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가스중독과 잠수병의 공통점은?

해운대 바른길병원 '잠수의학 개척자' 김희덕 박사 인터뷰

지난 주말 오후 9시가 넘어 부산119상황본부로부터 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세미코마(가사상태)에 빠진 청년이 있는데, 응급치료가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앰뷸런스 한 대가 해운대 바른길병원에 도착했다. 여기엔 우리나라 ‘잠수의학'(underwater medicine)의 개척자, 김희덕 박사가 있다.

김희덕 박사가 21일, 긴박했던 지난주 응급환자 치료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코메디닷컴 윤성철 기자]
그가 외과 전문의(1992년)를 따고 해군 군의관으로 포항, 제주, 서울지구병원을 거쳐 경남 진해의 해군 해양의료원으로 옮겨 4~5년 지났을 때였다. 해군에 잠수함이 도입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잠수함을 운용하려면 승조원을 구조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잠수함이 가라앉거나 사고가 나면 승조원이 집단 탈출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많이 잃습니다. 잠수병 때문이죠. 더구나 잠수함은 얕은 바다보다는 깊은 바다에서 운항하는데, 그런 건 SSU나 UDT가 구조할 수 없는 곳이에요.”

수심 100m가 넘는 ‘포화잠수’에서 구조 작전을 펼칠 수 있는 잠수의학 전문의사가 급히 필요했다. 우리나라엔 없었다. 얕은 바다 스킨스쿠버나 산소통 매고 수심 30m 내외에서 일어나는 잠수병 치료 의사는 있었지만.

당시 서영길 해군 작전사령관이 그에게 밀명을 내렸다. 심해 잠수의학의 본산, 영국 에버딘대에가서 빨리 배워오라는 것. 일본 해상자위대에서 잠수의학 연수를 했던 경력이 있었다.

‘해양의학적성훈련원장’을 맡고 있던 김 박사는 상관 명령에 두말도 하지 않고 영국으로 바로 떠났다. 공부는 쉽지 않았다. 여태 해오던 것과는 완전히 딴 세상. 깊은 바다 세계는 우주를 알아가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한번 연수를 하고 잠깐 국내로 돌아왔던 2000년, 동해로 잠입하던 북한 반(半)잠수정 하나를 우리 해군이 침몰시켰어요. 수심 150m에 가라앉아 있었죠. 이때 인양 작전의 시작과 끝을 모두 지켜봤어요. 우리 잠수사를 태운 고압산소 캡슐를 두세 개 이어 심해로 내려가 인양하는, 고난도 작업이었죠. 세월호 인양 때 나왔던 ‘다이빙벨’이 이 때 처음 등장했고요.”

그가 에버딘대로 다시 연수를 갔을 때 이 인양과정을 토대로 특별한 논문을 써냈다. 관련 학계도 주목했다. 현실에선 드문 실증 사례가 나왔기 때문이다. 지도교수(Dr. Watts)로부터 심해 포화잠수까지를 포함한 전문자격(Post-graduate Certificate)을 받았다. 국내 최초였다.

잠수의학에 고압산소는 치료 핵심의 하나다

“잠수의학이 ‘보일의 법칙'(Boyle’s Law), 즉 압력과 부피의 반비례 법칙을 이용한 치료 영역이라면, 고압산소의학은 100% 고압산소를 적절히 주입, 몸 속 산소 포화량을 높여 여러 질병을 치료하는 영역입니다. 가장 많이 쓰이는 분야가 바로 잠수병과 일산화탄소 중독이죠.”

중증환자의 응급상황에서 고압산소 투여량을 제대로 조절하기는 쉽지 않다. 또 하나의 특별한 전문영역인 셈이다.

그 환자는 김 박사의 응급조치로 결국 목숨을 건졌다. 입원한 지 나흘만에 건강하게 퇴원했다. 바른길병원은 정형외과 전문 병원으로서 작은 규모지만 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상호 병원장 등 의료진은 “젊은 생명 하나가 살아났다. 의사로서 정말 가슴 벅찬 순간”이라고 감격했다.

이달 초에도 서울에서 부산으로 유학온 남학생 한 명이 비슷한 케이스로 병원에 실려왔다. 당시 환자 상태가 심해 자칫 전신마비에다 회복 불능의 장기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었다.

김 박사가 지금까지 이런 응급환자의 목숨을 되살린 사례만 300건이 넘는다. 고압산소치료를 한다는 곳은 최근 많아졌지만 중증환자를 응급으로 치료할 수 있는 곳은  드물다. 지금도 성균관대 의대나 해군, 해양경찰 등에서 잠수의학을 강의한다. 국방부 자문도 한다.

다양한 만성질환 환자들이 고압산소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부산 해운대 바른길병원]
“산소치료가 다른 질병에도 활용 가능하다는 논문들이 속속 나오고 있어요. 혐기성 세균감염부터 심한 화상, 구획증후군, 당뇨발 등 난치성 상처에도 효과가 크고요. 최근엔 괴사성 근막염, 난치성 골수염, 방사선치료로 인한 후유증, 피부이식 후 회복까지….”

잠수의학의 핵심 근거지라 할 수 있는 미국 UHMS학회, 유럽 EUBS학회, 일본 고압치료의학회 등에서 이런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한고압의학회가 연구하고 있다.

“최근 뇌영역 치료(뇌농양, 뇌졸중, 자폐증 등)에도 특별한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저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돌발성 난청이나 메니에르병, 망막중심동맥폐쇄증에 대한 효능은 이미 여러 증거가 쌓여있고요.”

이스라엘 등 중동 의학자들이 ‘항노화'(抗老化, anti-aging) 치료법의 하나로 고압산소 연구 들어갔다는 소식도 최근 나왔다. 바다밑 심해를 다루던 잠수의학이 어느새 고압산소치료를 통해 종횡무진, 다양한 새 반경으로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윤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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