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9월 29일 (화)

불 꺼진 지 1년 반인데 몸속 중금속 최대 40배⋯한국도 ‘남의 일 아냐’

마우이 주민 1400명 소변서 24종 금속 분석…안티몬 美 일반인 약 40배 금속 복합노출 높을수록 폐기능 이상과 연관⋯대형산불 잦은 한국도 주목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산불이 발생하고 시간이 지난 뒤에도 해당 지역 주민들의 체내에서 높은 수준의 금속이 검출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은 기사 본문과의 무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산불은 꺼졌지만 주민들의 몸에는 흔적이 남아 있었다. 2023년 미국 하와이 마우이 산불을 겪은 주민들을 조사해 보니 화재 발생 후 최대 1년 6개월이 지나서도 안티몬과 망간, 바륨, 비소 등 여러 금속이 체내에서 미국 일반인보다 높은 수준으로 검출됐다. 체내 금속 노출이 많을수록 폐활량 저하 등 폐기능 이상과 관련되는 경향도 나타났다.

이는 산불의 건강 위험이 화재 당시 발생하는 연기와 미세먼지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주거지역까지 불길이 번지면 주택과 자동차, 전자제품 등이 타면서 나온 유해물질이 재와 먼지, 토양 등에 남아 장기간 노출로 이어질 수 있다.

28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하와이대 연구진은 2023년 8월 마우이 산불을 겪은 성인 1400명의 체내 금속 농도와 폐기능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PNAS)》에 발표됐다.

연구진은 산불 발생 6~18개월 뒤 주민들의 소변에서 24종의 금속 농도를 측정하고 호흡검사로 폐기능을 평가했다.

안티몬 40배·망간 3.8배⋯금속 복합노출과 폐기능 연관

분석 결과 일부 금속 농도는 미국 일반 인구의 생체모니터링 자료보다 상당히 높았다. 안티몬은 약 40배로 차이가 가장 컸고 망간은 3.8배, 바륨은 2.3배, 비소는 2.2배였다. 비소와 카드뮴, 구리, 안티몬 등은 폐기능 이상과도 관련성을 보였다.

연구진은 특정 금속 하나보다 여러 금속에 동시에 노출되는 ‘복합노출’에 주목했다. 세 가지 통계분석 방법을 적용한 결과, 금속 복합노출 수준이 높을수록 폐활량이 줄거나 공기를 내보내는 능력이 떨어지는 등 폐기능 이상과 관련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숲만 탄 게 아니다⋯집·자동차·전자제품까지 불타

연구진은 마우이 산불이 나무와 풀만 탄 산림 화재가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라하이나 등 주거지역까지 불길이 번진 ‘야생지-도시 경계(Wildland-Urban Interface·WUI) 화재’였다.

주택과 자동차, 전자제품, 처리 목재, 전기설비 등이 타면 식생만 연소할 때보다 다양한 금속과 화학물질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하와이 보건당국이 산불 뒤 라하이나와 쿨라의 재를 분석한 결과 비소와 납, 안티몬, 코발트, 구리 등이 건강보호를 위한 선별기준을 넘었다.

이들 물질은 불이 꺼진 뒤에도 재와 먼지, 토양, 건물 잔해 등에 남았다가 복구·철거 과정에서 다시 공기 중으로 날릴 수 있다.

연구 공동책임자인 알리카 마우나케아 하와이대 교수는 AP에 "라하이나 주민들이 노출된 것은 단순한 산불 연기가 아니라 복잡한 화학물질의 혼합물"이라고 설명했다.

지역별 차이도 나타났다. 라하이나 주민에게서는 비소와 카드뮴 농도가 상대적으로 높았고, 와일루쿠·카훌루이에서는 구리와 철, 몰리브덴 농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폐기능 이상 양상도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산불 때문에 중금속 40배”로 단정하면 안 돼

다만 이번 결과를 ‘산불 때문에 주민 몸속 중금속이 최대 40배 증가했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산불 이전 주민들의 체내 금속 농도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산불 이후 측정한 수치를 미국 일반 인구의 생체모니터링 자료와 비교했다. 따라서 산불 전후 주민 개개인의 금속 농도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다. 하와이 특유의 지질 환경과 식습관, 과거 농업·산업 활동 등 다른 노출원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번 연구가 확인한 것은 산불 이후 높은 체내 금속 농도와 폐기능 이상 사이의 ‘연관성’이다. 산불이 금속 농도를 높이고, 이로 인해 폐기능이 떨어졌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한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약 1000명의 하와이 주민을 앞으로 5년간 추적할 예정이다. 환경 측정과 생체 시료, 심폐기능 검사를 함께 진행해 기존 환경오염과 산불 이후 발생한 노출을 구분한다는 계획이다.

하와이 보건당국이 2024년 1월부터 2025년 2월까지 라하이나 일대에서 1000건 이상의 대기 시료를 조사한 결과, 두 차례를 제외하면 금속 농도는 건강보호 기준보다 매우 낮았다. 현재 공기 중 금속 농도와 체내 노출 지표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봄철 산불 집중되는 한국도 눈여겨 봐야 할 일

마우이 연구는 봄철마다 대형 산불을 겪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국내 산불은 건조하고 강풍이 부는 봄철에 집중된다. 특히 산불이 주택과 자동차, 농업·산업시설 등이 있는 생활권까지 번지면 마우이처럼 식생 연소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환경오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2025년에는 경북 의성에서 시작한 산불이 안동과 청송, 영양, 영덕 등으로 확산하며 대규모 인명·재산 피해를 냈다. 국내에서도 산불 피해 주민을 대상으로 정신건강과 호흡기·심혈관계 등 장·단기 건강영향을 추적하려는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마우이 연구는 산불 이후 주민 건강관리를 연기와 미세먼지의 단기 영향에만 맞출 것이 아니라, 불에 탄 주택과 자동차·전자제품의 잔해와 재, 토양에 남은 금속 등 유해물질의 장기 노출 가능성까지 살펴봐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케코아 타파라 미국 UCLA 교수는 AP에 "산불과 같은 기후재난의 건강 영향은 당시 부상이나 사망에 그치지 않고 주민 이주와 의료체계·사회관계 단절, 환경 유해물질 노출 등으로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댓글 0
댓글 쓰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