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06일 (금)

99세 블롬스테트 별세⋯'지휘자는 오래 산다'는 말의 함정

90대 현역 거장도, 30~50대에 숨진 거장도⋯장수 통계의 '생존자 편향'과 건강수명 높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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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출신 지휘자 헤르베르트 블롬스테트가 1998년 8월 25일 독일 라이프치히 콘서트홀에서 '게반트하우스 카펠마이스터'(게반트하우스 지휘자)로 공식 취임한 뒤 처음 열린 리허설에서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AP 자료사진 편집

세계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블롬스테트가 4일(현지시간) 99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98세였던 지난 5월에도 미국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무대에서 말러 교향곡 9번을 지휘했다. 당시 건강 문제로 공연을 잠시 중단했지만 다시 연주를 이끌어 끝까지 마쳤다.

90대까지 무대를 지킨 거장은 그뿐만이 아니다. 지휘자는 정말 다른 사람보다 오래 살까. 그렇다면 그 비결은 무엇일까.

92세까지 음악 활동을 이어간 네빌 마리너(가운데)가 1992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헨델의 《메시아》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사진=Wikimedia Commons/GooglerW(CC BY-SA 4.0) 편집

90세 생일에도 무대에⋯36세에 숨진 거장도

영국의 네빌 마리너는 2016년 92세로 세상을 떠나기 석 달여 전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녹음했다. 그의 생애 마지막 녹음이었다.

폴란드 출신 스타니스와프 스크로바체프스키도 93세였던 2016년 미국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와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을 연주했다. 이듬해 세상을 떠난 그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올해 4월 90세 생일에도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지휘한 거장 주빈 메타. 사진은 2024년 공연 모습이다. 사진=Alexander Khanin, Wikimedia Commons(CC BY-SA 4.0) 편집

인도 출신 주빈 메타는 올해 4월 29일 90세 생일을 맞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지휘했다.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모든 거장이 장수한 것은 아니다.

전설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후계자로 주목받았으나 1956년 비행기 사고로 36세에 숨진 귀도 칸텔리. 1950년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티노 바린델리 컬렉션, Wikimedia Commons

이탈리아의 귀도 칸텔리는 전설적인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후계자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1956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의 상임지휘자로 임명된 지 8일 만에 비행기 사고로 숨졌다. 불과 36세였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지낸 이슈트반 케르테스는 1973년 이스라엘에서 수영하다가 익사했다. 43세였다. 미국 신시내티 심포니 음악감독을 지낸 토머스 시퍼스는 1977년 폐암으로 47세에 세상을 떠났다.

공연 도중 숨진 사례도 있다. 이탈리아의 주세페 시노폴리는 2001년 54세에 베를린에서 오페라 《아이다》를 지휘하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숨졌다. 네덜란드의 에두아르트 판 베이눔도 1959년 58세에 오케스트라 리허설 도중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장수한 거장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거장도 있다.

그런데 왜 지휘자는 오래 산다는 말이 널리 퍼졌을까.

지휘자 437명 조사했더니 사망률 38% 낮아

지휘자가 오래 산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는 실제로 있다.

미국 보험사 메트라이프가 1956~1975년 지휘자 437명을 조사했더니 사망률이 일반 인구보다 38% 낮았다. 특히 50대의 사망률은 일반인보다 56% 낮았다. 1980년 발표된 연구로, 이후 의학 문헌에도 여러 차례 인용됐다.

2014년 러시아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노년학 발전(Advances in Gerontology)》에 발표한 연구에서도 남성 지휘자 1435명의 평균 사망 연령은 71.1세를 기록했다. 첼로·바이올린 연주자의 70.0세보다 약 1년 높았다.

하지만 모든 장수 지표에서 앞선 것은 아니었다. 90세 이상에 사망한 비율은 지휘자 6.6%, 바이올린 연주자 7.3%로 오히려 바이올린 연주자가 높았다.

2024년 폴란드 연구에서는 클래식 음악가의 장수가 더욱 두드러졌다. 연구진이 유명 인물 8578명의 사망 기록을 분석했더니 50세 이상에 사망한 남성 클래식 음악가 191명의 사망 연령 중앙값은 82세였다. 같은 조건의 일반 남성은 72세였다. 중앙값은 나이를 순서대로 늘어놓았을 때 한가운데 있는 값이다.

그렇지만 이런 결과가 지휘라는 직업의 장수 효과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유명 지휘자만 살펴보면 생기는 '생존자 편향'

가장 중요한 문제는 누구를 조사했느냐다.

세계적인 거장이 되려면 오랜 수련과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재능이 있어도 정상에 오르지 못한 사람, 건강 문제로 일찍 은퇴한 사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사람은 유명 인물 중심의 기록에서 빠지기 쉽다.

오래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록을 주로 살펴보고 지휘자는 장수한다고 판단할 위험이 있다. 이를 '생존자 편향'이라고 한다.

캐나다 웨스턴대 공중보건학 교수 마크 스피츨리는 2016년 이 문제를 역학 교육 사례로 다뤘다. 단순히 사망 연령을 비교하기보다 지휘자로 활동할 만한 나이에 이른 사람들의 남은 수명을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90대 거장의 이야기는 오래 기억하면서 일찍 세상을 떠난 음악가는 쉽게 잊는 '확증 편향'도 작용할 수 있다.

학력과 소득, 의료 접근성도 무시할 수 없다. 세계적인 거장들은 일반인과 사회경제적 여건부터 다를 수 있다. 메트라이프의 다른 조사에서는 기업 경영자에게도 비슷한 장수 경향이 나타났다.

물론 앞서 소개한 연구들이 모두 유명 지휘자만 조사한 것은 아니다. 정확한 판단을 내리려면 다양한 경력의 지휘자를 살펴보고, 생활 수준과 건강 상태 등이 비슷한 다른 직업군과 비교해야 한다.

스웨덴 출신 지휘자 헤르베르트 블롬스테트가 1996년 4월 10일 독일 라이프치히 콘서트홀 '게반트하우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AP 자료사진

지휘자는 왜 90대에도 무대에 설 수 있을까?

그렇다면 오랜 음악 활동은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단정할 수도 없다.

지휘자는 수십 명의 연주자가 내는 소리를 동시에 듣고 악보를 파악하며, 연주 속도와 강약을 순간순간 조절한다. 팔과 상체도 끊임없이 움직인다.

2015년 《공연예술가 의학 문제(Medical Problems of Performing Artists)》에 실린 연구에서 전문 지휘자 2명의 심박수를 측정했더니 공연과 리허설 중 상당히 높아졌다. 다만 긴장과 흥분만으로도 심박수가 높아질 수 있어 운동 효과를 입증한 것은 아니다.

음악 활동과 두뇌 건강의 관계도 눈길을 끈다. 2025년 호주 연구진이 70세 이상 노인 1만893명을 분석한 결과, 악기를 자주 연주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치매 발생 위험이 35% 낮았다. 다만 관찰연구여서 음악 활동이 치매를 직접 예방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른 음악가보다 고령에도 현역 생활을 이어가기 쉬운 측면도 있다. 성악가나 악기 연주자는 목소리와 손가락, 호흡 등을 이용해 직접 소리를 낸다. 나이가 들어 이런 기능이 떨어지면 연주에 영향을 받는다.

반면 지휘자는 몸의 움직임이 예전 같지 않아도 오랜 경험과 음악적 판단력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여지가 있다. 블롬스테트 역시 마지막 공연에서 앉아서 악단을 이끌었다.

그는 술과 담배를 멀리하는 생활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17년 재림교 유럽지부 뉴스매체와의 인터뷰에서는 자신과 똑같은 건강 습관을 지킨 의사 출신 형이 자신만큼 건강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생활 습관만으로 개인의 수명을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몸과 머리 함께 써야

그렇다면 일반인은 무엇을 실천해야 할까.

가장 근거가 탄탄한 것은 규칙적인 신체 활동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성인에게 빠르게 걷기 같은 중강도 운동을 일주일에 150~300분 하도록 권고한다. 하루 30분씩 주 5일 걷는 것으로 시작해도 좋다. 근력 운동은 주 2일 이상 하고, 65세 이상은 한 발로 서기 같은 균형 운동도 꾸준히 하는 것이 좋다. 오래 앉아 있다면 중간중간 일어나 움직이고, 운동이 부담스럽다면 건강 상태에 맞춰 조금씩 활동량을 늘리면 된다.

금연과 절주, 충분한 수면, 혈압·혈당 관리도 중요하다. 독서나 악기 연주처럼 머리를 쓰는 취미를 즐기고, 가족·친구와 교류하며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건강한 노년을 위해 권할 만하다.

지휘자가 유난히 오래 사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장수한 거장들의 삶에서 배울 것은 특별한 직업의 비밀보다는 오래도록 몸과 머리를 쓰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활동을 이어가는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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