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장에 수백~수천 개의 용종이 자라는 유전질환이 있다. 전형적인 환자는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대장암에 걸릴 위험이 거의 100%에 이른다. 암을 막기 위해 대장을 절제해도 십이지장 등 다른 소화관에 용종이 생길 수 있다. 평생 내시경 검사와 추가 수술을 받아야 할 수도 있는 환자들에게 먹는 시험약이 용종 크기를 줄일 가능성을 보여줬다.
미국 바이오기업 리커전 파마슈티컬스(Recursion Pharmaceuticals)는 가족성 선종성 용종증(FAP) 치료제로 개발 중인 'REC-4881'의 임상 1b·2상 추가 분석 결과를 15일(현지시간) 발표했다. 환자들이 12주간 약을 복용한 결과, 상부 소화관 용종의 크기가 줄었다. 용종들의 지름을 모두 더해 비교했을 때 감소율의 중앙값은 55%를 기록했다.
가족성 선종성 용종증은 암 발생을 억제하는 APC 유전자에 변이가 생겨 대장과 직장에 수많은 용종이 자라는 유전질환이다. 용종은 장 점막에서 혹처럼 자라는 조직이다.
대장을 잘라내도 안심할 수 없다. 환자 상당수는 소장의 첫 부분인 십이지장에도 용종이 생긴다. 일부는 암으로 발전한다. 십이지장은 장벽이 얇아 용종을 제거하다가 출혈이 생기거나 장에 구멍이 뚫릴 위험도 있다. 미국에서 이 질환의 용종을 치료하도록 승인받은 약은 아직 없다.

이번 임상에서 환자들은 REC-4881 4mg을 하루 한 번, 12주간 복용했다. 효과 평가에는 16명, 안전성 평가에는 26명이 포함됐다.
상부 소화관을 검사한 13명 중 12명(92%)에게서 용종 지름의 합계가 감소했다. 이 가운데 2명은 98% 이상 줄었다. 전체 소화관을 검사한 15명 중에서도 13명(87%)이 감소했으며, 감소율 중앙값은 47%였다.
약을 끊은 뒤에도 감소 상태를 유지한 환자가 많았다. 복용을 마치고 12주가 지난 시점에 상부 소화관을 다시 검사한 12명 중 11명(92%)은 치료 전보다 용종 지름의 합계가 작았다. 전체 소화관에서도 13명 중 11명(85%)이 같은 결과를 보였다.
다만 이러한 수치는 용종 개수나 암 발생 위험이 그만큼 줄었다는 뜻은 아니다.
REC-4881은 세포의 성장과 증식에 관여하는 MEK1·MEK2 단백질의 작용을 억제하는 약이다.
리커전은 인공지능(AI) 기반 신약개발 플랫폼을 활용해 MEK를 억제하면 APC 유전자가 제 기능을 못해 생기는 세포 변화를 되돌릴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 다케다에서 도입한 후보물질을 가족성 선종성 용종증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다. 회사에 따르면 이 질환에 MEK1·MEK2 억제제를 적용한 임상시험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전성 평가 대상 26명 중 4명에게서 약물 관련 3등급 이상반응이 나타났다. 이상반응은 심한 정도에 따라 1~5등급으로 나눈다. 3등급은 일상생활에 상당한 지장을 줄 수 있는 중증, 4등급은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을 뜻한다.
주요 이상반응으로 피부염·발진과 혈중 크레아틴인산화효소(CPK) 상승 등이 보고됐다. 별다른 증상 없이 심장의 혈액 펌프 기능을 나타내는 좌심실 박출률이 감소한 사례도 있었다. 약물 관련 4등급 이상반응은 없었다. 이상반응으로 약을 끊은 환자는 4명이었지만, 3등급 이상반응 때문에 중단한 환자는 없었다.
이번 결과는 환자 수가 적고 위약 대조군이 없는 초기 임상에서 나왔다. 약으로 용종을 줄이는 것이 실제 암 발생이나 추가 수술을 줄이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장기적인 안전성도 더 살펴봐야 한다.
REC-4881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희귀의약품과 패스트트랙 지정을 받았지만 아직 승인된 치료제는 아니다.
리커전은 FDA와 후속 임상 설계를 논의 중이며, 협의 결과에 따라 2027년 하반기 허가 신청에 필요한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등록 임상시험을 시작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