코로나19확진검사의 결과를 확인하지 않고 1인실로 입원했고 사망 후, 코로나19 양성으로 밝혀졌다. 덧붙여 환자가 병원관계자의 가족으로 밝혀지면서 논란이 발생했다. 물론 호흡곤란이 심한 환자, 특히 1인실에 입원해서 치료했음에도 사망할 만큼 심각한 상태의 환자를 '격리병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돌려보내지 않고 수용하여 치료한 것은 오히려 칭찬받을 행동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그리고 법적으로도 코로나19확진검사를 확인하기 전에도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1인실에 입원시켜 치료할 수 있다. 그러나 환자가 병원관계자의 가족이 아니었더라도 그렇게 진료를 진행했을까? 응급실에 근무하다보면 '나와 친한 OO이 환자로 응급실을 방문한다'며 부탁하는 전화를 받을 때가 많다. 그런 전화를 하는 사람은 지역 유지와 정치인부터 병원 직원, 선배 의사까지 매우 다양하다. 다들 그런 전화를 하지 않으면 자신이 정당하게 대우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며 그런 전화를 하면 특별히 좋은 대우를 기대할 수 있다고 믿는다. '병원과 경찰서에는 아는 사람이 있어야한다'는 말은 씁쓸하지만 '상식 중의 상식'으로 여겨진다. 사람의 생명을 다룬다는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는 병원과 경찰서에서조차 '모든 사람을 공정하게 대한다'는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현상을 반영하는 암묵지(暗黙知)가 아닐까? 어쨌든 지금 우리 사회에서 2000년 전 상앙이 주장한 '공정'이 여전히 힘을 얻는 것은 이러한 불공정이 만연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그러나 요즘 젊은 의사들은 누가 부탁한다고 특별히 더 잘 신경 쓰지 않으며, 설령 일부가 특별히 신경 쓰면 'VIP 증후군‘으로 동티가 나기 일쑤라는 것이 필자의 경험이다. 비록 진통을 겪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불공정에서 공정으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고 있으며 의료 현장도 마찬가지다. 병원에 민원 부탁을 하는 것이 ‘어리석은 수고’로 여기는 날이 멀지 않았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