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18일 (토)

“손녀까지 생식기 기형과 불임이”...유산 막으려 임신부에 처방된 ‘이 호르몬제’ 탓?

1930~70년대 ‘유산 방지제’로 사용된 합성에스트로겐, 수십 년간 은폐된 제약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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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임신부에게 처방된 합성 에스트로겐제 디에틸스틸베스트롤(Diethylstilbestrol, DES)의 피해가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다는 보고가 나왔다. 배경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하단=diethylstilbestrol.co.uk

1930~70년대까지 영국,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임신부에게 처방된 합성 에스트로겐제 디에틸스틸베스트롤(Diethylstilbestrol, 이하 DES)의 피해가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다는 보고가 나왔다.

DES는 1938년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찰스 도드 경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합성 에스트로겐이다. 1940년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유산·조산 예방, 임신 유지용 호르몬제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처방됐다. 특히 1940~70년대에는 ‘유산 없이 건강하게 임신을 유지하게 해주는 기적의 약’이라는 홍보 문구 아래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임신부가 DES를 복용했다. 당시 의료계는 임신부의 유산이 호르몬 결핍 때문이라는 가설을 믿었고, DES가 그 결핍을 보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1971년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이 DES에 노출된 딸들에게서 희귀 자궁암(명세포선암) 이 다수 발생한 사실을 보고하면서 사용이 금지됐다. 유산과 조산, 임신 합병증을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투여된 이 약은 이후 심각한 부작용이 드러나며 ‘숨겨진 탈리도마이드’라 불릴 만큼 악명을 얻었다. 현재 DES는 발암성과 세대 간 생식기 기형 위험이 입증된 약물로, 의학사에서 가장 심각한 제약 재앙 중 하나로 기록된다.

지금 다시 문제가 된 것은 그 부작용이 손주 세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피해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보상을 요구하면서다.

영국 일간 더선 등 보도에 따르면 현지 피해자 단체 ‘DES Justice UK’는 정부의 은폐와 무대응을 비판하며 공식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단체는 DES를 복용한 임신부 약 30만 명 중 수천 명이 자녀와 손주 세대에 이르기까지 불임, 생식기 기형, 암 등 중대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피해자 미셸(63)은 “의사들은 우리가 이 약의 피해를 입을 가능성조차 말하지 않았다. 나는 자궁외임신을 두 번 겪고, 수차례 체외수정 끝에 어렵게 아이를 얻었다”며 “정부와 의료기관은 피해 사실을 감춘 채 우리를 인간 실험 대상으로 취급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어머니는 DES를 처방받은 후 희귀 자궁암 위험에 평생 노출됐으며, 그의 딸과 조카들 역시 자궁경부 이상세포, 유방암 등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DES 사용으로 자궁 및 질의 희귀암 명세포선암과 생식기 기형, 불임 등과의 연관성이 밝혀지면서 대부분 국가에서 퇴출됐지만, 영국에서는 피해 실태 조사나 국가 차원의 보상 체계가 여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 골자다.

법률회사 브라우디 잭슨 캔터의 클레어 플레처 변호사는 “DES 사건은 수십 년 동안 조용히 덮여온 ‘침묵의 스캔들’이며, 영국 역사상 가장 심각한 제약 실패 중 하나다. 정부는 즉각 공적 조사를 실시하고 피해자 보상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피해자들은 “우리는 여전히 DES 약의 그림자 속에 살고 있다”며, 정부의 책임 있는 대응과 투명한 조사, 그리고 세대 간 건강관리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DES의 영향이 단순히 1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후손의 생식기 발달 이상이나 암 발병 위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고 있으며, 실제로 일부 연구에서는 DES에 노출된 세대의 DNA 메틸화 이상이 관찰돼, 세포 수준의 변이가 세대를 거쳐 전달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현재 국내에서도 DES는 발암·생식독성 문제로 의료용 사용 금지, 식품·축산물 잔류 규제 대상이지만, 이전까지 얼마나 처방됐는지 그 규모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국내에서 보고된 바로는 1984년 ⟪대한방사선의학회지(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Radiology)⟫ 에 DES 노출 후 자궁경부 명세포선암이 발생한 27세 여성의 사례가 기록됐다. 연구진은 “DES 또는 기타 비스테로이드성 에스트로겐 물질에 자궁 내 노출된 여성에서 명세포형 자궁경부·질 선암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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