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와 송곳으로 쪼개어 음미하는 청전차...몸속 활력 높여줘
[차 권하는 의사, 유영현의 1+1 이야기] ③차(茶) 화폐 청전차와 에너지 화폐 ATP
2020년 초 코로나19로 중국 후베이성 황강시가 폐쇄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후베이성 출신 린뱌오의 죽음이 떠올랐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우리에게 한자 발음 임표(林彪)로 더 익숙하였던 인물이다.
그는 1971년 죽었다. 중국 홍군의 대장정, 국공내전, 대약진운동 속 그는 마오쩌뚱(毛澤東) 다음의 실권자였다. 린뱌오는 문화대혁명 중에도 제거되지 않고 2인자의 위치를 굳건히 지켰다.
그런 린뱌오를 마오쩌둥이 갑자기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군(軍)에 자신의 세력을 구축한 린뱌오를 마오쩌둥이 경계한다는 신호였다. 위기를 감지한 린뱌요는 그의 아들과 함께 마오쩌둥 암살계획 ‘571공정’을 수립한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다. 1971년 9월 13일 그는 가족과 함께 호커 시들리 트라이던트 1E 여객기에 급히 몸을 싣고 소련 망명을 시도한다.
생사를 같이 한 전우 마오쩌둥으로부터 버림 받은 린뱌오, 그의 최후 선택은?
나는 그의 마지막 장면을 상상하면서 「차 오디세이」(이른아침, 2020) “후베이성 황강의 린뱌오와 청전차” 부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인류 역사상 가장 치열한 욕망과 열정이 들끓던 용광로 한가운데에서 45년 성년 세월을 살았다. 그 뜨거웠던 세월과 이제 이별이다. -(중략)- 비행기가 이륙하였다. 이제 고국을 떠나고 고향을 떠난다. 비행기는 불투명한 미래를 향하여 소련으로 향한다. 린뱌오는 전장에서 차를 간절히 원할 때마다 상상하였듯 청전차 한 모금을 그의 입에 부어 넣었다. 맑은 향기와 맛이 입안을 감돌았다. 후베이성의 차 청전차의 맛이 입안과 기억 모두를 행복하게 채울 즈음 비행기는 몽골 상공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도, 그의 가족도 비행기와 함께 영원히 사라졌다.”
린뱌오가 죽기 직전 마셨다고 내가 상상한 청전차는 그의 고향 후베이성의 대표차다. 미생물을 이용하여 발효시켜 제작한 흑차의 일종. 눌러서 벽돌 모양으로 제작한다. 청전차는 대표적인 흑차인 복전차보다 좋은 원료를 사용해서 만든다.
확실하지는 않으나 청전차는 청대 말 후베이성 양루동(羊樓洞)에서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 전해진다. 벽돌 모양 가운데에 내천(川)자가 인쇄되어 있어 천자패(川字牌)라 부르기도 한다.
벽돌처럼 단단한 중국 청전차, 청나라시대부터 후베이성 대표차로 등극
후베이성 양루동에는 관음천, 석인천、양음천이라는 세 냇물이 川자를 이루기에 이 모양을 차에 박아넣었다고 전해진다. ‘삼옥천’이라는 상표로 생산된 증압기계에서 川 자를 박아 생산해 큰 인기를 끌자 당시 다른 차공장들까지 川자를 박아넣었다는 설도 있다.
청전차는 두 가지 원료를 사용하여 3층으로 긴압한다. 표면을 이루는 원료는 면차라 부르고 찻잎으로 만들어진다. 대개 곡우 지난 후의 두툼한 잎을 사용한다.
또 벽돌 가운데를 이루는 원료는 이차(속차)라 부르고, 비교적 억세고 거친 잎과 일부 줄기를 포함하여 만든다. 면차와 속차를 증기를 쪼이고 압축을 하여 3층으로 긴압하여 청전차 벽돌이 탄생한다.
압축을 아주 심하게 하기에 차는 나무처럼 단단하다. 너무 단단하여 보통의 송곳으로는 차를 해체할 수 없고 몽골인들은 도끼로 차를 자른 후 다시 송곳이나 칼을 사용하여 쪼개어 음용한다.
처음 청전차를 구입하고 해괴(덩이차를 해체하는 행위)에 어려움을 겪었다. 송곳으로 떼어내다 손을 다치기도 하였다. 누군가에게서 대패를 이용한다는 정보를 듣고 그간 대패로 차를 벗겨내어 들었다.
최근 나는 1.7kg 되는 청전차 하나를 제대로 해괴해 보았다. 목공예가 동기에게 들러 톱으로 자른 뒤 망치로 쪼개었다. 도끼를 쓸 수 있는 몽골 초원이 아니면, 청전차를 음용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번거로움이 따른다.
청전차는 몽골과 신강 등 북방 변경 유목민과 러시아에 팔려나가 인기를 끌게 되었다. 청전차가 일상에서 소모되니 청전차는 한때 물물교환의 화폐로 사용되었다. 물물교환 화폐로 사용되었다는 뜻은 청전차 소모량이 많았다는 의미도 된다.
몽골인들의 차 소모는 대단하다. 하루 차 소모량은 세계 어느 민족 국가에 비하여도 높다. 청전차가 몽골인의 필수품이 되고 엄청나게 소모되니 이 차가 물물교환 도구인 화폐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몽골인들의 주요 거래 품목인 양고기, 양털, 모피, 낙타 등도 청전차로 거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몽골에서 '물물교환 화폐', 우리 몸에선 '에너지 화폐'
신체에너지 화폐는 ATP(아데노신 삼인산)이다. 단백질 분자인 아데닌(adenine)과 당 분자인 리보스(ribose)가 결합하여 아데노신(adenosine)을 형성하고 1개의 아데노신에 3개의 인산(phosphate) 그룹이 붙어있는 고-에너지 인산 화합물이 ATP다.
에너지 화폐 ATP에서 인산이 떨어져 나가면 인체에 필요한 에너지를 방출한다. 이 에너지는 몸의 모든 반응에 사용된다. ATP는 인산이 떨어져 나가면 ADP(아데노신 이인산)로 전환된다.
ADP는 포도당과 지방산의 대사를 통하여 영양물질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다시 ATP로 전환된다. ATP와 ADP는 상호 전환되면서 신체에너지 공급과 저장의 화폐로 사용되는 것이다.
차는 생명 공통의 화폐인 ATP 합성에 이바지한다. ATP의 합성은 대부분 미토콘드리아 내에서 이루어진다. TCA 회로와 전자전달계를 통하여 ATP가 합성된다.
미토콘드리아에서 ATP 합성이 원활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조효소(助酵素, coenzyme) 7가지가 필요하다. 차에는 이 조효소 중 여섯 가지가 포함되어 있다.
차 물을 통하여 즉각 공급되는 조효소들은 소화기계 상피에서 흡수되면 즉시 ATP 합성을 도운다. 차를 마시면 속이 뜨뜻하여진다. 이는 찻물을 통하여 공급된 조효소들이 소화기계에서 ATP 합성을 촉진하면서 나타나는 발열반응이다.
세상의 모든 차는 차나무(Camellia Sinensis) 잎으로 만들어진다. 청전차도 모든 차나무와 같게 티아민, 리보플라빈, 니코틴아미드, 판토펜산, 바이오틴, 코발라민 등 6종의 조효소를 가지고 있다.
몽골 땅이라는 광활한 거시(巨視)세계에서 화폐로 사용되었던 청전차가 내 몸에 들어오면, 세포 속 미시(微視)세계 미토콘드리아 내에서 신체에너지 화폐 ATP를 만들어 오늘 내게도 활력을 준다.
다시 린뱌오에게 돌아간다. 그는 전장에서 얻은 부상으로 평생 물과 바람에 대하여도 참을 수 없는 두려움을 안고 살았다. 그런 몸으로도 권력과 욕망의 끈을 놓을 수 없어 무거운 생을 버티어 내었다.
린뱌오의 종말에 그의 고향 차가 함께 하였다고 상상한다. 그 청전차는 미토콘드리아에 조효소들을 공급하여 그의 몸을 잠깐이나마 따뜻하게 덥혀 주었으리라. 그래야만 이내 싸늘한 주검이 되어 이승을 떠났던 그에게 어설픈 위로라도 될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