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인데도 서울 못 가…여기가 환자 살렸다”

빅5 등 수도권 병원 의료공백에 지방 종합병원들 풍선효과도

전공의 이탈로 수도권 대형병원들이 파행 운영되면서 진료받을 기회조차 얻기 어려워진 환자들이 지역 종합병원들을 찾기 시작했다. 중증환자들과 응급환자들이 인근의 2차 병원들로 몰려들고 있는 것.

21일 부울경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일부 종합병원 중환자실 병상이 가득 찼고, 응급의료센터를 통한 입원 환자 수도 많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덩달아 재원환자 수 역시 전공의 이탈 이전보다 30% 정도 늘어났다. 애초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경남 통영에 사는 60대 환자 A 씨. 지난해 6월부터 명치와 복부 통증에 시달리다 최근 인근 병원에서 복부 CT와 MRI 검사를 받은 결과,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깜짝 놀란 가족은 하루라도 빨리 수술 받기 위해 인맥을 총동원해 서울 빅(Big)5 병원 등을 수소문했으나, 지금의 의료공백 사태로 외래 진료 신청조차 어려웠다. 수술까지는 얼마나 걸릴 지 가늠이 안 됐다.

발을 동동 구르던 가족은 수소문 끝에 부산 온종합병원을 찾아냈다. 간담췌외과 김건국 전문의가 이 질환에 정통하다는 언론 기사와 친지들 소문을 들은 것.

김 교수의 진단도 췌장암으로 나왔다. 특히 환자 누나도 췌장암 환자였고, 어머니와 형 또한 당뇨병 환자라는 점 등 가족력이 있는 데다 통증 시작된 지 이미 10개월이나 된 점을 고려해 그는 즉시 수술 일정을 잡았다.

췌장을 떼야 하는 수술. 집도의는 “췌장암 수술은 5년 생존율이 20%에 불과하다”면서 “이를 더 늘리자면 췌장 머리 부분과 십이지장, 담낭, 담도, 위의 일부, 비장 등 주변 조직을 두루 절제해야 했다”고 했다. 이른바 ‘근치적 전방향 췌비장절제술’. 췌장암, 담도암, 십이지장암 등이 있을 때 시행한다. 관련 분야 전문의들 사이에서도 고난도 수술로 꼽힌다.

수술 이후 현재 일반병실에서 회복 중인 A 씨 가족은 “서울 빅5 병원만 바라보고 마냥 기다렸다면 환자 목숨이 어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고 했다. 집도의 역시 “췌장암은 조기 발견이 어려운 암 중의 하나여서 근치적 전방향 췌비장절제술을 시행할 수 있는 사례가 많지 않다”면서 “다행히도 이 환자는 운이 좋았다”고 했다.

김건국 집도의가 췌장암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환자 A 씨를 돌보기 위해 병실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온종합병원]

“전공의 파동에 우리 의료 수도권 집중 얼마나 심각한지 또 한번 증명”

김건국 전문의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수련 과정과 간담췌외과 및 간 이식 전임의를 거쳐 가천대 길병원 교수로 13년간 재직했다. 이후 제주한라병원과 창원한마음병원을 거쳐 부산 온종합병원에 합류했다.

지금까지 ‘생체 간 이식’을 포함, 200여 건의 간 이식 수술을 성공시켰고 고난도의 간암, 담도암 수술 500여 건, 췌장이나 십이지장을 절제하는 ‘위플수술(whipple’s operation)’ 500여건 등 이 분야의 두드러진 임상례를 기록해왔다.

온종합병원 김동헌 병원장은 “이번 전공의 파동으로 의료의 수도권 쏠림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시민들이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됐다”면서 “다른 한편으론 몇몇 역량 있는 지역 종합병원들이 암과 같은 중증질환 수술이나 심·뇌혈관 시술에 기대 이상의 진료수준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반대급부도 누리고 있다”고 했다.

    윤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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