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의 갈변 vs. 지방(脂肪)의 갈변”

[차 권하는 의사 유영현의 1+1 이야기] ④ 갈변(褐變)예찬

추억에 갈색을 입힌 노래 한 곡이 있다. ‘갈색 추억’. 가사에는 희미한 갈색 등불, 식어가는 커피잔, 떠난 사람, 지난날이 등장한다.

이 노래에서 갈색은 ‘지나버린’ 색이다. 갈색이 자연을 은유하면 가을이다. 여름날의 짙은 초록과 대비된다. 가을은 식물의 죽음 초입이다. 갈색은 식물의 죽음을 상징하는 색이 된다.

과일과 채소는 공기에 노출되면 갈변(褐變)한다. 식물의 갈변은 산화효소에 의한 산화작용이다. 식물 내 산화효소가 공기 중의 산소와 만나 산화가 일어나면 식물은 갈변한다.

껍질을 깎거나 상처를 내면 사과도 바나나도 갈변이 일어난다. 갈변이 일어나는 물질은 식물 폴리페놀이고 갈변을 좌우하는 효소는 폴리페놀 산화효소다.

식물이 가진 폴리페놀 산화효소가 공기와 만나면 퀴논과 같은 물질로 산화되면서 갈색으로 변한다. 산화가 진행될수록 갈색은 더 짙어진다.

아무리 신선한 식물의 조직도 폴리페놀 산화효소가 공기와 만나 반응하면 산화된다. 식물 산화에 의한 갈변은 식물의 신선함을 잃는 과정이니 일반적으로는 부정적인 의미를 띈다.

수천 년 전부터 차나무잎을 말려 차를 즐긴 중국인들은 차 갈변을 막고 찻잎을 푸릇푸릇 유지하기 위해 온갖 열정을 다 바쳤다. 찻잎의 신선한 맛을 즐기려 했기 때문.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오랜 세월을 거치며 중국의 차 장인(匠人)들은 ‘살청’(殺靑)이라는 차 제조 과정을 수립하였다. 높은 온도로 데운 솥에서 차를 덖어 산화효소 활성을 제거한 것.

‘살청’이라 부른 이유는 찻잎을 고온으로 덖으면, 찻잎의 비린내(청미, 淸味)를 죽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고대에 차를 만들던 중국인들은 떫고, 강한 풍미 등 찻잎의 여러 부정적인 특성이 모두 푸르름에서 비롯된다 생각했다.

그런 연유로 그들은 푸릇푸릇함을 유지하는 과정을 오히려 “푸른 맛을 죽인다”는 뜻의 살청이라 불렀다. 폴리페놀 산화효소를 억제한다는 개념이 없던 시절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의 녹차(綠茶)도 중국 녹차처럼 덖어 제작한다.

반면 일본인들은 뜨거운 수증기로 폴리페놀 산화효소를 제거하여 갈변을 막는다. 이런 녹차를 ‘증청 녹차’라 부른다. 하지만 증청 녹차는 갈변은 막지만, 물이 더해져 청미를 제대로 막아내지는 못하기 때문에 다소 비리다. 현대과학 등장 이전 수립된 살청 과정인 덖음과 증청은 이제 모두 폴리페놀 산화효소 제거 과정에 의한 갈변 억제로 설명된다.

식물의 갈변은 반드시 나쁘지는 않다. 장아찌 같은 저장 식물에서는 풍미를 돋구는 긍정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차에서도 마찬가지다. 차 제작자들은 적극적으로 차를 산화시켜 갈변을 유도하고 풍미를 높여 여러 차종을 탄생시켰다.

홍차(紅茶) 제작 시에는 산소를 공급하면서 폴리페놀 산화효소에 의한 갈변을 인위적으로 촉진한다. 미생물 발효를 이용하여 홍차처럼 적극적으로 갈변을 유도하여 제작하는 또 다른 차종을 흑차(黑茶, dark tea)라 부른다.

서양인들이 선점하여 홍차에 검은 차(black tea)라는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차 색깔이 검붉고 찻잎이 검은 흑차는 영어로는 어두운 차가 되었다. 흑차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보이차, 육보차, 안화의 흑전차들이 모두 흑차다. 찻잎과 수색이 갈색에서 검은색까지 다양하다. 공통점은 미생물에 의한 발효 과정을 거친다는 점이다.

갈변한 차들은 녹차보다 위장 장애가 적어 차 애호가들 기호는 점차 갈변한 차로 옮아갔다. 이미 17세기부터 홍차는 서양인의 입맛을 장악하였다.

최근에는 여러 종의 흑차들이 세계인을 사로잡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 녹차 시장도 많이 변하였다. 한국의 녹차 회사들이 최근 황차 혹은 발효차라고 판매하여 인기를 얻는 차들도 갈변을 유도하여 순하게 하고 풍미를 높인 상품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서도 의도된 갈변을 유도한다. 오래전부터 햇빛에 피부를 내어 갈색으로 태닝(tanning)을 시도했다. 햇빛을 받으면 갈색 색소인 멜라닌 색소가 피부를 보호하기 위하여 침착하고 피부는 갈색으로 변한다.

최근에는 신체 대사(代射) 연구자들이 지방조직을 인위적으로 갈색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혈액 속이 아닌 체내에 존재하는 지방을 ‘체지방’이라 한다. 피하지방, 내장지방, 골수 지방이 체지방이다.

지방조직 속 세포인 지방세포에는 지질에 축적되어 있다. 지방세포는 백색지방세포와 갈색지방세포로 나뉜다. 갈색지방세포는 철을 가진 미토콘드리아 밀도가 높아 갈색으로 보인다. 백색지방은 미토콘드리아 밀도가 낮다.

갈색지방세포에는 미토콘드리아도 많고, 발열에 관여하는 UCP1 단백도 발현하니 지방을 태워 열을 쉽게 발생하게 된다. 갈색 지방조직은 주로 신생아에 많이 존재하여 체온조절 기능이 떨어지는 신생아에서 발열반응을 책임진다.

성인에서는 체온을 조절하는 복잡한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어 즉각 발열하는 갈색지방은 소량만 존재할 뿐이다. 백색 지방세포는 미토콘드리아 밀도가 낮고 열 발생 단백인 UCP1을 발현하지 않아 발열반응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다.

발열반응이 활발한 갈색지방이 많이 존재하면 체내 지방을 분해하기가 쉽다. 흰색지방보다 대사 측면에서 유리한 점이 많다.

따라서 대사 연구자들에겐 백색 지방세포를 갈색 지방세포로 바꾸는 ‘browning’(갈색화)이 주요 이슈가 되었다. 다행히 백색 지방세포에서 일종의 갈색 지방세포가 유도될 수 있다. 이런 개념 덕에 갈색지방은 ‘비만 치료의 도우미’ 혹은 ‘몸속 난로’로 불리고 갈색지방을 늘리는 방법이 언론에 소개되고 있다.

지방의 갈색화를 유도할 수 있는 첫 번째 전략은 근육운동이다. 근육에서는 이리신(irisin)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리신은 백색지방조직을 갈색화시킨다. 추위도 백색지방의 갈색화를 유도할 수 있다. 15도 이하로 실내 온도를 유지하면 백색 지방세포 일부가 갈색 지방세포가 되고 지방은 발열반응으로 태워질 수 있다.

기타 싸이토카인 IL-18, 화학물질 및 장 미생물 등이 백색 지방세포의 갈색화를 자극한다고 알려졌다. 그림은 ‘네이처’(Nature) 저널에 실린 논문에서 백색지방 조직의 갈색화를 상세히 그려 놓은 도식이다.

백색지방 갈색화 기작을 설명하는 '네이처'(Nature) 의 그림. [사진=유영현]
차는 백색지방의 갈색화도 유도한다. 차의 카테킨 성분이 백색지방의 갈색화를 통해 발열반응을 유도한다는 연구 논문이 이미 발표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차가 지방의 갈색화와 발열에 관여하는 기작들도 발표되었다. 특히 갈변한 찻잎이 지방의 갈변에 유리하다는 논문도 발표되었다.

찻잎의 갈변은 차에 풍미를 더하는 과정이고, 사람 지방세포의 갈변은 몸에서 열을 발생시켜 과도한 체중을 줄이는 과정이다. 찻잎의 갈변이나 사람 지방세포의 갈변이나 이제는 지나버렸거나 죽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맛을 얻고 에너지와 건강을 얻는 역동적인 과정이 되었다.

    유영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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