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릎이 얼마나 아프세요?"
정형외과 진료실에서 가장 많이 오가는 질문이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대개 모호하다. "많이요", "예전보다는 좀 나아요"…. 의사는 이를 차트에 몇 줄 메모로 남긴다. 같은 환자라도 진료 때마다 표현이 달라지고, 기록하는 방식도 의사마다 다르다. 이렇게 흩어진 기록으로는 수술 전과 비교해 무엇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정확히 따지기 어렵다.
서울부민병원(병원장 김성준)이 이 '모호함'을 데이터로 바꾸는 작업에 나섰다. 병원은 22일 “무릎 관절기능 평가 국제 표준 설문인 ‘KOOS-12(Knee injury and Osteoarthritis Outcome Score-12, 무릎 손상 및 골관절염 결과 점수)’의 정식 사용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지난 13일부터 한국어 모바일 전자문진 시스템을 가동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KOOS-12는 42개 문항으로 구성된 기존 KOOS 평가도구를 12문항으로 간소화한 설문이다. 무릎 통증, 일상생활 기능, 삶의 질 세 영역을 묻는다. 문항이 짧아 고령 환자도 부담 없이 응답할 수 있다.
병원은 저작권 관리 기관인 매피 리서치 트러스트(Mapi Research Trust)를 통해 정식 라이선스 취득, 한국어 번역본 등록, 전자적 사용 승인 절차를 마쳤다. 시스템 개발에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비플러스헬스케어’가 참여했다.
같은 질문, 같은 척도⋯’비교 가능한 기록'이 핵심
운영 방식은 이렇다. 환자의 수술 일정에 맞춰 설문이 휴대전화로 자동 발송되고, 환자가 입력한 응답은 병원 전자의무기록(EMR)에 바로 연계된다. 의료진은 수술 전후 통증과 기능 변화, 회복 경과를 한 화면에서 추적할 수 있다.

이번 도입의 의미는 단순한 문진 디지털화에 그치지 않는다. 핵심은 환자의 주관적 경험을 '표준화된 척도'로 반복 측정한다는 데 있다.
엑스레이나 MRI는 연골이 얼마나 닳았는지, 다리 정렬이 어떤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계단을 오를 때 얼마나 불편한지, 쪼그려 앉기가 가능한지, 무릎 때문에 외출을 줄이고 있는지는 영상에 찍히지 않는다. 인공관절 수술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결국 이런 일상의 회복이다. 그리고 그 답은 환자만 알고 있다.
KOOS-12처럼 검증된 도구로 같은 질문을 정해진 시점마다 던지면, 환자의 '체감'이 시간에 따라 비교 가능한 수치로 쌓인다. 개별 환자의 회복 곡선을 그릴 수 있고, 회복이 더딘 환자를 조기에 가려낼 수도 있다.
무릎 관절 질환은 환자 대부분이 고령층이고, 수술 후 회복 기간도 길다. 이런 데이터가 누적되면 연령이나 수술 방식에 따라 회복 양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분석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진료실 메모로는 불가능했던 일이다.
개발 과정에는 로봇인공관절 분야 전문가인 궁윤배 센터장이 참여해 설문 구성과 활용 방안 전반의 세부 지침을 마련했다. 궁 로봇수술센터장은 "인공관절 수술의 목표는 관절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환자가 일상으로 돌아가 삶의 질을 되찾도록 돕는 것"이라며 “KOOS-12는 환자가 직접 느끼는 통증과 기능 변화를 수치로 확인할 수 있어 환자별 회복 상태를 파악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평가·해외 병원 평가도 '환자자기평가'로 이동 중
이처럼 환자가 직접 자신의 건강 상태를 평가하는 방식을 '환자자기평가(PROMs, Patient-Reported Outcome Measures)'라고 한다. 국내외 의료 질 평가에서 그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024년 발간한 '환자 자기평가 건강상태 도입 방안 마련 연구'에서 슬관절치환술을 우선 도입 영역으로 선정하고, 통증과 신체 기능을 주요 측정 영역으로 제시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병원 평가에서도 환자자기평가 도입과 운영 수준이 평가 점수의 6.5%를 차지한다.
향후 PROMs가 공식 의료 질 평가 지표로 자리 잡게 되면, 표준화된 데이터를 먼저 축적해온 병원과 그렇지 않은 병원의 차이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환자의 "아파요"를 숫자로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결국 근거 기반 진료로 가는 첫 단추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