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글로벌 백신 개발과 팬데믹 대응의 핵심 거점으로 도약하기 위한 행보에 나섰다. 감염병혁신연합(CEPI)이 추진하는 AI 기반 백신 개발 플랫폼에 세계 최초로 국가 단위 파트너로 참여하고, 2034년까지 자체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했다. 여기에 빌 게이츠가 설립한 게이츠재단도 다음 달 한국 사무소를 열기로 하면서 국제 보건협력이 한층 확대될 전망이다.
CEPI와 질병관리청, 세계경제포럼(WEF), 게이츠재단, 국제백신연구소(IVI) 등은 21일 서울 코엑스마곡에서 열린 '2026 세계바이오서밋' 부대행사에서 AI 기반 백신 개발과 글로벌 팬데믹 대응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공개된 핵심 사업은 CEPI의 '팬데믹 대비 엔진(PPX)'과 한국형 플랫폼인 'K-AI PPX'다.
PPX는 병원체 감시부터 백신 설계, 임상시험, 규제, 제조에 이르는 방대한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신종 감염병 발생 시 백신 개발 속도를 높이는 플랫폼이다. 새로운 병원체가 출현하면 수일 또는 수시간 안에 백신 개발과 방역 대응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구축되고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신종 감염병 발생 이후 백신 개발 기간을 100일 이내로 단축하는 것이다. 기존에는 새로운 백신을 개발하는 데 수년이 걸리기도 했지만, AI를 활용해 초기 후보물질 발굴과 설계에 필요한 시간을 크게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한국, CEPI 첫 국가 파트너⋯2034년까지 AI 백신 플랫폼 구축
한국은 CEPI의 PPX 사업에 참여하는 첫 국가 단위 파트너다. 국내 백신 연구개발과 AI 기술을 결합한 K-AI PPX를 구축하고, 이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팬데믹 대응 허브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질병관리청이 공개한 로드맵에 따르면 K-AI PPX는 2027년부터 2034년까지 3단계에 걸쳐 구축된다.
우선 2027~2029년에는 AI 기반 백신 설계와 비임상 검증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마련한다. 2030~2032년에는 병원체 감시와 임상시험 기능까지 확대하고, 2033~2034년에는 규제 대응과 글로벌 데이터 연계 기능을 통합해 구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평상시에도 AI를 활용해 감염병 위험을 감시하고, 새로운 병원체가 출현하면 백신 설계부터 실험 검증까지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다는 구상이다.
K-AI PPX에서 생산된 데이터와 연구 성과는 CEPI의 글로벌 플랫폼과 연계된다. 다만 국가 간 데이터 공유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보안 문제와 데이터 주권을 고려해 안전한 협력 체계를 마련하기로 했다.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CEPI와의 협력을 통해 한국의 우수한 AI 역량과 노하우를 글로벌 파트너와 공유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PPX 협력 거점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인 홀튼 CEPI 이사회 의장도 한국이 PPX의 첫 국가 파트너로 참여한 것을 환영하며, 한국의 백신 연구개발과 제조 역량이 AI 기반 백신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CEPI는 이미 실제 감염병 대응에도 AI를 활용하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의 분디부교 에볼라바이러스 대응 과정에서 앤트로픽의 AI 모델 '클로드(Claude)'를 활용해 감염병 상황 보고서 작성 시간을 줄이고, 백신 후보물질 연구비 지원 제안을 평가하는 데에도 AI를 사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날 행사에서는 AI 기반 백신 개발 플랫폼을 장기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재원 확보와 국제협력 방안도 논의됐다. 외교부는 지난 20일 CEPI에 1500만 달러(약 210억원·환율에 따라 변동)를 추가 지원하기로 약정했다.
게이츠재단도 한국 진출⋯다음 달 첫 사무소 개설

글로벌 보건 분야의 주요 민간 재단인 게이츠재단도 한국과의 협력을 확대한다. 게이츠재단은 다음 달 중순 한국에 첫 사무소를 개설할 예정이다.
초대 한국 사무소장에는 이훈상 국제보건기술연구기금(라이트재단) 전략기획이사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은 세계바이오서밋에 보낸 영상 축사에서 한국의 제약·바이오와 AI 연구개발 역량을 높이 평가하며 "한국에 첫 사무소를 열어 한국의 리더십을 지원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게이츠재단은 그동안 한국 정부 및 기업들과 감염병 대응과 백신 연구개발 분야에서 협력해 왔다.
2018년에는 보건복지부, SK바이오사이언스 등 국내 기업 5곳과 함께 라이트재단 설립을 위한 기금을 출연했다. 라이트재단은 중저소득 국가의 감염병 대응과 보건 형평성 향상을 위한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민관협력 비영리단체다.
2022년에는 한국 정부와 보건 분야 협력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이번 한국 사무소 개설은 기존 협력을 더욱 구체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의 백신 개발·생산 역량과 게이츠재단의 글로벌 보건 네트워크가 결합하면 감염병 대응 기술 개발과 중저소득 국가에 대한 백신 접근성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