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C 논의 표류, 새 국가생명윤리위 구성도 못해

정부가 비의료 기관에서도 소비자 의뢰에 따라 유전자를 검사하는 ‘소비자 의뢰 유전자 검사(Direct-To-Consumer, DTC)’ 제도 개선을 진행 중이지만, 공청회 이후 세부 내용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지 못하면서 혼란과 우려가 가중되고 있다.

DTC 검사 확대는 의료 기관의 고유 영역을 민간으로 이양한다는 점에서 매우 민감한 주제다. 의료계는 유전자 검사를 의료 행위로 규정하고, 비의료 기관의 유전자 검사를 최대한 제한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반면 산업계는 DTC가 의료 서비스가 사후 치료에서 사전 예방으로 변화하는 추세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요구라고 주장한다. 전 세계가 DTC 경쟁력을 갖춰나가는 상황에서 한국은 기존의 시각과 규제에 발목이 잡혀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DTC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보고 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지난해(2017년) 말 민관 협의체를 구성해 11차례 회의를 거쳐 DTC 제도 개선안을 마련했다. 개선안의 핵심은 웰니스 검사 항목 대폭 확대 및 민간 유전체 검사 기관에 대한 인증제 도입 등이다.

혼란스러운 상황은 개선안을 발표하는 공청회에서 벌어졌다. 협의체 과학계 위원인 이종극 서울아산병원 의생명연구소 교수가 개선안에 대한 과학적 타당성을 지적하며 제동을 걸었고, 이에 합의되지 않은 개선안을 섣불리 발표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단일 개선안 도출에 협의체 의의”

복지부와 다수의 협의체 위원은 “의료계와 산업계의 대타협”에 방점을 찍었다. 의료계와 산업계의 첨예한 대립이 릴레이 회의 끝에 합의점을 찾았다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전부는 아니지만, 다수의 위원이 조금씩 양보해 단일안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우선 현 DTC 제도가 ‘이중 규제’라는 지적에 공감대가 형성됐다. 검사 항목뿐 아니라 항목에 대한 유전자까지 지정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경철 테라젠이텍스 부사장은 “현 제도에서 산업계는 연구 개발에 투자할 필요가 없다. 연구를 통해 설명력이 높거나 한국인에게 적합한 유전자 검사를 개발해도 지정된 유전자로만 검사할 수 있어 현장에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검사 항목은 지정하되(포지티브), 검사대상 유전자는 제한하지 않는다(네거티브)’는 내용이 개선안에 담겼다. 여기에 검사실 인증제를 통해 DTC 검사의 질적 수준을 보장하자는 의료계의 제안을 산업계가 받아들이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인증제가 또 다른 규제라는 반발도 나왔지만, 궁극적으로 업계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에 산업계도 인증제 도입을 찬성했다. 김경철 부사장은 “인증을 받은 업체에 더 많은 자유도를 주는 방식은 업계가 스스로 연구 개발에 투자해 경쟁력을 키우도록 한다는 점에서 도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갈 길 먼 제도 개혁, 국가생명윤리위 논의 시작도 못 해

각 계의 서로 다른 입장이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뤘다는 점에서 이번 개선안은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세부 내용에 대한 논의는 과제로 남아있다. 여기엔 인증 평가를 수행할 기관, 구체적인 확대 항목과 인증 평가 기준 등 핵심 사항이 포함돼 있다.

협의체를 통해 마련한 개선안과 공청회 과정에서 나온 지적 사항 등은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서 구체적으로 검토하게 된다.

특히 이종극 교수가 인증 기준과 확대 항목에 과학적 유용성이 없다는 근거로 지적한 ‘위험도(Odd Ratio) 1.2 이상, 유의확률(P-value) 0.05 이하’ 등에 대해서도 심의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개선안에 나온 기준 수치는 그야말로 예시로 적은 것일 뿐 확정 사항이 아니다. 국가생명윤리위에서 최종 결정될 것”이라며 향후 조정 가능성을 언급했다.

공은 국가생명윤리위원회로 넘어갔지만, 속도는 더딘 편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향후 일정에 따르면, 5월 중 국가생명윤리위 심의를 거쳐 6월 임시국회에서 관련 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8월까지 시행규칙 개정을 고시한다. 하지만 정작 국가생명윤리위는 지난해 말 임기 만료 후 새 위원 인선도 아직 완료되지 않은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속도가 중요한 산업계 입장에서는 하염없이 정부만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실정이다. 이에 개선안 선 적용 후 개정이란 주장까지 나왔지만, 이에 대해 복지부는 난색을 표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최종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선 적용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국가생명윤리위 심의 후 하반기 연구 용역을 통해 인증제와 시범사업 진행 방법 등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사진=gettyimagesbank/Natali_Mis]

정새임 기자 j.saeim09@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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