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여름에는 사막 한가운데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와 바람. 극한의 공간인 사막은 황량하다. 낮에는 불타는 태양, 밤에는 살을 에는 추위로 인간의 생존 본능을 시험하는 곳. 사막은 인간에게 결핍과 고독의 장소이다.
이름 없던 결핍에, 이름을 붙이다
‘의료 사막’이라는 개념이 있다. ‘의료 사막’이라 불리는 곳은 병원과 약국, 의사가 사라져 버린 지역을 의미한다. 분만할 수 있는 산부인과가 없어 임산부가 수십 킬로미터를 달려야 하고, 응급환자가 시간을 놓쳐버리는 실존 공간이 바로 ‘의료 사막’이다. 농어촌과 도서 지역에서, 혹은 대도시의 빈곤층 밀집 지역에서 의료 접근성이 극도로 떨어지는 공간에서는 실제로 생명이 위협받는다.
‘식품 사막’이라는 표현도 있다. 건강한 식품에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지역, 대형마트나 신선 식품점 대신 패스트푸드점과 편의점만 즐비한 공간을 ‘식품 사막’이라 부른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고(高)칼로리지만 영양은 부족한 가공식품에 의존하고, 그 결과 비만과 당뇨, 고혈압, 심혈관질환이 만연한다.

최근 종양학에서는 ‘면역 사막’(Immune Desert)이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증식하는 종양 덩어리 내로 면역세포가 침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최신 면역 치료제를 투여해도 효과가 없다. 면역세포가 종양 내로 들어오지 못하는 ‘사막’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막은 단순히 외부 풍경이 아니라, 몸속 세포의 미시적 세계에도 존재한다.
물이 마르는 몸의 건조증후군은 몸의 사막화 증상이다. 눈물이 마르는 질병을 ‘안구건조증’이라 부른다. 눈물 부족은 일상생활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린다.
구강의 침샘이 마르면 ‘구강건조증’이라 부른다. 음식을 삼키기 어렵고, 치아와 잇몸을 망가뜨린다. 피부가 마르면 ‘피부건조증’이라 부른다. 가려움과 염증으로 이어진다. 생명은 촉촉해야 유지된다. 물이 부족하면 생명은 어느 곳이든 위태롭다.
낙타처럼 걷고, 오아시스처럼 버티다
극한의 자연조건인 사막은 생명이 자신의 힘을 증명하는 무대도 된다. 인간은 여러 방식으로 사막에 적응하거나 사막을 극복하였다. 이미 고대에 오아시스 도시를 만들어 그곳에서 생존하였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무역로도 개척하였다. 낙타 대상들은 오아시스를 거쳐 이동하면서 소금, 노예, 후추를 실어 날랐다. 유목민들은 정착 대신 이동하면서 사막에서 살아남기도 하였다.
사막은 생명과 투쟁을 드러내는 강력한 은유로도 작동한다. 시인 유치환은 《생명의 서》에서 사막을 등장시켰다. 일상이 흔들릴 때 “열사(熱沙)의 끝”에서 자신의 운명을 대면하기 위하여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가겠다는 의지를 시로 남겼다.
요즘 보면,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고비사막에 선 사람 이야기가 들린다. 타클라카간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한 장애인 이야기도 들린다. 이들은 《생명의 서》의 실천자들이다.
의료에서 사용되는 사막 개념에서도 사막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사막은 결핍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결핍을 극복하기 위한 열망을 자극한다.
몸과 사회가 목마를 때...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의료 사막’이라는 개념은 인간의 생명을 지키는 힘이 닿지 못한 영역이 있다는 것을 고발한다. 제도의 결핍, 인력의 불균형, 경제적 불평등이 겹쳐 생긴 사막이다. 사막을 가는 낙타처럼 묵묵히 고통을 견디는 사람들이 있다고 알리는 말이다. 이 단어에는 개선 요구와 의지가 담겨있다.
‘식품 사막’은 몸이 서서히 병드는 상황은 개인의 선택이 아닌 구조적 문제임을 고발하는 말이다. 생명이 피어나야 할 식탁 위에서 결핍과 황량만이 자리 잡은 상태를 알린다. 더 나아가 단순히 개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차원을 넘어 사회의 건강을 위협한다. ‘식품 사막’에 대한 연구와 정책, 신선식품 접근성 향상 운동은 모두 이 사막을 넘어가려는 집단의 노력이다.
‘면역 사막’ 개념이 생겨난 후, 종양 전문가들은 사막형 종양을 치료하는 전략을 세운다. ‘면역 사막’형 종양은 대개 난치성이다. 종양 내부의 사막은 생명 주체들 간의 소통이 차단된 공간이고, 그 속에서 생명은 고립된다. 면역항암제에 반응하지 않는 종양에 면역세포를 유도하려는 새로운 치료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눈이 메마르고, 입이 바싹 마르고, 피부가 건조해지는 질환에서 환자들은 몸이 마치 사막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사막에는 물이 들어가야 생명이 산다. 사람들은 인공눈물을 개발하여 사막이 된 눈에 물을 공급하고, 피부 연고를 개발하여 사막이 된 피부에 수분을 공급한다. 구강건조증에는 인공 타액을 스프레이, 젤 등으로 공급하거나 씹는 자극으로 침 분비를 촉진한다. 모두 사막에 물을 대려는 생존 조치이다.
사막을 건너온 차, 사막을 건너는 사람
차의 세계화도 사막을 극복한 사람들의 의지의 결실이다. 차는 17세기경부터 세계로 퍼졌다. 습윤한 산지에서 태어난 차가 세계로 퍼져나가는 길을 사막이 막아섰다.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에서 러시아로 차를 실어 나르던 러시안 카라반의 경로에는 타클라마칸 사막이 버텼다. 카라반은 보통은 사막을 정면으로 가로지르지 않았다. 북·남 변두리를 따라 타클라마칸 사막을 우회했다.
그러나 어떤 카라반은 케리야 강 하류를 따라 북쪽으로 오르는 “사막 내부 경로”를 택했다. 이 루트의 곳곳에는 유적이 줄지어 남아있어 사막과 맞닥뜨렸던 용감한 카라반의 흔적을 보여준다. 내부 경로는 제한적으로 사용된 루트이지만, 러시안 카라반이 사막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차를 운반하였다고 상상하면 가슴 뭉클한, 웅장한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사하라사막을 가로지르는 ‘트랜스 사하라 무역’(Trans-Saharan Trade)은 고대부터 19세기까지 이어졌다. 서아프리카의 금·노예·소금과 북아프리카·지중해의 비단·향료·은·유리를 이어주던 낙타 대상이 사하라사막 중앙부를 통과한 기록이 다수 존재한다.
이 루트에는 오아시스가 드물어 소금과 물을 낙타에 싣고 사막을 직접 횡단하였다. 지중해를 통하여 북부 아프리카에 차가 전해진 이후, 차는 곧 사하라를 넘나드는 유목민 상인들에 의하여 말리, 니제르, 차드 등으로 퍼졌다.
현대에는 사막을 뚫고 달리는 철제 카라반이 차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모리타니아 사막 열차는 북부 내륙 자우레 근처의 철광석 광산에서 아프리카 대서양 연안 항구 누아디부까지 약 700km 이상을 달리는 철광석 운송 열차이다. 열차 길이만 2~3km에 달한다.
사막 열차는 사막을 횡단하는 유일한 대중 교통망 역할도 한다. 산업적 기능을 넘어 사막을 횡단하는 주민들의 생존선이다. 사막 열차는 “현대의 철제 카라반”으로 불린다. 철광석 위에 음식과 물, 가축까지 함께 실어 나른다.
사막 열차는 사하라사막 내 의료 사각지대 사람들의 생명줄 역할도 한다. 열차 안에서는 맹장염 환자가 응급 간호를 받기도 하고 아이도 태어난다. 사막 열차는 의료 수송로도 되고 이동 약국과 진료실도 된다. 현대 문명의 힘은 의료 사막을 달리는 철제 카라반을 인간에게 선물하여 사막을 견디고 건강을 유지하게 해준다.
이 열차의 여정에서 가장 특별한 장면은, 열차 위나 모래바람 속 임시 정거장에서 사람들이 작은 화덕을 피워 차를 끓이는 모습이다. 그들은 녹차에 설탕을 듬뿍 넣고 사하라식 민트티 ‘아타이’를 끓인다.
그리고 예외 없이 세 번 우려내는 의례를 반복한다. 첫 잔은 쓰고, 두 번째 잔은 부드럽고, 세 번째 잔은 달다. 최근 많은 세계인이 이 ‘석 잔의 의례’를 체험하려 이 열차에 탑승한다.
사막 한복판, 거대한 기차 위에서 나누는 한 잔의 차는 단순히 갈증을 해소하는 음료가 아니다. 그들은 극한의 사막에서 정신적 유대를 만들고 황폐하고 메마른 사막의 삶을 촉촉하게 적시기 위해 차를 마신다. 사막에서 차는 극한 고독과 절망을 이겨내는 생명의 물이다.
사막은 극한의 운명을 대면하는 장소다. 인간은 의료 사막, 식품 사막, 몸의 사막에 필요한 물을 대어 자신의 생명을 지켜 내고 있다. 그리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기차 안에서는 사막을 넘어 멀리 운반됐을 차를 마시면서 자신의 마음을 지켜 내고 있다.
유영현 티클리닉 디렉터(오디오칼럼 1+1이야기 https://www.youtube.com/@yhyoo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