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哀·tristeza)
멕시코시티에는 화려함보다 상처로 더 오래 기억되는 아이콘이 있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다.
그녀의 삶에는 멕시코가 품고 있는 정열과 고통이 고스란히 겹쳐 있다.
6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가 불편했던 프리다는 의사를 꿈꾸며 공부하던 영리한 아이였다.
하지만 18살 때 발생한 교통사고는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훗날 프리다는 이 사고를 단순히 ‘다친 것’이 아니라 ‘부서진 것’으로 표현했다.
침대에 누워 움직임이 제한된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 그림은 훗날 자신의 고통과 사랑, 고독을 세상에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언어가 됐다.

사랑과 고통의 교차점, 푸른 집에 깊이 새겨진 흔적
1929년 8월, 스물두 살의 프리다는 자신보다 20살 넘게 나이가 많은 화가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했다.
프리다에게 디에고는 남편이면서 예술적 동반자였지만, 동시에 끊임없는 고통의 원인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1939년 이혼했다가 1년 뒤 다시 결혼했다.
디에고의 여성 편력과 두 사람의 복잡한 관계는 프리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럼에도 프리다는 디에고와의 관계를 쉽게 끊어내지 못했다.
사랑과 고통이 뒤엉킨 삶이었다.
그 흔적이 가장 짙게 남아 있는 곳이 바로 프리다의 집이자 현재의 박물관인 ‘푸른 집(Casa Azul)’이다.
프리다는 이곳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냈고, 디에고와 함께 살기도 했다.
1958년 박물관으로 문을 연 푸른 집에는 두 사람의 작품과 개인 소장품, 사진, 문서 등이 남아 있다.

민중을 위한 거대한 벽화···치유되지 못한 개인의 슬픔
푸른 집을 나와 멕시코시티 곳곳을 걷다 보면 디에고 리베라의 흔적은 오히려 프리다보다 더 많이 만난다.
디에고는 멕시코 현대 벽화 운동을 대표하는 거장 가운데 한 사람이다.
멕시코 혁명 이후 꽃핀 벽화 운동은 역사와 민중, 원주민 문화, 혁명의 정신을 공공장소의 거대한 벽에 담아냈다.
멕시코시티 국립궁전(대통령궁)의 거대한 벽화 ‘멕시코의 서사시(La Epopeya de México)’도 그의 작품이다.
하지만 디에고의 예술적 명성이 아무리 컸어도 그것이 프리다의 고통을 덜어주지는 못했다.
사랑 때문에 상처받고, 다시 그 사랑을 놓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고통을 그림으로 남겼고, 이제는 멕시코시티를 대표하는 가장 강렬하면서도 슬픈 아이콘 가운데 한 사람이 됐다.
프리다가 생의 마지막 순간 일기장에 남긴 문장은 그래서 더욱 아프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락(樂·felicidad)
멕시코의 ‘죽은 자들의 날(Día de Muertos)’ 축제는 ‘007 스펙터’, ‘코코’를 비롯해 많은 영화에 소개됐다.
이날엔 해골 가면과 화려한 장식, 형형색색의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다.
죽음을 두려움과 슬픔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삶의 한 부분으로 끌어안는 멕시코의 정서가 강렬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죽은 자들의 날은 멕시코 원주민들의 죽음에 관한 전통과 스페인 정복 이후 전해진 가톨릭의 만성절·위령의 날 문화가 오랜 시간에 걸쳐 결합하면서 형성됐다.
이날이 되면 가족들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오프렌다(ofrenda)’라는 제단을 차린다.
고인의 사진과 꽃,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 등을 올려놓고, 떠난 이들이 잠시 가족의 곁으로 돌아와 함께한다고 여긴다.
죽음으로 끊어진 관계를 기억과 음식으로 다시 이어놓는 셈이다.

죽은 이와 산 이가 나누는 소박한 한 끼, 토르티야의 지혜
죽은 이의 영혼을 가족의 식탁으로 불러들이는 날, 그 식탁에 멕시코시티 거리에서 갓 구운 구수한 냄새로 발길을 사로잡는 ‘그’ 토르티야가 오른다.
옥수수나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펴 구운 토르티야는 타코와 케사디야 등 수많은 음식의 바탕이자 멕시코인의 식문화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음식이다.
특별한 날이라고 식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 늘 먹던 음식이 가족과 함께 나누는 축제의 식탁에도 자연스럽게 오른다.
그래서일까. 토르티야는 단순한 음식 재료를 넘어 멕시코인의 식문화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토르티야 한 장에는 자연에서 얻은 식재료를 일상의 음식으로 만들어 온 오랜 지혜가 담겨 있다.
여기에 콩과 채소, 고기 등 다양한 식재료를 곁들이면 한 끼 식사가 된다.
건강한 삶은 비싼 명약에서 오지 않는다는 걸 토르티야가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자연의 식재료를 이웃, 가족과 나누는 소박한 식탁이야말로 멕시코식 웰빙의 출발점이다.

신들이 태어난 고대 문명에서 배운 ‘단절 없는 삶과 죽음’
멕시코의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이처럼 오래된 시간과 현재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겹쳐 있다.
죽음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멕시코시티에서 북동쪽으로 약 50㎞ 떨어진 테오티우아칸은 고대 메소아메리카 문명의 흔적을 간직한 곳이다.
‘신들이 태어난 곳’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거대한 태양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가 도시를 압도한다.
이곳에서는 인간을 제물로 바친 흔적도 발견됐다.
고대 메소아메리카인들에게 죽음은 삶의 끝으로만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라 신과 우주, 공동체를 연결하는 종교적 의례의 일부였다.
따라서 죽음은 단절이라기보다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로 여겨졌다.
그래서 멕시코시티에서는 죽음도 축제가 되고, 떠난 사람도 기억을 통해 다시 식탁으로 돌아온다.
죽은 자와 산 자가 잠시 다시 만났다가 헤어지는 곳.
고대 문명과 현대 예술이 한 도시 안에서 공존하고, 태양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환한 미소가 거리를 채우는 곳.
죽음을 삶에서 밀어내지 않고 축제로 바꾸고, 고통을 예술로 바꾸며, 매일의 한 끼와 축제 속에서 다시 삶을 즐기는 것.
애와 락이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도시, 멕시코시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