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릎 통증으로 고생하는 69세 여성이 병원을 찾았다. 이 환자는 진통제와 함께 평소 먹는 고지혈증(이상지질혈증) 치료제인 로수바스타틴(상품명 크레스토) 20mg을 처방받아 귀가했다. 하지만 약통을 착각해 고지혈증약을 진통제로 잘못 알고 터무니없이 많이 먹는 바람에 끝내 목숨을 잃었다.
미국 포모나 밸리 병원 의료센터 연구팀에 의하면 이 환자는 무릎이 아플 때마다 고지혈증 약을 하루에도 여러 차례 복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주일 동안 삼킨 로수바스타틴은 60여 알(약 1200mg)이나 됐다. 권장 용량을 30배 이상 초과한 엄청난 양이었다.
환자는 일주일에 걸친 이 같은 약물 오남용으로 심한 호흡곤란, 멈추지 않는 구토와 설사, 팔다리 등 온몸의 근육이 비틀리고 굳는 수족 경련 증상을 보여 지역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응급실 도착 당시 환자의 상태는 이미 절망적이었다. 수축기 혈압은 80mmHg 이하로 뚝 떨어져 저혈압으로 인한 쇼크 상태였다. 혈액 검사 결과 근육 세포가 파괴되면서 콩팥(신장)이 망가지고 온몸의 혈액이 산성화하는 상태(다기관 부전)가 진행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팀은 즉시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달고 혈압상승제와 수액, 정맥 내 스테로이드, 지속적 신대체 요법(CRRT) 등 온갖 응급 중환자 치료로 대처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도 허사였다. 입원 3일째부터 간 효소 수치가 폭발적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정상 상한치가 40 U/L인 아스파르트산 아미노전달효소(AST) 수치는 6112U/L까지 폭등했다. 간 건강에 매우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환자가 과다 복용한 스타틴 성분이 전신의 근육 세포를 파괴하는 횡문근융해증을 일으키고, 이로 인해 발생한 독성 물질과 쇼크가 간 세포를 무참히 파괴한 것으로 분석됐다. 입원 6일째, 환자의 온몸에 황달이 나타났다. 서둘러 간 이식을 받지 않으면 3개월 안에 숨질 확률이 50%가 넘을 것으로 판단됐다.
연구팀은 대학병원에서 응급 간 이식을 받을 수 있도록 추진했으나, 환자의 혈압과 의식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끝내 이송도 불가능해졌다. 의료진과 유족은 환자의 연명치료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환자는 응급실에 실려 온 지 일주일 만에 숨을 거뒀다.
이 사례 연구 결과(A Case of Statin-Induced Fulminant Hepatitis Presenting as Septic Shock and Multiorgan Failure)는 최근 국제 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실렸다.
이는 고지혈증 치료제로 흔히 쓰이는 스타틴 계열 약물의 과다 복용이 급성 간부전과 다기관 부전을 일으켜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로수바스타틴 등 스타틴 계열의 약물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처방되는 고지혈증 치료제다. 권장 용량을 지킬 경우 ‘약물 유발성 간 손상(DILI)’ 등 중증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은 치료 환자 10만 명당 1명 미만에 그친다.
하지만 짧은 기간에 많은 용량을 복용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스타틴이 대량 투여되면 독성 반응으로 골격근 세포가 파괴되는 횡문근융해증이 발생한다. 이 때 혈액에서 빠져나오는 미오글로빈 단백질이 콩팥(신장) 세뇨관을 막아 급성 신부전을 일으킨다. 약물 제거 능력을 잃은 콩팥 때문에 혈중 스타틴 농도가 다시 올라가 간세포가 괴사한다. 이런 악순환의 덫에 걸리면 생명이 위험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보면 고지혈증(이상지질혈증)으로 진료받는 환자는 약 305만명(2023년 기준)이나 된다. 고지혈증에 처방되는 지질강하제 중 스타틴 계열 약물의 처방 비율은 약 95%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국내에서 스타틴을 처방받아 복용하는 사람은 약 280만~290만 명으로 300만 명에 육박한다.
최근 고지혈증·고혈압·당뇨병 등 만성병을 앓는 고령 인구가 급증하면서 스타틴 처방률도 계속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나이 든 환자일수록 여러 가지 약을 먹는 경우가 많으며, 약의 모양이나 이름을 착각해 잘못 복용할 위험도 덩달아 높아진다. 시력이 약해지거나 인지기능이 떨어진 노인은 통증이 심할 때 진통제 대신 다른 약을 복용하는 약물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
스타틴의 부작용으로 인한 간과 근육이 손상될 수 있는 위험 요인으로는 65세 이상 고령, 여성, 콩팥 기능의 저하 등을 꼽을 수 있다. 나이 든 환자에게 약을 처방할 때는 보호자 교육, 약물 라벨의 명확한 표시, 정기적인 약물 재확인 등 조치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이 사례는 일깨워준다.
[자주 묻는 질문]
Q1. 스타틴 계열의 고지혈증 약을 매일 복용 중이어서 간 손상이 걱정되는데, 약을 끊는 게 좋을까요?
A1. 임의로 약을 중단하면 절대 안 됩니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정해진 용량(하루 1알)을 복용할 때 간부전 등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확률은 10만 명당 1명 미만에 그칩니다. 오히려 약을 멋대로 끊었을 때 발생하는 심근경색·뇌졸중 위험이 훨씬 더 큽니다. 약 복용 후 심한 근육통, 소변 색이 짙은 갈색으로 변하는 현상, 눈이나 피부가 노랗게 변하는 황달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담당 의사와 상의해야 합니다.
Q2. 부모님이 약을 자주 헷갈려 하시는데, 약물 오남용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2. 여러 약을 함께 복용하는 어르신은 약통에 날짜와 복용 시간(아침, 점심, 저녁)을 큰 글자로 적어두는 게 좋습니다. 또는 시중에서 파는 '일주일 약상자'를 활용해 하루 분량씩 미리 나눠 놓는 것도 방법입니다. 진통제나 감기약 등 필요할 때만 먹는 약은 매일 먹는 약과 완전히 다른 장소에 보관해 혼동을 막는 게 좋습니다.
Q3. 만약 고지혈증 약을 실수로 여러 알 먹었다면 즉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나요?
A3. 약을 실수로 과다 복용했다면 증상이 없더라도 즉시 복용한 약의 종류와 수량을 확인하고 가까운 병원 응급실을 찾아야 합니다. 스타틴 과다 복용은 초기에는 증상이 없다가 2~3일 뒤 콩팥과 간이 손상되면서 상태가 급격히 나빠질 수 있습니다. 서둘러 위를 세척하거나 체내 독성 물질의 배출을 위해 응급 처치를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