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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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주 기자

코메디닷컴
명절 끝물 앙금 털어버릴 용서 명언 7가지
제 1539호 (2022-09-12일자) 명절 끝물 앙금 털어버릴 용서 명언 7가지 한가위 명절은 잘 보내셨나요? 오랜만에 반갑게 만나서 아쉽게 헤어진 가족이 많겠지만, 인터넷을 둘러보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가슴에 상처를 입고 명절이 사라지길 바라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명절에 가족이나 지인의 앙금은 대부분 작은 말이 불씨가 되지요? 상대방 기분을 고려하지 않고, ‘지적질’을 충고로 착각하기 때문에 언쟁으로 옮아가지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나 칼 융의 분석심리학 등에서는 두 사람이 마음에서 공유하는 것이 많을수록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자신의 부정적인 부분을 닮은 사람에게 던져 마음의 짐을 벗어나려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지요. 가족간 뿐 아니지요. 요즘 인터넷을 보면 누군가 쉽게 비난하는 경향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데, 가만히 보세요. 극단적 두 무리는 고함치는 방향은 다르지만 방식은 참 닮았지요? 지역감정을 일으키는 사람도 ‘혹시 다른 곳에서 태어났으면’ 정반대의 얘기를 할 가능성이 클 겁니다. 이밖에도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일수록 남을 쉽게 비난합니다. 남의 작은 흠도 용서하지 못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라는, 푼푼한 명절 한가위의 끝자락에 마음을 좀 내려놓으면 어떨까요? 노자는 “아는 사람은 말이 없고, 떠드는 사람은 모른다(知者弗言, 言者弗知)”고 했는데, 우리 스스로에 대해 겸허하면 남을 함부로 비난하지 못할 겁니다. 남을 비난하려는 그 마음을 비우고, 그 자리에 관용과 용서의 마음을 담는 것은 어떨까요? 아래 명언들을 가슴에 새기며! “용서는 용서하는 사람에게 어마어마한 혜택을 주기 때문에 이기적에 가까운 행동이다.” -라와나 블랙웰(미국의 소설가) “관용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애의 소유이다. 우리는 모두 약함과 과오로 만들어져 있다. 우리는 어리석음을 서로 용서한다. 이것이 자연의 제1법칙이다.” -볼테르 “용서는 어떤 관계에서도 사랑의 최고 형태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며, 용서하는 사람은 더욱 더 강한 사람이다.” -욜란다 하디드(미국의 모델 출신 방송인) “용서는 과거를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나 미래를 성대하게 만든다.” -폴 보스(미국의 영화 프로듀서)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도 용서받는다.” -누가복음 “더 많이 알수록 더 많이 용서한다.” -캐서린 대제 “약한 사람은 절대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다. 용서는 강한 사람의 특성이다.” -마하트마 간디
교사들이 일타강사보다 더 잘 가르치면?
제 1532호 (2022-07-25일자) 교사들이 일타강사보다 더 잘 가르치면?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 나오는 동훈고의 촬영지는 전북 전주시 효자동 상산고죠? 1937년 오늘(7월 25일)은 상산고 설립자이자 《수학의 정석》 저자 홍성대 박사가 전북 정읍시 태인면에서 태어난 날입니다. 홍 박사는 가난 탓에 친구 집을 전전하며 공부해 서울대 수학과에 합격했습니다. 그는 1학년을 마치고 군에 다녀온 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과외를 했습니다. 기존 참고서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도서관과 서점을 뒤지거나 온갖 사람들에게 수소문해 미국, 일본, 프랑스 등지의 자료를 모았습니다. 홍성대라는 이름은 알음알음 소문이 나서 요즘 시쳇말로 일타강사가 됐고 대학 3학년 때 그를 아끼던 교수의 소개로 종로학원 강사로 나섰습니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수학 참고서를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고 3년 노력 끝에 서른살이 되던 1966년 8월 31일 《수학의 정석》을 낳았습니다. 하루 10시간 강의하고 새벽 3, 4시까지 자료와 원고를 다듬는 산고(産苦)의 열매였습니다. 지금까지 5000만 권 가까이 팔려 ‘교과서’ 역할을 했습니다. 홍 박사는 1981년 고향 태안 상두산의 이름을 따서 상산고를 설립합니다. 울릉도의 한 개척목사로부터 ”아들이 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편지를 받고 교사들을 보내 졸업반 6명 가운데 1등을 한 학생의 잠재력을 보고 선발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 학생이 입학전 수학 진단평가에서 384명 중 꼴찌를 하자, 홍 박사는 입학식 뒤 따로 불러서 “체력을 위해 매일 운동장을 10바퀴 돌라”고 당부했지요. 그 학생은 감사한 마음으로 이를 실천했습니다. 마침내 서울대 사회학과에 합격하고 정치외교학부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홍 박사와 상산고는 학생 선발에서부터 교육방법까지가 일반 학교와 다릅니다. 수많은 교양과목에 학원을 뛰어넘는 방과후 자율 심화과정이 마련돼 있습니다. 3학년까지 체육은 필수이고, 졸업생 모두 태권도 유단자입니다. 만약 우리나라 교사들이 홍성대 박사의 반만큼이라도 열정적으로 교안을 마련하고 매일 밤 자기 전에 “내일은 어떻게 재미있게 가르칠까” 고민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가끔씩 책을 보다 “왜 이 재미있는 걸 학창 시절에는 무관심했을까”라고 자책(?)까지 한다면 학생들이 신나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을 겁니다. 2000년대 인터넷이 보급될 때 우리나라에선 점수 올려준다는 사이트들이 먼저 선보였습니다. 미국에선 학교 교사들이 다른 학교 교사와 교안 정보를 주고받고 학부모와 대화하는 데 인터넷을 활용했습니다. 제가 2004년 미국에 연수갔을 때 아이들 교사가 박봉이어서 저녁에 슈퍼마켓에서 부업을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그런데도 1년 네 번이나 학부모를 면담하면서  “○○은 삼각형, 사각형은 잘 알지만 오각형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우리가 이런 이런 방법으로 가르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데 놀랐습니다. 제가 연수한 존스홉킨스대가 있는 볼티모어는 범죄가 많은 도시였는데, 한 중학교 교사가 쇼핑갔다가 강도의 희생양이 되자 도시 전체가 안타까워하는 모습에도 감명을 받았습니다. ‘볼티모어 선’은 1면 톱기사로 사건을 보도했고, 그 교사의 업적과 제자들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도시 전체가 애도했고 결국 강도가 사흘만에 잡혔습니다. 열정과 보람으로 일하는 교사들을 존중하는 문화를 실감했습니다. 귀국해서 한국 선생님들에게 끊임없이 실망했습니다. 제 좁은 경험을 일반화하는 오류일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의 핵심 지성인 그룹이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아 답답했습니다. 우리나라 집값 폭등과 부동산으로 인한 재산 불평등도 유명 학원들과 관계가 깊습니다. 이른바 김영란법 때문에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애들, 학원비에 보태시도록 작은…”이란 말로 주고받는 촌지에서 수뢰가 시작됩니다. 교사들과 학교가 제 역할을 하면 우리 사회가 무척 공정해지고 행복해질 거라고 말하면 너무 나간 것일까요? 임용고시라는 높은 벽을 넘은 수재들이 홍성대 박사의 반만이라도 열정을 갖고 아이들을 가르친다면 아이들이 학원에 갈 필요가 있을까요? 어떤 교사는 “학교가 입시를 위한 전쟁이 돼서는 안된다”고 항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은 대부분이 공유하고 있는 암묵지(暗默知)일까요, 아니면 저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