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기증 젊은이들 위해 복강경 수술 개척”

[대한민국 베닥] ㉖간수술 분야 서울대병원 외과 서경석 교수

“이 훌륭한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의 기둥이자 저력인데….”

20여 년 전부터 서울대병원 외과 서경석 교수(60)는 부모에게 기꺼이 자신의 간을 기증하는 자녀들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복잡한 감정에 짓눌렸다. 19세~20대에 부모를 살리고 나서, 평생 배에 ‘영광의 흉터’를 갖게 한다는 게 가슴 아팠던 것. “의사는 건강한 사람을 상처 내고 아프게 해서는 안 되는데…, 결혼을 앞둔 여성에게 깊은 수술자국은….”

서 교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다 2007년 세계 처음으로 복강경 간 이식수술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280여 명에게 성공적으로 수술했다. 서 교수는 간 이식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의사 가운데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국내뿐 아니라 미국, 유럽, 아시아 각국의 의사들이 서 교수의 수술법을 배우러 서울대병원을 찾고 있다.

서 교수는 국내 첫 간이식에 성공한 스승 김수태 교수, 생체간이식 분야에서 세계 흐름을 이끌고 있는 이승규 아산의료원장에 이어 간 이식 분야에서 ‘3세대 대표주자’로 불린다. 서 교수는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2,000여명에게 간 이식을 집도했으며, 최근 10년 동안 간이식 성공률 99%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무려 380여 편의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연구하는 외과 의학자’이기도 하다.

서 교수는 우리나라 심장 분야 개척자인, 선친 서정삼 전 연세대 의대 교수의 영향을 받아서 처음엔 내과에 관심을 뒀지만, 생명의 고비에서 드라마틱하게 살아나가는 환자들을 보고 외과에 지원했다. 1988년 전공의 4년차 때 김수태 교수가 국내 최초로 간이식에 성공하는 것을 보고 간청했다. “제자로 삼아주십시오!”

그는 전임의 시절 2년 동안 소아 간이식을 맡아 숨 쉴 새 없이 바삐 뛰면서도 병원 본관 13층 동물실험실에서 개, 돼지와 함께 살다시피 했다. 동물실험 관리가 엄격한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지만, 인근 방산시장에서 개를 고르고 사왔고 수혈을 위해 개의 피를 뽑아왔다. 간을 이식받은 개를 살리기 위해 ‘자작 생체 모니터’를 체크하며 개 옆에서 새우잠을 잤다. 그는 개 100여 마리, 돼지 50여 마리를 대상으로 철저하게 실험했고, 이러한 동물실험은 나중에 서 교수가 사람을 대상으로 수술할 때 뛰어난 수술결과의 밑거름이 됐다. 그가 지금까지 간 수술을 하면서 혈관이나 주변 장기를 잘못 건드려 대량출혈이 생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서 교수는 1998년 뇌사자 한 명의 간을 세 살배기 아이와 33세의 남성 환자에게 나눠 이식하는 ‘분할 간이식’에 국내 최초로 성공했으며 이듬해 세계 최초로 오른쪽 간 일부 생체 간이식에 성공했다. 2001년에는 생후 29개월 된 아기의 간에 아버지의 간 일부를 이식하는 ‘보조 간이식’에 국내 처음으로 성공했다. 간의 일부를 떼어내는 것이 전체를 떼어내는 것보다 어려운 데다가 특히 남아있는 간과 이식할 간의 혈관기능을 보존해야 하기 때문에 초고난도의 수술이었다. 2008년에는 생후 60일된 젖먹이에게 아버지의 간을 떼어내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서 교수는 비록 ‘생체 간이식’에서 국내 최초의 기록은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교수(현 아산의료원장) 팀에게 빼앗겼지만, 수많은 성과를 내며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이승규 원장은 서울대병원에서 고군분투하며 환자를 살리는 서 교수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설득했지만, 서 교수가 정중히 고사했다는 소문이 한동안 의료계에 나돌았다.

폭포는 폭포를 부르고, 대가는 대가를 인정하는 법. 이 원장은 대웅제약이 자신을 위해 만든 ‘대웅의료상-이승규 간이식 임상·연구상’의 첫 외과 수상자로 서 교수를 선정했다. 현재 간이식 학계에서는 이 원장이 명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라면, 서 교수는 세계적 축구팀을 이끌고 있는 주장에 비견된다.

2014년 대웅의료상 시상식에서 서경석 교수와 이승규 교수(서 교수 오른쪽).

최근 tvN에서 방영된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는 간 이식을 위해 7㎏을 감량한 아버지를 비롯, 다양한 상황이 펼쳐졌다. 사람의 간을 환자에게 이식하는 생체간이식에는 온갖 사연이 살아있다. 특히 부모를 살리기위해 배 가운데 깊은 흉터를 감내하는, 효심 깊은 젊은이들을 보면 코끝이 시큰해진다. 서 교수는 이들의 통증과 흉터를 줄일 방법을 고민하다 2007년 세계 처음으로 간 기증자의 오른쪽 간을 복강경 수술로 떼어내는 데 성공했다.

2000년대만 해도 간 기증자는 배 전체에 ‘메르세데스 벤츠’의 로고 모양 또는 배 양쪽에 ‘L’자 모양으로 15~20㎝의 수술 자국이 큼지막하게 나야만 했다. 동양인은 특히 수술 상처가 깊어서 흉이 지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서 교수는 배에 구멍을 작은 구멍들을 내고, 내시경과 수술도구를 넣어서 수술한 다음 한 뼘 가량 찢어서 간을 빼내는 방법으로 수술 상처를 줄였다.

서 교수는 첫 수술 얼마 뒤 아버지에게 간을 기증하려는 20대 후반 여성의 복강경 수술에 성공했다. 복강경이 들어가는 구멍과 12㎝ 정도의 가느다란 수술 자국이 남았지만 성형외과에서 섬세히 수술해서 흉터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 여성은 몇 달 뒤 결혼해서 이듬해 아기를 안고 진료실에 찾아왔다. 저절로 입가가 벌어졌다. ‘의사가 되기 참 잘했다!’

서 교수는 2015년 성능이 월등히 향상된 장비를 마련하고, 본격적으로 복강경으로 기증자의 간을 떼어내고 있다. 해부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 외에는 대부분 복강경수술을 한다.

“기증자는 조금의 문제가 생겨서도 안 되므로, 초기엔 배를 자른 곳을 통해 열어서 뱃속을 보기도 하면서 8시간 동안 조심조심 수술했지요. 지금은 배에 공기를 넣어 불려서 공간을 확보하고 배꼽으로 3D 카메라를 넣고 1㎝ 구멍 2개, 2㎝ 구멍 2개로 장비를 넣어서 수술합니다. 아랫배를 11~12㎝ 잘라서 500~700g의 간을 꺼내는데 표시가 거의 나지 않아요. 이식수술 시간도 4시간으로 줄었습니다.”

그는 2018년 55명의 공여자에 대한 분석 결과를 《미국이식저널》에 발표해서 세계 학회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달에는 생체 간 이식 기증자 149명을 분석했더니 복강경 수술을 받은 공여자가 기존 개복수술을 받은 공여자에 비해서 출혈과 감염이 적었으며 미용적인 부분에서 만족도가 높았다는 결과를 《미국복강경학회지》에 발표했다.

그러나 늘 좋은 결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수술하고도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떠나는 환자가 생길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재작년에는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간과 담도에 문제가 생긴 아버지를 위해 딸이 간을 기증했지만, 아버지의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또 다른 딸이 ‘아버지를 살릴 가능성이 있다면…“하고 나섰다. 성공 확률이 낮아 주저했고 가족에게 한계를 알렸다. 그러나 아버지를 살리고 싶다는 딸의 뜻이 너무나 강해서 서 교수는 ‘진인사대천명’을 믿기로 했다. 하지만 환자는 수술 몇 달 뒤 담도에 합병증이 오더니 간이 급격히 나빠져 세상을 떠났다. 망연자실한 가족들에게 전할 말이 없었다. 미안한 감정, 죄책감에 한동안 가슴이 타들어갔다. 두 딸이 자신의 건강을 체크하기 위해 외래에 올 때 낯을 들 수가 없었고,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서 교수는 이처럼 힘들 때에는 혼자 일부러라도 웃으면서 상황을 이겨내려고 한다. 고대 로마 노예 출신의 시인 푸블릴리우스 시루스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하라”는 말을 새기며, 의사 초년병 때 밤잠을 자지 않고 환자들을 살리며 기뻐했던 초심으로 돌아가려 애쓴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려야 할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늘 힘을 내야 한다.

서 교수에겐 건강을 찾고 밝은 모습으로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과 간 공여자들이 힘의 원천이다. 요즘에는 젖먹이나 어린이 때 간을 이식받고 건강을 찾은 여성들이 결혼해서 낳은 아기들의 사진을 보면서도 힘을 낸다.

서 교수는 보다 많은 환자들에게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로봇수술을 배우기 위해 트레이닝센터에 가는 것을 꺼리지 않으며, 복강경 수술법을 개선하고 적용영역을 넓히기 위해 부단히 공부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간 이식을 받은 환자들이 면역억제제를 복용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현재 15%인 재발률을 줄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환자를 보다 더 건강하게….

대한민국 베닥은 의사–환자 매치메이킹 앱 ‘베닥(BeDoc)’에서 각 분야 1위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80개 분야에서 의대 교수 연인원 3000명의 추천과 환자들의 평점을 합산해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통해 참의사의 본모습을 보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는 베닥 선정을 통한 참의사상 확립에 큰 힘이 됩니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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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의 댓글
  1. 박주현

    선한 의도로 간이식을 행하고도 깊은 수술자국을 갖고 살아가는것에 가슴아파하시고 복강경수술로 흉터를 최소하했다니 대단하십니다. 서교수님 덕분에 많은 간이식 공여해주는 분들에게 큰 희망이 될것 같아요. 앞으로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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