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0일 (화)

“어지러우면 빈혈?”⋯‘몇 초’인지 ‘며칠’인지 살펴야

고려대 안암병원 이선욱 교수, 이석증·전정신경염 차이 설명⋯걷기 힘들거나 말 어눌하면 응급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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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 소파에 누워 있는 노년 여성. 어지럼증은 빈혈뿐 아니라 이석증, 전정신경염, 뇌졸중 등 다양한 원인으로 나타날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침대에서 돌아누우면 몇 초간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사람이 있다. 반면 가만히 있어도 어지럼이 가시지 않고 며칠씩 고생하는 사람도 있다. 흔히 빈혈을 떠올리지만, 어지럼이 얼마나 오래 이어지고 어떤 상황에서 생기는지에 따라 의심할 질환이 달라진다.

빈혈이 생기면 혈액 속 헤모글로빈이 줄어 몸 곳곳에 산소를 충분히 공급하기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어지럽고 쉽게 지치거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찰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이 도는 듯한 회전성 어지럼은 귀 안쪽 평형기관이나 신경계 이상 때문에 생길 수도 있다.

자세 바꿀 때 몇 초간 어지럽다면 이석증 가능성

대표적인 원인은 이석증이다. 귀 안쪽 평형기관에는 몸의 기울어짐과 움직임을 감지하는 데 관여하는 작은 칼슘 결정인 '이석'이 있다. 이석이 제자리에서 떨어져 반고리관으로 들어가면 머리를 움직일 때 어지럼이 생길 수 있다.

이석증은 누웠다 일어나거나 침대에서 돌아눕는 등 특정 자세를 취할 때 어지럽다. 빙글빙글 도는 느낌은 보통 몇 초에서 1분 이내에 가라앉는다. 그런데 같은 자세를 취하면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의료진이 환자의 머리와 몸을 일정한 순서로 움직여 이석을 반고리관 밖으로 이동시키는 '이석정복술'로 치료할 수 있다.

전정신경염은 증상이 다르다. 전정신경은 귀에서 받아들인 평형감각 정보를 뇌로 전달한다. 이 신경에 이상이 생기면 갑자기 심한 어지럼이 시작된다. 이석증과 달리 가만히 있어도 어지럼이 계속되고, 하루를 넘겨 며칠간 이어질 수 있다.

국제 전정질환 진단기준에서도 24시간 이상 지속되는 어지럼을 전정신경염의 주요 판단 기준 가운데 하나로 삼는다. 구역질이나 구토가 동반되기도 하며, 균형을 잡기 어려워 걷는 것조차 힘들 수 있다.

신경과 이선욱 교수 사진=고대 안암병원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이선욱 교수는 20일 "갑자기 심한 어지럼이 생기면 단순히 빈혈이나 피로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전정신경염처럼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신경계의 이상이 원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갑작스런 어지럼에 보행장애⋯뇌졸중도 의심해야

하지만 어지럼이 오래 지속된다고 모두 전정신경염은 아니다. 뇌에서 균형을 담당하는 소뇌나 뇌간에 뇌졸중이 생겨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갑자기 어지러우면서 한쪽 팔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말이 어눌해지고, 물체가 두 개로 보인다면 즉시 응급진료를 받아야 한다. 뚜렷한 마비 없이 심한 어지럼과 보행장애만 나타나는 뇌졸중도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도 갑자기 심한 어지럼이 시작돼 계속되고, 구토하거나 제대로 걷지 못한다면 응급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눈의 움직임과 신경계 이상 여부 등을 살펴 뇌졸중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

이 교수는 "어지럼은 발생 양상과 지속시간, 동반 증상이 진단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며 "발음 이상, 팔다리의 힘 빠짐, 복시 등 신경학적 증상이 함께 나타난다면 응급질환의 가능성을 고려해 즉시 의료기관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정신경염, 약물치료 후 재활도 중요

전정신경염이 의심되면 의료진은 눈이 저절로 반복해서 움직이는 '안진'의 양상을 살피고 신경계와 평형기능을 검사한다. 뇌졸중 등 다른 질환이 의심되면 필요에 따라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도 한다.

전정신경염으로 진단되면 초기에는 약물로 심한 어지럼과 구토를 줄인다. 이후에는 머리와 몸을 움직이면서 균형감각이 회복되도록 돕는 '전정재활치료'가 중요하다.

미국물리치료협회의 진료지침도 한쪽 평형기관이나 전정신경의 기능이 떨어진 환자에게 전정재활치료를 권한다. 다만 무리하게 움직이지 말고 의료진의 진단과 지도에 따라 안전하게 시작해야 한다.

어지럼의 원인을 증상만으로 가려내기는 어렵다. 처음 겪는 심한 어지럼이 갑자기 시작됐다면 빈혈이나 피로 탓으로 넘기지 말고 신속하게 진료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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